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르소나'

clint 2020. 1. 6. 11:24

 

 

 

말을 거부하는 여배우와 말을 찾아주려는 간호사, 두 영혼의 불길한 교차. 유명 연극배우인 엘리자베스는 연극 메디아를 공연하던 중 갑자기 말을 잃게 되고, 신경쇠약으로 병원을 거쳐 요양을 떠나게 된다. 그녀의 요양에 동행한 간호사 알마는 엘리자베스에 대해 간호사로서의 친절과 인간적인 호감, 동경 등을 느끼지만 말이 없는 엘리자베스에게 자기를 털어놓는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을 구경거리로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공격적인 비난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남편의 방문을 계기로 알마는 마치 엘리자베스가 된 듯 그녀의 인격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는 이상한 체험을 한다. 자신으로 돌아온 후에도 알마는 점차 엘리자베스와 닮아가다가, 마침내 두 인격이 겹쳐지는 듯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갈수록 모호해지고, 두 여인은 가면과 실체 사이의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다. 편지 내용의 공개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간호사 알마는 환자 엘리자베스를 보호한다고 생각했지만, 편지를 통해 자신이 연구대상이라는 식의 표현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호받는 존재였고, 간호사라는 직업적 페르소나는 설 자리를 상실한다. 알마가 섬에서 떠날 만한 이유가 된다. 마지막으로 편지는 페르소나의 본질이 을 통해 구현됨을 보여준다. 외모나 직업도 페르소나 적 요소이기는 하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힘은 언어로부터 온다. 선생은 선생의 말을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말을 하고, 환자는 환자의 말을 한다. 이러한 말이 무너지는 순간 페르소나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붕괴되어 가는 간호사의 페르소나를 부여잡기 위해 알마는 엘리자베스에게 미안하다는 식의 표현을 쓰기도 하고, 협박을 가하기도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엘리자베스의 페르소나를 무너뜨려야 간호사로서의 가면을 유지할 수 있기에 그녀의 상처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알마는 그녀가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아들을 버렸다고 강조해서 말한다. 이 장면은 두 번이나 반복된다.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가면을 벗을까페르소나는 이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의 페르소나가 뒤엉키고 심지어 분열된 하나의 형상으로 합쳐지는 시각적 장면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아수라 백작처럼 엘리자베스와 알마의 반쪽 얼굴이 합쳐지는 장면은 분열된 페르소나의 분열과 두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감정이 뒤엉키는 순간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삶을 함축한다. 아들은 영원히 아들일 수 없다. 언제가 아들의 페르소나를 내려놓고 아버지를 입어야 한다. 할아버지의 페르소나를 입는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다. 일상에서 페르소나의 붕괴와 형성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뤄지지만 베리만은 페르소나의 붕괴 과정을 강렬하게 묘사함으로써 영화를 통해 인간의 감정과 생각과 얼굴을 압축해버린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남는 것은 붕괴된 페르소나의 조각들이다. 이것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출발점을 보여준다. 페르소나의 조각들을 창조적으로 이어붙이며 괴물을 만들어내고, 눈물을 뽑아내며, 사랑을 기워낸다. 우리는 그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페르소나(persona)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페르소나'는 그림자와 같은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다. '자아'가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라면 '페르소나'는 일종의 가면으로 집단 사회의 행동 규범 또는 역할을 수행한다.

 

 

 

 

 

전문가들의 평을 빌리면 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이것이 영화'임을 상기시키고 이 페르소나에 현실이 잠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를 담아냈다고 한다. 영화와 현실을 착각하지 말도록 당부하는 뜻으로 들렸다. 인간이 고통 속을 헤매고 있는데, 신은 기도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그럴 때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치유책은 무엇일까잉그마르 베르히만은 죽음예술두 가지 출구가 있다, 라고 말했다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해했지만 재미있었고, 깨달음을 얻은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리고 나의 본질은 무엇이며, 페르소나는 어떻게 표현되고 있을까. 나에게 있어 본질과 페르소나의 관계를 깊게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잉그마르 베르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