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범석 첫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 없이는』(1960년)에 발표된 단막 작품이다.
「상주」의 배경은 지방 도시인 P시로 설정되었다. 무대는 가난한 환경임에도 청결과 평화가 감도는 것으로 묘사되어 지금까지 빈촌을 다룬 시각과 차이를 보인다. 무대 우편에 아담한 한식 기와집이 서 있다. 그리 넓지는 못하나 손질이 잘 되어있는 대청마루와 건넌방과 그리고 안방으로 드나드는 미닫이가 보인다. 대청 정면은 유리문이 열려있어 장독의 일부와 뒷뜰 화초밭이 내다보인다. 대청에는 조그마한 뒤주와 찬장과 대소의 항아리, 찬합등속이 제 자리에 잘 정돈되어 있어 이집 살림을 맡아보는 신씨의 성격과 습성을 여실히 말해주는 듯하다. (중략) 무대 전체의 인상은 서민층의 주택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풍정이다. 가난이 흉스럽지 않고 포근히 마음속을 적셔주는 듯한 청결과 평화가 감도는 가정임을 알 수 있다. 차범석이 긍정적으로 서술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숙성과 자녀들이 사는 P시는 고통을 몸으로 체현한 장소의 의미를 갖는다. 남편이자 아버지인 양재호가 본처 자식을 외면하고 20년간 다른 여자와 서울에서 지내는 동안, P시에서 남은 세 사람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자식에게 어머니는 20년 동안 햇빛 한번 보지 못하고 골목 안에서 늙은, 가엾은 존재로 여겨진다. 본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창작해서 당선된 성일에게도 가난한 생활은 아버지를 반목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심사위원들이 성일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로 전개된다면 신파가 될 뻔했기에 성일은 자전소설에서 아버지와의 재회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서울에서 다른 여자와 살던 아버지는 병을 얻어 죽음의 목전에 있다. 이렇게 부정한 행동을 한 아버지가 위암에 걸린 원인은 가족을 버려 천벌 받은 것으로 표현되었다. P시에 살던 자녀들은 서울에서 성공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소외감, 위계화를 느꼈으나 서울에서 지낸 아버지 역시 육신의 고통 속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죽음은 용납할 수 없는 존재를 수용하게 된 계기로 작용하고 P시에서 서울로 가는 성일의 모습으로 막이 내린다.
P시에서 기다리던 남편의 사망소식을 듣고 목 놓아 우는 어머니는, 욕망의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우울한 주체로만 남는다. 결국 어머니에게 P시는 소외와 고통을 주는 장소성의 의미를 갖게 된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차범석 '스카이라운지의 강 사장' (1) | 2019.05.31 |
|---|---|
| 차범석 '파도가 지나간 자리' (1) | 2019.05.31 |
| 최원종 '헤비메탈 걸스' (1) | 2019.05.30 |
| 차범석 '풍운아 나운규' (1) | 2019.05.29 |
| 차범석 '태양을 향하여' (1) | 201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