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6.3~6.7, 춘사 나운규 30주년 추모 작으로 동랑레파토리 극단이 드라마센타에서 초연 공연된 작품이다. (연출 이원경) 서막과 종막을 포함해서 6막6장으로 구선되어 있다.
서막에서는 폐병으로 고생하며 마지막 영화의 열정을 되살리려 하는 운규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과거를 플래시백으로 되돌려 보듯이 회상하며 1~4막이 펼쳐진다.
1막은 서울의 한 허름한 자취방. 독립운동을 하다 서울로 도망쳐 여기서 친구들과 자취하며 그는 영화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그를 2년간 추적한 형사에 의해 고향인 회령으로 끌려간다.
2막은 고향집. 1년 반의 옥살이 끝에 석방되었으나 운규의 재판 등으로 가세는 많이 기울었다. 운규는 집에서 영화의 대본을 쓰고, 어머니와 형, 부인은 그가 고향에 머물기를 갈망하나...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유랑극단패들과 같이 상경한다.
3막, 자신이 직접 쓴 <아리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민족의 혼과 항일정신을 담은 이 영화를 만든다.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일본 제작사에 속해, 익명의 일본작가를 쓴 것으로 내새워 성공을 거두나, 돈은 일본제작사가 벌고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허울뿐이다.
4막, 자신의 제작사를 만들어 영화 각본 제작 주연 등 종횡무진 노력하나 일본경찰의 감시와 간섭 등을 회사는 어려워지고 결국 순회연극의 배우로 나선다. 고향에서 애를 업은 아내가 찾아오지만 잘 되어서 돌아간다 하고 돌려보낸다.
종막. 서막과 같은 무대의 연장선이다. 결국 친구, 연인 혜란, 의사 등이 있는 가운데 운명한다. 만 35세. 요절이다.

이 작품은 역사극이요, 전기극이라 볼 수 있다. 한국 영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나운규의 일생을 그린 작품으로, 차범석의 작품 중, 실존했던 인물을 모델로 쓴 첫 작품이다. 나운규라는 실존인물을 통해 인물중심의 부각보다는 역사의식 속에 시대의 고민과 선각자들의 시련을 통해 진실로 한국인의 자의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교혼을 담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 1902년 출생. 무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독립군 양성 기지였던 간도의 명동 중학교에서 수학하며 어릴 적부터 만세운동 등의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후에 독립군 단체인 '도판부'에 가입하여 활약하였으나, 공부를 통해 더 큰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충고를 받고 서울로 내려와 민족영화의 선구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일제는 진보적 영화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검열”이라는 수단을 사용하여 중요 장면들을 자르고 사상 주체적 내용을 거세하였다. 일부 문화인들은 친일영화,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시대적 어려움에도 불구, 나운규 선생님은 꾸준히 독립의지를 담은 영화를 제작하며 민족혼을 일깨웠다. 1924년 부산의 조선키네마에 입사했으며, <운영전(雲英傳)>에 단역으로 출연함으로써 영화와 첫 인연을 맺었다. 한국 영화계의 선구자이자 항일독립 투사로서,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조국과 영화에 바쳤다. 1937년 사망. <농중조(籠中鳥)>, <심청전>, <개척자>, <장한몽(長恨夢)> 등에서 주연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으며, 1926년 자신이 직접 쓴 <아리랑>을 감독·주연하였다. 1927년 나운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였으나 1929년 경영난으로 해체하였다. 이후에도 <임자 없는 나룻배> 등 여러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거나 감독·제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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