외국희곡

카릴 처칠 '미친 숲'

clint 2020. 1. 24. 16:45

 

 

 

<미친 숲>1989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루마니아 공산정권을 무너뜨린 12월 시민혁명을 다룬 작품으로서, 어느 노동계층 가족의 삶을 씨줄로 삼고 혁명의 진행 과정을 날줄로 삼아 매우 특이한 서사시적 연극을 직조한다. 3부로 이루어진 극은 각각 혁명 직전의 억압적 사회, 혁명의 격동적 사건, 혁명 이후의 해방된 그러나 급격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사회상을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다양한 서사양식 및 연극양식을 통해 혁명기의 집단적· 개인적 트라우마를 다층적으로 묘사함으로써 혁명을 하나의 단일한 사건이 아닌 다중적 리얼리티를 제시한다. 그런 면에서 이 극은 역사쓰기의 새로운 방식을 모색한다. 그 방식은 사실의 나열과 해설이 아니라 사실들 틈새 깊은 곳에 숨어있는 진실의 발견을 지향한다.

 

 

 

 

 

루치아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이 붙은 1부는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풍자극 형식을 띠면서 시작된다.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일인 독재 장기집권(19651989) 아래 감시와 도청이 일상이 된 경찰국가의 삼엄한 모습이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풍경을 통해 그려진다. 구체적으로는 보그단 가족의 장녀 루치아가 미국인과 결혼해 루마니아를 탈출하는 과정이 매우 짧은 삽화적인 장면들을 통해 조망된다. 그런데 마치 퍼즐 조각과 같은 장면 구성의 비연속성이 뚜렷한 내러티브 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각 장면들 자체가 의아한 생략과 수많은 침묵으로 이루어져 있어, 오가는 대화와 벌어지는 사건의 불투명성을 강화한다. 요컨대, 관객은 마치 한편의 부조리극을 마주한 듯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 부조리성은 당시의 현실을 실제로 살아보지 않은, 곧 비()루마니아인 관객의 몫이다. 정작 루마니아 관객에게는 무대 위 상황이 너무나, 어쩌면 실소를 자아낼 만큼 명백하다. 극은 그렇게 외부자의 시선과 내부자의 체험- 인류학에서 말하는 오염된 관찰자와 원주민적 관점’- 사이를 오간다. 각 장면의 제목을 한 관광객이 루마니아어로, 영어로, 다시 루마니아어로 말하는 독특한 극적 장치는 바로 원주민의 고유한 경험을 타자의, 특히 서구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잣대로 가늠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대신 극은 의미의 불투명성올 강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의미의 깊이를 더한다. 부조리 성으로 표상되는 억압적 체제의 사회적 리얼리티가 아니라 그러한 부조리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심리적 리얼리티를 그 체제가 강요한 생략과 침묵 속에 역석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정치적 풍자극, 부조리극, 심리적 리얼리즘이 중층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1부와는 달리, 19891221일부터 25일까지의 혁명의 전개과정을 묘사하는 2“12은 다양한 계층과 세대와 성향의 인물들이 이 격변기의 며칠을 보낸 각자의 체험을 직접 증언하는 방식으로, 즉 역사 쓰기의 새로운 방법인 구술사의 형식을 빌려 구성된다. 총을 들고 결연하게 저항의 선두에 선 인물부터 가족에 대한 염려로 행동과 회피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물, 두려움에 아예 도피를 택한 인물, 심지어 진압군으로 나섰던 병사와 차우셰스쿠 휘하의 비밀경찰요원에 이르기까지, 혁명의 이면과 저변 그리고 그 경계선상에선 -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이의 넓은 스펙트럼에 걸친 - 다양한 인물들이 인터뷰 형식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진술한다. 하지만 사건과 사실의 객관적 재구성을 목표로 하는 듯 보이는- 연극 양식으로는 르포르타주 또는 기록극에 상응하는- 인터뷰의 형식조차 정치적 사건으로서의 혁명에 관한 명확하고 단일한 내러티브를 제공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입지와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의 체험담이 일관되고 완결된 형식으로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혁명 상황의 예기치 못한 우연과 반전들로 인해, 무엇보다 장면 구성의 극작법적 원리에 의해 단속적이고 파편화 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동일한 극작법적 원리는 이 파편화된 증언들로 하여금 혁명의 복합적 양상을 - 서서히 완성되는 하나의 거대한 퍼즐처럼 - 점진적이면서도 총체적으로 드러내게 한다. 그렇게 드러난 혁명의 실체는 서구 언론이 말하는 억압적 체제에 대한 자유정신의 도덕적 승리라거나 역사적 필연으로서의 사회주의 몰락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설명 틀을 벗어난다. 대신 궁극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봉기가 회복시킨 공동체 정신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적 상황의 폭력성이 몰고 온 정신적 공황상태다. 다시 말해, 모든 역사적 순간에 인간 정신의 고양과 추락이 엇갈리며 공존한다는 것이다. 역사란 우연과 필연의 교집합이며, 인간이란 역사와 설존 사이에 낀 모순의 존재라는 것이다. 불연속적으로 진술을 이어가는 다수의 증인들은 미미한 개인들이 공동체로 녹아들면서 일으키는 활화산 같은 혁명의 에너지를 증언하면서도, 혁명 와중에 일어났던 살상의 잔혹함과 비인간성으로 인한 정신적 파탄 상태를 절망적으로 토로한다. 무작위로 배열한 듯 보이던 일련의 증언이 그러한 구성적 · 주제적 원리를 획득하는 것은 수미상관의 형식을 통해서다. 서서히 타오르는 혁명의 불길을 종언하며 ‘12의 시작을 알렸던 최초의 증인인 화가가 또한 최후의 증인이 되어 혁명의 끝을 절망에 찬 탄식으로 맺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냥 뭔가를 묘사하는 게 아닙니다. 그림은 어떤 정신의 표현이죠. 그 일이 있고 난 후 오랫동안 전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습니다.”

