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과 이끼로 뒤덮인 ‘청기와 집’ 마당엔 이 집안의 어른인 하대덕 생일을 기념하는
가족사진 촬영이 한창이다. 정작 주인공인 하대덕은 사업자금을 위해 산판을 팔자는
장남 기룡 때문에 언성을 높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요즘 부쩍 병색이 짙어가는
대덕을 걱정하는 건 부인 이씨와 사위와 딸뿐, 변변한 직업 없이 두 집 살림과
사업자금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장남 기룡, 남편의 두 집 살림으로 속이 썩는
첫째 며느리, 6.25때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신세인 둘째 며느리, 이 집안의 아들을
낳았지만 부엌 떼기 신세로 아들을 기다리는 일룡네, 서울서 대학을 다니다 병약해서
휴학한 장손, 이렇게 청기와 집의 다른 식구들은 저마다의 상처와 아픔으로 곪아간다.
그런 청기와 집에 15년 만에 집나갔던 일룡이 돌아오면서 집안에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데...
<청기와 집>은 1963년 극단 <제작극회> 시기에 창작된 작품이지만, 극단 <산하> 창단 후
두 번째 작품 (1964년 3월 27일~31일)으로 공연되었다. 연출은 이원경, 미술은 박석인이
맡았고 출연진은 - 하대덕: 이순재, 부인 이씨: 강부자, 기용: 김성옥, 정원:김소원, 재철:
김인태, 재순: 조영일, 일용: 오현경, 일룡네: 천선녀, 옥녀: 강효실, 김경희: 백수련, 서인섭:
최응찬, 삼재: 전운, 귀례: 김금지, 사진사: 박용기, 면장: 고설봉 등 쟁쟁한 배우들이다.
이 작품은 신․구세대의 갈등을 통해 전통적인 인습과 산업사회의 인간 소외 문제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청기와 집>의 일용은 자기 연민의 극적 행위를 보이는 인물이다. 그리고 일용이 사회와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며 자기 연민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청기와집의 서자로 태어난 것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일용이는 청기와집의 지주 하대덕이 소작인의 딸을 범해 태어난 서자로, 어린 시절 청기와 집에서 구박만 받고 살았던 인물이다. 청기와 집 사람들의 구박을 참다못해 가출을 한 일용은 10년이 지난 후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외국에 자주 드나드는 성공한 신사’의 모습으로 ‘청기와 집’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청기와 집>에는 일용이 외에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 또 한명 있다. 바로 하대덕에게 겁탈을 당한 뒤 일용이를 낳은 일용 어멈이다. 일용어멈은 과거나 현재나 청기와집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첩도 아니요 종도 아닌” 모습으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행색으로 집안의 온갖 궂은일은 다하는 인물이다. 일용어멈은 청기와집 사람들의 구박 속에서도 가출한 일용이를 기다리며 살아온 인물로,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다가 <청기와 집> 결말부에서 자신의 울분을 터뜨리는 행위를 보여준다. 일용이는 성공한 신사의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그 내면에는 청기와 집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품고 있다. 봉건적인 사회 제도 속에서 지주라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어머니를 겁탈하고 자신을 낳았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을 멸시하고 구박한 하대덕에 대해 일용은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용은 자신의 분노를 일상생활에서는 감추고 있었지만 재철과 대화하는 중에 그 증오심을 드러낸다. 이때 일용의 행위는 ‘말 행위’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복수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행위로 인해 그 동안 일용이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보인 행위, 가족들에게 선물을 돌리며 친절하게 대하고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 본심을 감춘 행위였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적자로 살아온 재철 역시 ‘청기와 집’의 위선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다만 두 인물은 ‘청기와 집’에 대한 반항심, 증오심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일용은 성공한 듯한 외모로 대덕에게 신임을 얻기 위은 뒤 사기를 쳐서 복수하려 한다면 재철은 노골적으로 기용에게 반항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심약한 몸이지만 천막학교를 지어 농민들을 계몽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두 인물은 하대덕과 대립하는 신세대로 현실의 모순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일용은 성공한 외모 속에 자신의 울분과 분노를 감추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태도, 어머니 일용네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 그리고 일용의 자기연민은 사기꾼인 것이 들통 나 형사에게 붙잡혀갈 때 가시화된다. 수갑을 찬 채 끌려가던 일용은 일용네를 향해 “그 안에 들어 있으면 편해요. 남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남을 해칠 필요도 없고요.”라는 말 행위를 통해 서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일용은 모든 것이 들통 난 순간에는 위선적인 모습을 벗어버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일용은 여전히 자신과 어머니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지만 자신들을 억압하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체념하는 태도를 보인다. 일용은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받은 소외감은 자기 연민 행위와 사기 행각으로 표출되다가 결국은 삶에 체념하는 정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청기와집>의 일용의 극적 행위는 봉건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과 서자들의 현실을 재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청기와 집>은 4막으로 이루어져 있고 발단-전개-절정-결말의 ‘인과적인 구성’을 보인다. 1막은 발단부, 2․3막은 전개부, 4막은 절정부와 결말부에 해당되는데, 발단부에서는 발생 가능한 사건들이 보여지지만,전 개부에서는 그 사건들이 개연성을 지니게 되고, 결말에서는 그 사건들이 필연성을 지닌다. 