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이 손쓸 수 없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들 속에서 외계인에게 침공 받은 지구인처럼 속절없이 절망 속에 허덕이다 끝내 골방만이 자신에게 허락한 세계의 전부가 돼버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기에 어떤 이유를 찾아서라도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엄마.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기에 엄마의 남자에게서라도 사랑을 느끼고자 하는 연약한 딸. 그렇게 온 가족이 집을 떠난다. 아들은 홀로 남아 집을 지키며 노래한다. 깜깜한 달빛도 죽은 밤. 파도소리는 마치 장송곡 같던. 난 어두운 바다 속 깊은 곳에 잠긴 듯해. 그럴 때, 난 집이 그리워. 가족들이 생각나. 어느새 아들에게 집은 아버지의 골방이 돼버린다. 가족사의 환영 속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아들은 어느 날, 집을 떠나기로 한다.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가족의 해체를 통해 들여다봄으로써 사랑과 부조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인 월남전쟁, IMF, 교육제도 등이 남긴 고통들을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 들여다본다.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과 아픔들을 보여주고 가족의 해체가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진정한 평화는 예술이라 말하고 나와 부조리한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재현하고 모방하는 리얼리즘이 아닌 현실 뒤에 감추어진 어둡고 참담한 진실을 현실보다 우선시키는 블랙 리얼리즘인 것이다.

흰색 군복을 입은 남자가 등장해 전쟁의 반대는 평화가 아닌 예술이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 말한다. 전쟁이 없어야 평화겠지만 누구나 마음껏 예술 활동을 할 수 있어야 진정한 평화라는 것이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남자로 설정됐는데 해설자로 엄마의 정부로 딸의 애인으로 이들 가족을 파괴하는 인물이고 국가와 사회의 폭력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이 작품은 기억의 파편들로 이루어졌고 그것은 작가인 아들의 눈에 투영되는 가족과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다. 너무 단편적 이어 온전한 기억으로 이어지지 않아 퍼즐 조각을 맞추기 힘들다. 남자가 나무 권총으로 딸을 향해 발사한다. 딸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딸은 남자가 죽였지만 국가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정의를 지키지 못한 국가와 사회가 힘없는 약자에게 항변할 수 없는 희생을 강요해 죽게 했다. 침묵해서는 안 됐다.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서 싸워야 했음에도 현실에 순응하고 침묵하기 때문에 점점 나약한 존재가 되어가고 대가 없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스모키 노래가 흐르는 무대. 엄마는 미싱을 돌리고 아들은 책을 읽고 아버지는 헤드셋을 끼고 파리채를 휘두르고 딸은 소파에 웅크린 채 있다. 빗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우산을 쓰고 나간다. 아버지가 쫓아가며 제발 가지 말라고 외친다. 모든 건 아들의 눈에 비치는 기억의 파편이다. 무대에 스티로폼이 깔리고 탈주민 장면에서 특히 그랬다. 실제와 상상이 뒤섞이고 현실과 과거를 넘나드는 연출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공간 감각이 필요한 작품일까? 엄마는 집 나간 아버지를 대신해 남자들과 몸을 섞어 받은 돈으로 자식들을 부양해왔다. 어린 남자와 잤는데 그 아버지가 미성년자 운운하며 협박해 다리를 벌려줬고 다시 그 두 사람과 쓰리썸까지 했다는 얘기를 아들에게 거침없이 말하며 가슴팍에서 돈뭉치를 꺼낸다. 모든 엄마가 자식을 부양하려고 창녀가 되진 않는다며 소리치는 아들. 엄마는 딸이 잘못된 것도 자신 탓이 아니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청바지를 사왔으니 입어보라고 내미는데 아동복이다, 누구의 기억이 어디에서 멈춘 것일까?

딸은 베트남 얘기에 열중인 아버지에게 간절한 도움의 눈빛을 보내지만 무시당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결국 손목을 그었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아버지는 그때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골방에 틀어박혀있다. 다리를 저는데 아들은 자신이 그렇게 했다고 믿지만 어릴 적 아버지에게 야구방망이로 숱하게 맞아 만들어 낸 왜곡된 기억이다. 베트남에서 부대원 전원이 한 여자를 윤간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돌아가야 한다고 늘 말하는 아버지 기억 속의 여자가 엄마인지 다른 베트남 여자인지는 알 수 없다, 엄마 정부인 하얀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사랑한다 고백하는 여고생 딸. 그런 그녀에게 빙빙 돌아보라는 남자. 도는 행위는 관계를 맺기 전에 하는 남자만의 독특한 시그널이다. 어느새 엄마도 같아 돌고 있다. 딸은 사랑의 라이벌인 엄마 앞에서 손목을 긋는다. 기억의 파편이 중복되고 왜곡되고 단편적 이어서 퍼즐 완성이 쉽지 않다. 달빛이 고요한 밤. 이들 가족이 탈출을 감행한다. 아버지가 이념에 반하는 글을 썼기 때문이다. 아들은 왜 그런 글을 써서 가족을 곤경에 빠지게 하냐며 툴툴거린다. 어둠 속에서 불빛이 세 번 반짝이면 오케이 신호이고 그때 건너면 된다. 아들이 수영을 못한다며 걱정하자 강물이 기껏해야 가슴팍 정도일 테니 괜찮을 것이라 다독인다. 불빛이 세 번을 넘어 깜박거리다 몇 번을 더 깜빡거리고 세 번에서 멈춘다. 아들은 뭔가 이상하다며 건너지 말자고 하지만 남을지 갈지 결정하라 채근한다. 결국 홀로 남은 아들은 잘 한 결정이라며 자신을 다독이는데 어둠 속에서 총성이 들린다. 그러더니 남자와 엄마가 가방을 들고 황급히 사라진다. 쫓아가보지만 찾을 수 없다. 지금은 무슨 기억일까? 집 나간 고양이를 찾는 그녀가 등장한다. 그녀에게 '집을 떠나며'를 읽어주기도 하고 작가가 자신의 이복누이일지도 모르며 언젠가는 만나러 갈 것이라는 것도 얘기한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날 그녀가 찾아온다. 고양이가 돌아왔으니 같이 파티하자고,,, 새로운 희망은 어디에 존재할까. 그녀일까 아니면 이 나라를 떠나 베트남 누이를 만나는 것일까. 부제가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 이고 노래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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