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막스 프리쉬 '중국의 장벽'

clint 2019. 5. 6. 22:49

 

 

** 막스 프리쉬의 만리장성으로 1970면대 후반에 김창활씨의 번역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되고 공연된 작품도 이 블로그 어딘가에 있다. 최근에 번역된 이 작품이 번역도 매끄럽고 해서 다시 여기에 올린다.

 

막스 프리쉬는 진혼곡이라는 부제를 붙인 두 번째 희곡 <이제 그들은 다시 노래한다.>1945년에 발표하고, 1947년 스스로 소극이라는 부제와 함께 <중국의 장벽>을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함께, 계속되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과 활용으로 대량학살이 가능해진 새로운 시대의 위협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며 뒤로 물러서서 방관만 하는 스위스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1947년 가을 취리히에서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난다. 이미 브레히트가 희곡 <갈릴레이>에서 언급했으며, 스위스 희곡작가 뒤렌마트가 희곡 <물리학지들>에서 다루었던, 대량학살무기를 통한 인류 멸망이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매우 시적인 구성을 통해, <중국의 장벽>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브레히트처럼 역사적 인물을 무대 위에 등장시키면서도 브레히트와는 다른 관점과 개념을 이 작품에 담고 있다. , 뒤렌마트가 현재 사건과 인물로 희극적 세계관을 구축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역사적 인물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1944년 발표한 그의 첫 번째 희곡 <산타크루즈>에서 사용했던 방법과 같이, <중국의 장벽> 에서도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극작술을 사용하고 있다. 즉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지금 여기, 바로 이 무대라고 명시하면서, 현재를 대변하는 인물로 현대인을 등장시키고,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로 진시황제와 가면을 쓴, ‘나폴레옹’, ‘본디오 빌라도’, ‘브루투스’, ‘스페인의 펠리페 왕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렇게 과거 인물과 현재 인물을 같은 무대에 등장시키는 방식은 네 번이나 다시 고쳐서 쓴 이 작품의 모든 판본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쓴 <중국의 장벽> 첫 번째 판본은 마지막 판본과 7, 10, 20장 내용이 다르다. 1955년 두 번째 판본에서는 13장 내용이 더 발전되었고, 1965년 세 번째 판본에서는 생략된 부분이 많이 나타났다. 결국 1973년 네 번째 판본이 오늘날 알려진 <중국의 장벽> 최종본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희곡을 고치고 다시 쓴 이유는 몇 가지 작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 때문이다. 작가가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원자폭탄을 통한 대량학살이라는 위협 앞에서 지식인이자 시인인 현대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힘을 가진 자의 뜻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그리고 지배하는 자와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 어떤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이야 할 것인지, 권력과 진리, 개인의 능력과 국민의 권리를 어떻게 무대 위에서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6년 첫 번째 판본에서 막스 프리슈는 백성의 목소리라고 하는 벙어리를 지식인으로 설정했다. 그는 다가오는 위협을 알고 있었고 진실을 대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5두 번째 판본에서 작가는 현대인벙어리를 분리했다. <중국의 장벽>1946년 취리히에 있는 배우극장에서 초연했고, 두 번째 판본을 바탕으로 한 공연은 1955년 베를린에서 오스카 프리츠 슈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세 번째 판본은 두 번째 판본을 연출한 오스카 프리츠 슈의 의견에 따라 수정되었고, 1965년 함부르크에서 공연되었는데 출판되지는 않았다. 네 번째 판본은 연출자 미켈(Miquel), 프랑스어 번역자 베르게로 (Bergerot)가 함께 수정했고, 1972년 파리 오데옹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파리 공연 대본이라는 부제와 함께 출판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작품의 최종본으로 남아 있다.

 

 

 

 

막스프리쉬는 첫 번째 희곡 <산타크루즈>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무대는 우리 영혼의 경험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우리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1946<중국의 장벽> 초연 공연 팸플릿에 막스 프리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연극은 우리 영혼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우린 이런 무대를 매일같이 머릿속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막스 프리쉬가 여기서 말한 이런 무대는 자연과학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현재와 독선적이고 독재적이며 국민을 무시하고 제국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과거 인물들과 연관된 무대인 것이다. 만일 정치제도가 달라진다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중국의 장벽>을 쓴 이유는 대량학살과 인류멸망의 위기 앞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제 또다시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과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하지 마세요!"

 

 

 

 

이 작품에서 막스 프리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 뭔가 숨겨진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 비인간적인 지배 방식이 폭로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을 막스 프리쉬는 희극이라는 장르로 구분한 것이다.

1955년 이 작품을 개작할 때, 막스 프리쉬는 왜 이 작품을 희극이라고 구분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막스 프리쉬는 이 작품은 비교할 수도, 헤아려 볼 수도 없는 우리 자의식이 바로 희극이라는 것을 풍자(패러디)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패러디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지배 계층의 권력에 대한 것이며, 동시에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학과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현대인역을 맡은 배우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이 연극은 오늘밤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인들이 만리장성을 쌓는 시대라는 설정은 아주 웃기는 일이죠."

