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시원 '좋은 하루'

clint 2019. 5. 19. 13:34

 

 

 

<좋은 하루>의 두 남녀는 22살에 만나 38살에 재회한다.

좋아해한 마디를 전하는데 무려 14년이 걸렸다. 쉽게 만나 섣불리 헤어지는 수많은 청춘남녀에게 그들만의 사랑 방식을 고한다. 이들의 관계는 느리고, 은근하다. 이 작품 전반적으로 유쾌하다. 일단 설정부터 독특하다. 일본인 유학생과 귀신 이야기 마니아의 만남이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상처와 치부를 농담과 섞어 웃음으로 풀고, 기괴한 분장의 캐릭터들이 극의 양념을 담당하며 분위기를 희석한다. 주인공 현우는 전시시설 기획자로 귀신의 집을 만드는 일을 한다. 프리랜서 여행기자인 유키는 일본 출신의 프리랜서 여행기자다. 대학 시절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만난 친구 사이인 둘은 호감은 있지만 서툴고 소극적인 성격 탓에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는 여행명소를 취재하기 위해 현우가 일하는 도시를 찾는다. 여러모로 엉뚱하다.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에 머리를 산발한 귀신이 불쑥 끼어든다. 얼굴 분장은 영락없는 처녀귀신인데 차림은 기모노고, 신발은 슬리퍼다. 오싹한 등장과는 달리 극의 웃음을 책임지며 두 남녀의 사랑 조력자로 활약한다. 오리 배를 타는 장면에서는 실제 크기와 흡사한 거대한 오리 배 세트를 밧줄로 낑낑대며 끌고, 두 주인공의 로맨틱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는 주섬주섬 색소폰을 들고 나와 라이브 연주를 펼친다.

드라마는 담백하다. 느린 호흡으로 한 발짝씩 관계의 실타래를 푼다. 이시원 작가는 특유의 깔끔한 문체로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채롭게 푼다. 크고 작은 사건, 사고 대신 두 남녀의 미묘한 감정 변화에 집중한다. 20대 초반에 만나 사랑과 우정을 넘나들며 공유했던 추억을 주인공들의 대화에 모두 녹여낸다.

 

 

 

 

 

이 작품이 독특한 점은 두 남녀의 이야기 사이 사이 치렁치렁한 머리로 얼굴 전체를 덮은 귀신이 끼어든다는 점. 관람객을 놀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색소폰 연주까지 들려주는 색다른 귀신이다. 귀신의 연주곡은 두 남녀의 사랑의 결실이 익어가는 데 꼭 필요하다. 전반전은 상당히 코믹하다. 중반전도 코믹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코믹함 사이 사이 뭔가가 있었다는 점. 극 중 현우는 귀신 이야기 오타쿠다. 나중에 귀신의 집을 만들고 싶어한다. 현우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닥친 두려움도 ‘귀신 이야기’로 이겨냈고, 아슬 아슬한 과거 현장 확인도 ‘분신사바’를 통해서 한다. 또한 사랑고백도 ‘귀신 이야기’ 효과음으로 한다. 마지막 귀신의 집을 개관한 현우가 엄청나게 긴 사투리 릴레이를 가장한 프로포즈를 하는데 그야말로 사랑의 웃음폭탄이다. <좋은 하루>는 ‘귀신의 집’ 필요성을 유쾌하게 전달한다. “귀신을 핑계 삼아 한바탕 ‘꽥꽥’ 소리 지르거나 신나게 울고 나면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유키의 20대 흔적은 고스란히 효과음으로 불려나온다. 이 장면이 상당히 ‘찡’하다. 넘어지고 깨지고 소리쳤던 그 시절 그 순간이 영화처럼 ‘스르르’ 펼쳐질 때 상대는 감동하게 된다.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함께 한 추억이 소중하지 않는가.  제목이 왜 <좋은 하루>일까. ‘좋은 하루’가 간단한 인사 같아 보이지만 사실 젊은 남녀 사이를 돈독히 연결해주는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좋은 하루’란 인사  앞에는 (너를 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어서)란 말이 생략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삼십대를 지나 사십대를 향해 가고 있는 연인에게는 ‘좋은 하루’라는 인사와 함께 ‘사랑해’라는 말이 따라와야 한다. 결국 연극은 ‘좋은 하루’에서 ‘사랑해’라는 말로 나아가기 까지 멀고도 힘들었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오타쿠스럽게’또는 ‘발랄하게’ 불러 낸 것이다. 어쩌면 <좋은 하루>는 이십대 보단 삼십 대와 사십 대 관객들 마음에 더 많은 걸 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의 고민 그리고 마지막 용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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