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 화면에 잿빛 정사각형 지대가 보인다. 중세 수도복처럼 모자 달린 긴 망토를 입은 배우들이 하나둘씩 모서리에서 등장한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성별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 좀비처럼 정사각형 안을 왔다 갔다 한다. 미세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그들의 발소리가 음산하게 울린다. 배우들은 규칙적으로 정사각형의 변을 따라가거나 대각선으로 횡단한다. 단, 정 가운데 부분은 밟지 않고 돌아서 가며 절대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사뮈엘 베케트(사진)가 만든 텔레비전 단편극 <쿼드>의 내용이다.
베케트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부조리극의 대표작이자 현대극의 흐름을 바꾼 작품으로 손꼽힌다. 베케트는 희곡뿐 아니라 소설, 시, 평론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생의 마지막 10여 년 동안인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독일 국영방송의 지원을 받아 집중적으로 텔레비전 단편극을 만들기도 했다. <쿼드>는 그 중 하나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은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붙인 철학적 에세이다. 들뢰즈는 이미 <차이와 반복>에서도 베케트 소설의 인물을 ‘애벌레 주체’라는 개념으로 정의한 적이 있다. 옮긴이인 이정하 단국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무언가 가능한 것을 실현하거나 실재화 하는 능동적 주체들이 아니라 실현하고자 하지 않으므로 실패의 가능성조차 없는” 주체다. <쿼드>에 등장하는 ‘좀비’들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이들은 오로지 쓸모없는 왕복 운동을 거듭하면서 주어진 가능성마저 완전히 소진시킨다.
쓸모없는 인간들로 보이는 베케트의 작품 인물들은 지배 시스템에서 ‘가능한 것’들을 죄다 소진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 개인과 세계에 ‘잠재된 힘’을 보여준다. <쿼드>의 배우들이 무의미한 반복 행동으로 가운데 지점을 피함으로써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아무런 성과 없이 그저 ‘소진돼 버린’ 것처럼 끝난 사건들은, 그래서 역으로 보면 이미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월가 점령이나 촛불집회처럼 한때 거리를 뒤덮었던 함성이 사라지더라도 그 강렬한 이미지는 여전히 남는다. 소진은 소진을 통해 생성의 힘을 보여준다
* 1982년 남부 도이치 방송국을 위해 집필, 그곳에서 제작됨. 이듬해 5월 19일 첫 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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