그러나 처음과 끝 부분에서 다시 등장하는 공연 시간에 관한 언급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연극이 정치적 지배 관계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인간이 중심인 세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러 세기에 걸친 인물을 동시에 마주치게 하는 극작술을 보여 줌으로써, 사실은 연극의 계몽적 기능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작품의 희극성을 드러내주는 장면으로, 로미오가 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언급할 수 있다.

열역학함수란 무슨 소릴까? 원자란 무슨 소리야? 모두들 그런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고 있어. 열로 인한 이 세계의 멸망이란 무슨 뜻이지? 아무도 모를 소리들이야. 난 시간이, 시간이 멈췄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이렇게 시대를 대비해서 얻는 희극적 효과는,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 작품의 스타일로 변형되며, 내용이 되고, 표현방식이 되어,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서 표현하는 희극적 대비는, 막스 프리쉬가 비교할 수도, 헤아려 볼 수도 없는것으로 표현한 이 작품의 핵심적인 희극성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서,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충분히 희극적이며, 동시에 충돌과 마찰이 생기게 한다. 예를 들자면, ‘현대인나폴레옹이 마주치면서 이 작품의 계몽적 기능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기능은 경계를 넘어서는이 작품의 극작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폴레옹 : 유럽은 세계의 ..

현대인 : 그만하십시오, 각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나폴레옹 : ... 유럽의 주인은 지금 누군가?

현대인 : 각하...!

나폴레옹 : 시민이여, 그대는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요?

현대인 : 각하. 원자는 쪼개질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 그게 무슨 소리요?

현대인 :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하가 명령을 내리신다면.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와있습니다. 각하, 누가 이 선택을 해야 합니까?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이?

나폴레옹 : 당신은 민주당인가?

현대인 : . 민주당을 후원합니다. 각하, 우리는 더 이상 일인 독재정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지구상 어디나 마찬가지죠.

 

 

 

 

오늘날 기능한 모든 전쟁 수단과 위협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이 작품은 지식인의 비겁함과 절대적인 권력에 부응하는 기회주의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끝없이 약탈당하는 민중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위협에 대한 관객의 경각심을 높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사회적 현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 작품의 의미와 의도는 각기 다른 시대,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와 관점을 만들어 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일인독재 권력으로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다.

<중국의 장벽>은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극작술을 통해, 정치사회적인 계몽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이집트를 무대 위에서 언급하면서, 인간이 역사가 시작하는 처음과 마지막을 하나의 동일한 시간으로 묶어놓고 있다. 막스 프리쉬는 이런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작술을 1951년과 1956년에 발표한 <외더란트 백작> 1967년에 발표한 <이력서>에서도 사용했다.

막스 프리쉬는 진혼곡이라는 부제를 붙인 두 번째 희곡 <이제 그들은 다시 노래한다.>1945년에 발표하고, 1947년 스스로 소극이라는 부제와 함께 <중국의 장벽>을 발표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함께, 계속되는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개발과 활용으로 대량학살이 가능해진 새로운 시대의 위협에 소극적으로 행동하며 뒤로 물러서서 방관만 하는 스위스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1947년 가을 취리히에서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만난다. 이미 브레히트가 희곡 <갈릴레이>에서 언급했으며, 스위스 희곡작가 뒤렌마트가 희곡 <물리학지들>에서 다루었던, 대량학살무기를 통한 인류 멸망이라는 엄청난 이야기를 매우 시적인 구성을 통해, <중국의 장벽>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는 브레히트처럼 역사적 인물을 무대 위에 등장시키면서도 브레히트와는 다른 관점과 개념을 이 작품에 담고 있다. , 뒤렌마트가 현재 사건과 인물로 희극적 세계관을 구축한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역사적 인물의 현대화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1944년 발표한 그의 첫 번째 희곡 <산타크루즈>에서 사용했던 방법과 같이, <중국의 장벽> 에서도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확장하는 극작술을 사용하고 있다. 즉 사건이 벌어지는 곳은 지금 여기, 바로 이 무대라고 명시하면서, 현재를 대변하는 인물로 현대인을 등장시키고, 과거를 대표하는 인물로 진시황제와 가면을 쓴, ‘나폴레옹’, ‘본디오 빌라도’, ‘브루투스’, ‘스페인의 펠리페 왕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렇게 과거 인물과 현재 인물을 같은 무대에 등장시키는 방식은 네 번이나 다시 고쳐서 쓴 이 작품의 모든 판본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쓴 <중국의 장벽> 첫 번째 판본은 마지막 판본과 7, 10, 20장 내용이 다르다. 1955년 두 번째 판본에서는 13장 내용이 더 발전되었고, 1965년 세 번째 판본에서는 생략된 부분이 많이 나타났다. 결국 1973년 네 번째 판본이 오늘날 알려진 <중국의 장벽> 최종본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희곡을 고치고 다시 쓴 이유는 몇 가지 작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 때문이다. 작가가 가장 고민했던 문제는, 원자폭탄을 통한 대량학살이라는 위협 앞에서 지식인이자 시인인 현대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힘을 가진 자의 뜻과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그리고 지배하는 자와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 어떤 반대의 목소리를 내놓이야 할 것인지, 권력과 진리, 개인의 능력과 국민의 권리를 어떻게 무대 위에서 다루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46년 첫 번째 판본에서 막스 프리슈는 백성의 목소리라고 하는 벙어리를 지식인으로 설정했다. 그는 다가오는 위협을 알고 있었고 진실을 대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55두 번째 판본에서 작가는 현대인벙어리를 분리했다. <중국의 장벽>1946년 취리히에 있는 배우극장에서 초연했고, 두 번째 판본을 바탕으로 한 공연은 1955년 베를린에서 오스카 프리츠 슈 연출로 무대에 올랐다. 세 번째 판본은 두 번째 판본을 연출한 오스카 프리츠 슈의 의견에 따라 수정되었고, 1965년 함부르크에서 공연되었는데 출판되지는 않았다. 네 번째 판본은 연출자 미켈(Miquel), 프랑스어 번역자 베르게로 (Bergerot)가 함께 수정했고, 1972년 파리 오데옹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파리 공연 대본이라는 부제와 함께 출판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 작품의 최종본으로 남아 있다.