 

 

 

 

플로리나의 결혼식이라는 제목의 3부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개인적- 공동체적 트라우마로 남은 혁명의 흔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보그단 가족의 장남 가브리엘이 혁명 와중에 입은 총상으로 불구자가 되고 차녀 플로리나가 내키지 않는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펼쳐진다. 트라우마는 직설적 표현, 즉 리얼리즘 형식에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1부에서도 혼령과 천사가 억압적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의 양심적 고뇌와 종교적 도피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지만, 3부는 아예 흡혈귀와 개가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혁명의 와 혁명 이후 버림받은 개로 전락한 민중의 알레고리다.- 혁명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개인들의 악몽으로 재현되며, 다수 장면은 병동을 배경으로 불구가 되거나 정신병자가 된 혁명아들의 울분과 절망과 정신적 혼돈을 제시한다. 망자의 영혼이 거대한 공허와도 같은 이 병동을 배회한다. 신체와 정신을 다행히 보존한 인물들도 혼돈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자식과 남편과 이들을 불구로 만든 역사적 사건이 진정 체제를 무너뜨린 혁명이었나, 아니면 권력층 내부의 쿠데타에 불과한 것이었나 하는 질문이다. 심리적 트라우마는 사회적 트라우마가 된다. 불확실한 질문 앞에 이념적 투쟁과 집단적 이해관계의 갈등이 정치사회적 지형을 사분오열시킨다. 분열의 틈새를 비집고 공산정권의 옛 얼굴들이 이번에는 민족주의의 분철을 하고 다시 권좌에 오른다. 내부의 적에 대한 불확실성은 외부에 가상의 적을 만들어, 헝가리 계 시민들에 대한 적대감이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공공연히 표출된다.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급격한 도입은 물신숭배를 낳고, 맹목적인 물욕은 부패와 암시장 경제를 부채질한다. 억압적 질서가 무너친 자리에는 자유가 혼돈의 이름으로 들어선다. 이념과 이해관계가 이웃을 향해 주먹을 들고, 정치적 성향과 인종적 차이가 친구와 연인들을 갈라놓는다. 더러는 자유의 무중력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최소한 억압적인 질서라도 유지해주었던 죽은 독재자에 대한- 달리 말해 사라진 익숙한 삶의 방식에 대한- 향수에 젖는다. 그렇게 역사적 사건의 궤적은 실존적 공허 속으로 사라진다. 혁명 이전 독재 정권의 구속과 억압에 신음했던 보그단 가족이 이 용감한 신세계에 들어서면, 이제 이 모든 혼돈과 공허가 그들의 몫이 된다. 삶의 의미를그래서 결혼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플로리나의 결혼식에는 도시와 시골에서 온 친지들로 북적거린다. 누군가는 흥에 겨워 축가를 부르고, 누군가는 지지하는 정당의 슬로건을 외친다. 계급적 차이와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불화 끝에 결혼을 성사시킨 두 집안은 화해의 술잔 속애 서로에 대한 경멸과 적의를 감춘다. 불구자가 된 아들을 둔 어머니는 혁명의 의미를 폄하하는 모든 자를 증오한다. 미국에서 돌아온 딸은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나라와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자신을,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모두를 용서하지 못한다. 신랑과 신부마저 서로를 불신한다. 다들 취한다. 불구자 아들이 헝가리계라는 이유로 절친했던 친구에게 목발을 휘두르자 주먹이 되돌아온다. 폭력은 취기 속에 폭발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고 결혼 피로연은 폭력의 향연이 된다. 극의 마지막은 마구 휘두르던 아들의 목발에 아버지가 맞아 쓰러지는 바람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연희를 즐기는 장면이다. 무너진 장벽을 넘어 서유럽으로부터 새로 유입된 관능적인 댄스 뮤직 람바다(Lambada)에 몸을 맡기고 흥겹게, 아니 미친 듯 춤추기 시작한다. 초대받지 않은 하객들도 초자연의 경계를 넘어 마진 현실 속으로 들어온다. 1부에서 영적 마비 상태를 표상했던 천시와 3부의 서막을 열었던 흡혈귀가 인간의 틈새를 비집고 춤판에 끼어든다. 다들 루마니아어로 지껄이기 시작한다. 각자 트라우마를 담은 걷잡을 수 없는 방언들이다. 음악은 고조되고 춤사위는 빨라지고 지껄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절규가 된다. 글자 그대로 미친 숲의 장관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그리고 원주민이 실아기는 이 미친 숲을 외부인은 통과할 수 없다.

 

카릴 처칠 (Caryl Church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