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2년 12월 26일 첫 공연된 〈아내들의 학교〉는 몰리에르의 극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성공작이었다. 이미 〈우스꽝스런 프레시외즈들〉이 파리의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부터 몰리에르에 대한 질시를 삭이지 못하던 기존 극단과 연극인들은 다시 한 번 ‘대박’을 터뜨린 이 작품에 대해 갖은 비난을 쏟아 붓는다. 이에 대해 반응을 자제하던 몰리에르는 1663년 6월 1일 〈아내들의 학교〉의 재공연을 끝낸 직후, 반 년 가까이 들끓던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 〈아내들의 학교 비판〉을 무대에 올린다.
저녁 식사에 초대된 사람들을 기다리는 두 자매와 초대되어 도착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로 이루어진 이 연극은 몰리에르가 자신의 연극 미학 및 가치관을 밝히기 위해 쓴 “대화체 논문”이었다. 연극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오로지 다수 관중의 판단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몰리에르에게 소위 ‘이론가들의 이론적 비판은 댓거리를 해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 당시에도 평론 같은 비연극적 행위들로 이루어지는 연극에 대한 판단은 어차피 연극 외적인 의도가 개입되어 행해진 평가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이 당시 파리 연극계의 주도권 다툼을 배경에 둔 극단 간의 생사를 건 전투의 형태를 띠게 되자 몰리에르는 스스로를 방어할 필요를 느꼈고 그 방어의 방책으로 연극에 대한 해설이나 이론을 설파하는 글이 아닌 자신의 연극론을 주제로 삼은 연극을 생각해낸 것이다. 결국 〈아내들의 학교 비판〉에서 몰리에르는 이론가들의 연극 평가행위 그 자체를 코미디의 소재로 만들어 훌륭하게 소화해 냄으로써 또 한 번 이론가들의 공격을 보기 좋게 내쳐버린다. 그러나 논쟁의 적들은 몰리에르를 비판하는 데 더 열을 올리고 그 비판은 작품에 대한 것을 넘어서 몰리에르의 사생활에까지 미치게 된다.

‘여인들의 학교 논쟁’에 연루된 모든 글들은 그것이 몰리에르를 옹호하는 것이건 비난하는 것이건 간에 몰리에르의 작품세계와 그의 삶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 객관성을 신임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더구나 몰리에르 자신이 직접 자신의 희극론을 피력한 이 작품은 몰리에르의 미학적, 윤리적 가치관을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인된 문서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이 작품을 통해 나타나는 몰리에르의 미학적 입장은 선험적 가치가 전형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 항상 본질에 기초한 유연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몰리에르는 이를 “자연을 따르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몰리에르 미학의 이러한 유연성은 몰리에르의 작품으로 하여금 세계적으로 그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게 한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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