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앤젤레스의 선셋 대로에 위치한 대저택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유명 여배우의 풀장에서 한 시나리오 작가가 총에 맞은 채 죽어서 발견된 것이다. 경찰이 출동한 가운데 세상 사람들은 이 사건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이렇듯 작품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마치 무성영화가 아닌, 유성영화임을 각인시키듯이 '조이'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남자는 왜 유명 여배우의 풀장에서 총을 맞고 숨져있는 것일까?

사건이 일어나기 정확히 6개월 전. 주로 B급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던 조이 길리스는 벌이가 좋지 않아 차까지 압류당할 위기에 처한다. 해결사들의 추격을 받던 조이는 선셋대로에 위치한 대저택에 숨어들었다가 그 곳의 주인이자 과거 무성영화 시절 대스타인 노마를 만나게 된다. 한편 노마는 조이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유혹하는데...

이 작품 속에서 '노마'는 거의 정신병적인 증상에 가까울 정도로 과거 자신의 모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전성기 때 사진 액자들로 거실을 도배하고, 벽면에는 자신을 위한(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신의 과거 영화들을 상영하기위한) 자신의 전용 시사관을 가지고 스스로에 대한 도취에 빠져 사는 사람, 언젠가는 20년 전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그 날을 꿈꾸며 그 꿈을 실현시켜줄 '시나리오'작업을 손수 할 정도의 그녀의 모습은 단순히 그것이 꿈인 차원을 넘어 절박함에 가까워보인다.
그녀가 자신의 애완용 죽은 원숭이에 대해 거의 거룩할 정도의 경건한 의식을 치러주는 것도, 자신이 손수 쓴 '살로메'의 원고의 교정 작업을 봐줄 존재로서,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집에 불시착하게 된 무명 시나리오 작가 '조이'를 향해 무한 애정과 히스테리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이유도 이러한 영광을 잃어버린 자의 절박함과 공허함이 그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문명이나 기계의 발달'이란 어찌 보면 한 시대의 발전인 동시에, 한 개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무덤이 되기도 한다. 이 '노마'처럼.


이 작품처럼 탄탄한 완성도와 재치 넘치는 비유와 유머가 살아 꿈틀대는 작품을 본 것도 드물다 싶다. 그
만큼 고전영화라곤 믿기 어려울 만큼, 이 영화 속에서 사용된 대사를 현대 영화에 그대로 들고 오더라도 조금도 우스꽝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작품은 '빌리 와일더' 감독의 블랙 유머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와일더 특유의 누아르 적 감각으로 화려한 할리우드 이면의 추악한 모습을 벗겨낸 블랙 코미디이며, 할리우드에 관한 영화 중 최고작으로 꼽히는 초기 필름 누아르의 걸작이다. 감각적 스타일로 포착한 노마의 도착적이고 퇴폐적인 에로티시즘은 팜므 파탈의 또 다른 전형이 되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모든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영광의 얼굴들에 대한 씁쓸한 오마주이다.

배우 김금지씨 연기 40주년 기념 공연으로 2003년 국내 초연공연된 작품이다. 포스터 앞에서 찍은 사진의 남자는 국회의원과 민주당대표를 역임한 조순영씨로 김금지의 남편이다. 영화 시나리오를 희곡화 했기에 장면변화가 많고 등장임물이 많은 단점도 있지만 완성도 높은 작품인지라 연극적으로 잘 정리하면 좋은 작품으로 재창조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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