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김성진 '소년공작원

clint 2019. 5. 23. 13:07

 

 

 

극이 시작되고 얼마 안 되어 앳된 소년들이 무대에 등장하였다. 그들은 무대와 세상을 향해 천진난만하게 자신의 열 살 남짓한 나이를 밝혔고,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태어나 어떻게 자라왔는지, 또 그런 자신에게 어머니의 국수 가게는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떤 의미일지를, 수줍지만 한껏 부풀어 외쳤다. 세상에서 가장 구체적인 마음이란 게 만약 있다면, 대통령이 되었든,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든, 혹은 세계 제일의 국수 가게 사장이 되었든,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는 아이의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972, 그들은 경기도 파주의 한 폐 공장에 모이게 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군인들에 의해 끌려와 감금당하게 되었다. 국수 가게를 마음에 품었던, 달리기 선수를 꿈꿨던,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또 동네에서 신발을 닦던, 그런 아이들. 이렇게 품어온 삶도, 생김새도, 심지어는 억양도 모두 달랐던 네 소년은 영문도 모른 채 그 이름과 삶을 박탈당하며, 그 자리에 빨갱이 개새끼들이란 (분단) 국가의 증오를 대신 새겨 넣을 것을 강요당하였다. 소년들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도, 또 직접 겪은 적도 없었던 빨갱이의 존재는, 그들의 삶과 몸에 떨쳐지지 않는 생채기를 새겼다.

 

김성진 작 <소년공작원>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남으로부터 북으로 파견되었던 특수임무 수행자, 즉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실화기반의 연극이며, 제목에서도 보이듯 대다수가 비자발적으로 징집된 미성년자 북파공작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소년공작원>은 북파공작원 이야기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과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할 통치를 하며 한반도는 남북으로 나뉘었다. 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이들 공산국가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위해 주한 첩보 연락반 (일명 켈로부대)을 남기고 철수하였다. 1950625일 새벽,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 KLO부대원들은 조선인민군의 후방으로 잠입하여 여러 비밀 작전들을 수행하였으며, 이후 미국 극동사령부의 주한 국제 유격 연합군 육군 8086부대과 8240부대로 통합되었다.

전쟁동안 뿐 아니라 휴전 이후에도,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요원을 지속적으로 파견하였다. 육군은 19507월 육군본부 정보국 공작과 (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HID)를 발족시켰고, 19513월에 이를 첩보전담부대로 독립시켰다. 해군은 조선인민군 해군의 도발과 선박 피랍에 대응하기 위해 1954년에 UDU (Underwater Demolition Unit)를 창설했다. 그리고 공군도 1954년에 첩보부대인 20특무전대 (=2325부대)를 창설했다. 육군의 HID1961년에 AIU (Army Intelligence Unit)로 부대명을 바꾸었고 다시 1972년에 AIC (Army Intelligence Command)로 부대명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정식명칭의 변경과는 무관하게, 최초의 부대명인 HID라는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사실상 대내외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들 상설 북파부대 외에도, 1968년 북한 124군 부대의 청와대 기습 이후,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한 목적으로 육군에 선갑도 부대, 해병대에 MIU, 공군에 684 부대(209파견대, 일명 실미도 부대)를 새로 창설하였다. 이들 보복부대들은 보복임무를 위한 훈련을 마치고 출동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지만, 그 사이 남북간의 정치관계가 화해무드 분위기로 바뀌면서 당초의 보복계획이 사실상 백지화 되었고, 그에 따라 존재목적이 없어진 이 보복부대들은 해체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중 공군의 684부대원들은 해체에 저항하여 1971823일 간부들을 살해하고 버스를 탈취하여 공군 본부를 폭파하기 위해 상경하였으나, 출동한 육군에 의해 대부분이 사살되고 생존자들은 군사 재판에 의해 사형에 처해지면서 부대가 비극적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나머지 두 보복부대(선갑도 부대 및 MIU)도 차례로 해체되었다. 이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03년에, 684부대를 소재로한 영화가 개봉되어 북파공작원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27·4 남북 공동 성명 이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측은 공작원 파견을 자제하기로 성명함으로써 그 후로는 공작원을 파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알려져 있다. 1990년에 각 군의 모든 대북첩보부대(육군의 AIC, 해군의 UDU, 공군의 20특무전대)가 국군정보사령부로 통합되었다. 북파공작원은 그 임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계급과 군번이 없다. 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적에게 잡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군번으로 소속부대 및 임관 구분, 주특기 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며 계급으로 해당 공작원이 하는 임무의 비중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계급이 높을수록 임무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북파공작원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군인으로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연극에서는 여성해설자의 해설과 정면 스크린에 영상투사로 시대적 배경이 소개가 된다. 북파공작원의 훈련과정이 연출되고 실제 인간병기와 다름없는 맹렬하고 혹독한 훈련 행해진다. 훈련 중 이상이 발견되면 상사는 야구방망이 같은 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한다. 동기끼리 격투를 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훈련기간 중 외출, 외박이 불가능했던 것은 물론 어머니가 타계한 사실도 모르게 된다. 훈련도중 동기가 탈영을 시도하다 잡혀와 맞아 죽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실제 북파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충격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백발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꾸지 못한다. 천신만고 끝에 남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호적에 사망자로 되어있고, 형제의 이름으로 주민등록을 하게 되자 그 이름으로 입대영장이 나온다. 훈련 중 받는 기합으로 해서 다리를 절게 된 주인공은 장애자라 하여 입대를 안 하게 된다. 그러다가 주인공은 자신에게 모질게 훈련을 가한 상사가 전역 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을 발견하고 상사를 살해한다. 그리고 평생을 감옥살이를 한다. 대단원은 타계하기 직전 모친의 영혼과 대면을 하고 모자가 포옹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여성해설자의 해설과 함께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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