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차범석 '표류'

clint 2019. 6. 3. 13:10

 

 

 

 

1979<민족문학대계>에 발표한 5막의 장막이다. (부제는 독립협회와 황국협회)

표류는 민중을 깨우치려는 선각자 서재필의 정신과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명감을 우회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어린 이승만의 역할이 좀 더 부각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승만 : (전략) 여러분! 어느 시대나 선각자는 학대를 받게 마련이고 외로운 사람은 박해를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그 피와 아픔은 바로 그 한 분의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그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의 역사를 우리는 상기시켜야 합니다. 황국협회가 조직되고 그들이 우리 독립협회를 박해하더라도 그 아픔은 우리들만의 아픔이 아닌 2천만 동포 전체의 아픔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두려울 게 없습니다! 외롭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습니다! 여러분! 손에 손을 잡고 이 자리를 지킵시다! 한 발자국도 이 자리에서 물러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표류에서는 가장 어린 이승만이 중요한 직책을 맡아 젊은이의 역할과 영향력을 강조한다. 이상재와 윤치호에 의해 이승만의 사설은 핵심을 찌르는 명문이라 격찬을 받고, 만민공동회에서 토론회에 참가하라는 중책까지 부여받는다. 중심에 있던 운동자들은 자신들이 이제 2선으로 물러나고 젊은이들이 협회에 앞장설 것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미국으로 소환되는 서재필에게 아내의 병환에 차도가 있다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겠냐는 불편한 질문도 이승만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는 서재필은 개인보다 단체가 중요하다는 답을 하며 미국으로 떠났다. 그의 앞으로 젊은 회원들이 모여드는 장면은 젊은 주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책임을 의미한다. 독립협회 회관에서 이승만의 연설 후 황국협회 폭도들이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다. 그때 돌을 맞은 이승만은 이마에 피가 흐르는 상황에서도 사무실은 우리들 젊은이가 지키겠다.”고 외친 후 이상재와 윤치호를 대피시키는데 주력한다. 결국 이승만 같은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있는 한 앞날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윤치호의 발언 뒤 이승만은 감옥에 갇힌 몸으로 무대 위에 재등장한다. 비바람이 불어도 갈 길은 가겠다는 이승만의 마지막 대사는 죽음 앞에서도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도덕적 이념과 숭고를 의미한다.

 

 

서재필

독립신문(獨立新聞)은 1896년 4월 7일에 한국에서 최초로 발간된 민간 신문이자 한글, 영문판 신문이었다. 발간자는 미국에서 귀국한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獨立協會)의 기관지로 발간되었다. 서재필은 당시 4,400원을 발급받고 또 조선정부의 지원을 받아 4월 7일에 처음 발간했다. 4면 중 3면은 순국문, 1면은 영문으로 문장을 썼다. 필진으로는 유길준, 윤치호, 이상재, 주시경 등이 참여하였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발간했으나 그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헨리 아펜젤러를 발행인으로 하여 윤치호가 맡아 발행하다가 독립협회의 해산과 함께 폐간되었다.[1] 독립신문은 최초의 순한글체 신문이자 한국 최초의 영자신문이었으며, 신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칼럼을 투고할 수 있었다. 1957년 4월 7일 한국신문편집인협회는 독립신문 창립일을 신문의 날로 지정하였다.

 

 

이승만

정동 배재학당에서 서재필이 만든 학생조직 ‘협성회’ 지도자로 협성회보 주필이던 이승만은 급변하는 시대상황에 일간신문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협성회보를 일간지(매일신문)으로 바꾸어 버렸다. 대표-주필-기자로 1인3역을 자임한 23세 청년 개혁운동가 이승만, 한국에서 ‘기자’란 호칭를 처음 쓴 것도 그였다. 국문(한글)전용인 독립신문에 논설을 도맡았던 이승만은 매일신문도 국문전용으로 내며 ‘한글 전용론자’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한문을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썩고 잘못된 습관에 물들어 기대할 것이 없고...(중략)...진심으로 바라는 바는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스스로 각성하여 국민정신이 바뀌고 아래로부터 변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며 죽은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또 원하는 바이다.” 이것이 문맹률 90%의 왕국을 개명시키려는 이승만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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