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개소리」는 1969년 월간문학에 발표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방문자 철민은 일반적인 편집성향에서 벗어나 타인의 관점이나 태도를 공유하지 않고 망상적인 인물로 나온다. 자신이 당한 피해에 대해 앙심을 품은 채 도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살인을 저지르기에 병적인 편집성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안개소리」에서 철민이 전우였던 학수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기보다 학수의 아이를 밴 정아에게 집착하는 것은 동성애의 욕구보다는 타자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와 연관된다)
여성의 월경과 임신, 양육, 분만과 같은 생물학적 특성은 여성이 남성보다 자연에 가까움을 의미한다. 이러한 몸의 체험은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자연의 과정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긍정적인 여성 원리가 생식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한다. 그러나 차범석의 「안개소리」에는 성욕에 의지해 두 남성과 관계를 맺고 반복해서 낙태를 한 여성이 등장한다. 정아는 재생산으로서의 임신을 거부하고 최종적으로 가부장의 구조에서 도피하는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철민의 대사에 의하면 정아는 임신을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낙태를 해왔다. 철민이 낙태를 동의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 임신 중인 정아를 조롱하는 태도가 내포되어 있다. 철민과 학수는 몸싸움을 벌이기 전 정아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그러나 정아는 두 남성 모두 싫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행동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선택할 수 없다는 답을 한다. 결국 두 사람이 생사를 오가며 싸우는 순간, 정아는 떠나겠다며 무대 밖으로 퇴장한다. 현재 학수와 동거중이고 그의 애를 임신했음에도 확답하지 않고 회피하는 태도는 성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들과 관계를 가졌고, 임신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철민을 배반하고 학수에게 간 자신을 창녀로 비유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발언은, 작가의 도덕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역 앞 고층빌딩 옥탑방을 배경으로 한 「안개소리」는 서울이 도피처이자 이탈해야 할 이중의 장소로 거론된다. 「무적」의 배경처럼 자욱한 안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옛 남자인 철민이 찾아옴으로써 사건이 전개된다. 철민의 대사에 의하면 이곳은 서울 높은 빌딩의 성으로 묘사되었다. 실제 거주하는 정아에게도 장소의 의미는 세상에 뛰어들기 싫은 도피처를 상징한다. 서울역 앞 옥상의 단칸방은 정아의 성적인 충동이 은폐되던 곳이다. 그러나 철민이 찾아옴으로써 그녀의 성욕과 숨기고 싶던 과거가 공개된다. 안개가 걷히는 현상은 정아의 비밀이 노출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생산한다. 남성인물인 철민에게도 서울은 3년간 찾아다닌 여성을 발견하는 장소이자 학수를 살해하는 행동이 표출되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정아를 찾은 후 정착할 거라 예상했지만 또 다시 도주해야 할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울은 극중 인물의 분열 양상을 부각시키며 존재한다. 극중 인물들이 도피를 꿈꾸는 것은 장소에 대한 애착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뿌리를 내리는 것에 대한 욕망은 질서와 자유, 책임, 평등, 안전에의 욕망과 관련되는데 안전지대를 가진다는 것은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파악하며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애착을 가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분열하는 인물에게 자신의 입장은 확고하게 파악되기보다 모순되고 이중적인 의미를 갖기에 장소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없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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