이와 같은 ‘인과적인 구성’은 <청기와집>의 표층구조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청기와 집>에서는 극이 시작되자마자 기용과 대덕이 재산문제로 다투고 있다는 정보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때 일용이가 말쑥한 외국신사의 차림으로 돌아오자 ‘청기와 집’사람들은 활기를 되찾고, 대덕은 물론, 그의 부인 이씨, 일용의 어머니, 대덕의 둘째 며느리 옥녀까지 일용을 환영한다. 대덕은 일용이 금의환향한 것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쇠락한 청기와집을 일으켜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한편, 대덕의 큰아들 기용이 극 초반부터 대덕과 갈등을 벌이는 이유는 대덕이 거절한 일, 즉 마지막 남은 산판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것을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용은 현재 부인 정원과 자식들을 놔두고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온 가족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 그러나 기용은 이러한 비난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대덕에게 돈만을 요구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첩살림은 ‘청기와집’의 내력이라 할 만큼 가족 대대로 이어져온 묵인된 관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덕은 서자 일용까지 낳았기에 기용의 두 집 살림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있다. 기용의 두 집살림은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에서 비롯된 전근대적인 인습으로 가계 계승을 위해 아들을 보고자 첩을 들이던 제도가 아들이 있는 상태에서도 가부장의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제도로 지속된 것이다. 하대덕은 물론 기용도 여성 억압적이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띤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기용은 대덕이 자신에게는 주지 않으려 했던 산판을 팔아 마련한 돈을 일용에게 주려 하자, 종손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행패를 부린다. 일룡에게 돈을 마련해주면 자신의 성을 갈겠다며 기용이 소란을 피우고, 그 모습을 본 재철은 돈을 달라고 하기 전에 우선 처첩 생활부터 청산하라며 그 동안 말하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재철은 기용이 “잘 살아보려고 한 것”은 청기와집을 살리기 위해서 였다기 보다는 개인의 탐욕 때문이었으며 두 집 살림을 지속하는 것은 위선이라 지적한다. 이 대립은 ‘청기와집’의 구세대가 신세대에게 어떠한 고통을 안겨주는가를 정확히 드러내는 필수적인 장면 기법이 드러나는 것으로, 재철은 기용의 이중생활을 비판하여 ‘청기와집’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폭력적이고 위선적인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신세대 재철은 이 장면에서 기용의 탐욕과 이중적인 삶의 방식을 지적하면서 <청기와집> 저변에 흐르고 있는 대립 관계를 표면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청기와집> 구세대의 위선적인 삶은 신세대에게 고통을 줌과 동시에 신세대의 삶마저 위선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신세대 일용이가 성공한 모습으로 자신을 ‘위장(僞裝)한 채 금의환향한 것은 자신을 서자라고 구박한 구세대의 위선과 폭력적인 행위 때문이었던 것이다. 일용이 사회에 나가서도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구세대의 위선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용은 가출한 뒤 ‘청기와 집’에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만 살았기에 복수를 하기 위해 구세대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세대와 대립하려던 일용은 구세대와 유사한 삶의 방식으로 대립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용의 이중생활은 ‘청기와집’ 구세대의 가부장적인 질서에 희생되면서 그에 대한 분노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구세대의 억압적인 삶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청기와 집>의 삼 세대, 즉 하대덕, 하기용, 하일용과 하재철은 각각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를 사는 기용이 구세대의 위선적인 삶을 혁파하지 못했기에 일용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이중생활을 하는 신세대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기와집>의 신․구세대 간의 대립은 구세대의 몰락과 일용처럼 불안정하고 모순된 신세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일용이든 재철이든 신세대들은 모두 구세대의 가부장적인 질서를 비판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좌절하고 체념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일용 네는 “천년만년 잘 살어라!”라는 반어법으로 증오심을 드러낸다. 그런데 일용네와 대덕 간의 대립은 일용네가 사속의 원리에 따른 처첩제도의 희생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일용네는 대덕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어 일용이를 낳고 여태껏 모진 학대를 감내해온 여인이다. 그런데 아들 일용이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과 일용이를 불행하게 만든 대덕, ‘청기와 집’에 대해 드디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다. 일용네의 오열하는 행동은 구세대 처첩 행위의 직접적인 희생자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한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차범석 '풍운아 나운규' (1) | 2019.05.29 |
|---|---|
| 차범석 '태양을 향하여' (1) | 2019.05.28 |
| 차범석 '무적' (1) | 2019.05.27 |
| 차범석 '4등차' (1) | 2019.05.27 |
| 차범석 '분수' (1) | 2019.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