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사무엘 베케트 '밤과 꿈'

clint 2019. 6. 21. 10:01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는 한 인물이 어두운 화면 왼쪽 아래편에 고개를 숙이고 오른쪽 측면을 보이며 앉아 있다. 공간은 어두워 깊이를 알 수 없고, 인물 주변의 공간적 좌표 또한 모호하다. 어두운 공간 안쪽에는 작은 창이 하나 높이 걸려 있다. 그로부터 희미하게 빛이 새어 들어와, 수도승처럼 어두운 옷을 입고 희끗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채 구부정히 앉아 있는 인물 뒤편으로 어스름한 반사광을 던지고 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낮은 목소리로 슈베르트의 가곡 <밤과 꿈>의 한 소절을 흥얼거린다. 노래 소리가 멈추면 공간 안쪽의 빛이 사라진다. 다시 노래 소리가 들리고(“감미로운 꿈들이여, 다시 돌아오라 ...”), 어둠 속에 겨우 윤곽만 흘리고 있는 인물이 고개를 푹 숙이면(꿈을 꾸기 시작하면), 인물의 대각선 맞은편 상단, 즉 화면 오른쪽 위에 동일인물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동일한 자세로, 그러나 이번에는 왼쪽 측면을 보이며 나타난다. 오른쪽에 출현한 이미지 속 인물 주위 어딘가에서 손이 하나 나타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사라진다.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면 다시 손이 나타나 잔으로 그의 목을 축이고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그리고 앞으로 내밀어 뻗은 인물의 손을 잡아준다. 서로 맞잡은 손 위로 인물은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그때 다른 손이 하나 더 나타나 그의 머리 위에 놓인다. 화면 오른편의 이미지가 사라진다. 이 과정은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다만 이제 카메라는 오른쪽 상단의 이미지로 줌인해 들어가 이미지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암전된다.

 

 

 

 

 

<밤과 꿈>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기 위한 잠재적 발생 조건은 공간이 아닌 어떤 시간적 계기이다. 누군가가 슈베르트의 가극 밤과 꿈의 한 소절을 나지막이 흥얼거리면, 마치 이 선율에 유도된 듯 공간 안쪽의 빛이 꺼지고 어둠이 잦아든다. 그리고 다시 노래 소리가 들리고, 이것에 이끌리듯 화면 오른편에 이미지가 나타난다. 음악이, 선율이 어디서 오는지, 다시 말해 음악의 원천이 어디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노래는 나지막한 남성의 목소리로 흐르지만, 화면 내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이의 성별이나 나이는 판별하기 쉽지 않고, 얼굴을 가리고 있으므로 목소리가 그로부터 오는지도 수 없다. 그러므로 화면에 흐르는 선율이 내화면의 음향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이 선율이 인접한 공간, 혹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문 너머 바깥의 음향인지, 아니면 더 먼 곳, 즉 방향도 위치도 지정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화면에서 발원한 것인지 알 수도 없다. 단지 분명한 것은, 여기서 음악은 이미지에 덧붙여지거나 이미지와 등질적인 연속체를 이루며 이미지에 흡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음악은 실질적으로 이미지의 변화를 유도하고 자극하는 독립적행위자처럼 이미지와 함께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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