 

 

 

 

막스프리쉬는 첫 번째 희곡 <산타크루즈>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무대는 우리 영혼의 경험을 드러내는 곳이다. 그래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깨닫고 있는 우리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1946<중국의 장벽> 초연 공연 팸플릿에 막스 프리슈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연극은 우리 영혼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우린 이런 무대를 매일같이 머릿속에 지니고 살아갑니다."

막스 프리쉬가 여기서 말한 이런 무대는 자연과학자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세상이 어떻게 멸망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현재와 독선적이고 독재적이며 국민을 무시하고 제국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권력을 독차지하려는 과거 인물들과 연관된 무대인 것이다. 만일 정치제도가 달라진다면, 인류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중국의 장벽>을 쓴 이유는 대량학살과 인류멸망의 위기 앞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제 또다시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인간은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술과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하지 마세요!"

이 작품에서 막스 프리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 뭔가 숨겨진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 비인간적인 지배 방식이 폭로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을 막스 프리쉬는 희극이라는 장르로 구분한 것이다.

1955년 이 작품을 개작할 때, 막스 프리쉬는 왜 이 작품을 희극이라고 구분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막스 프리쉬는 이 작품은 비교할 수도, 헤아려 볼 수도 없는 우리 자의식이 바로 희극이라는 것을 풍자(패러디)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런 패러디는 언제나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지배 계층의 권력에 대한 것이며, 동시에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학과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현대인역을 맡은 배우는 관객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이 연극은 오늘밤에 일어난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인들이 만리장성을 쌓는 시대라는 설정은 아주 웃기는 일이죠."

그러나 처음과 끝 부분에서 다시 등장하는 공연 시간에 관한 언급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연극이 정치적 지배 관계를 벗어나, 우리 사회가 민주화와 인간이 중심인 세상을 만들어 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러 세기에 걸친 인물을 동시에 마주치게 하는 극작술을 보여 줌으로써, 사실은 연극의 계몽적 기능을 드러내고자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작품의 희극성을 드러내주는 장면으로, 로미오가 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언급할 수 있다.

열역학함수란 무슨 소릴까? 원자란 무슨 소리야? 모두들 그런 알 수 없는 소리들을 하고 있어. 열로 인한 이 세계의 멸망이란 무슨 뜻이지? 아무도 모를 소리들이야. 난 시간이, 시간이 멈췄다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이렇게 시대를 대비해서 얻는 희극적 효과는, 가면을 쓴 등장인물들을 통해 이 작품의 스타일로 변형되며, 내용이 되고, 표현방식이 되어, ‘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서 표현하는 희극적 대비는, 막스 프리쉬가 비교할 수도, 헤아려 볼 수도 없는것으로 표현한 이 작품의 핵심적인 희극성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서, 서로 다른 관점과 시각을 드러낸다는 것은 충분히 희극적이며, 동시에 충돌과 마찰이 생기게 한다. 예를 들자면, ‘현대인나폴레옹이 마주치면서 이 작품의 계몽적 기능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기능은 경계를 넘어서는이 작품의 극작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폴레옹 : 유럽은 세계의 ..

현대인 : 그만하십시오, 각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나폴레옹 : ... 유럽의 주인은 지금 누군가?

현대인 : 각하...!

나폴레옹 : 시민이여, 그대는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요?

현대인 : 각하. 원자는 쪼개질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 그게 무슨 소리요?

현대인 :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하가 명령을 내리신다면.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와있습니다. 각하, 누가 이 선택을 해야 합니까?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이?

나폴레옹 : 당신은 민주당인가?

현대인 : . 민주당을 후원합니다. 각하, 우리는 더 이상 일인 독재정치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 지구상 어디나 마찬가지죠.

 

 

 

 

오늘날 기능한 모든 전쟁 수단과 위협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이 작품은 지식인의 비겁함과 절대적인 권력에 부응하는 기회주의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끝없이 약탈당하는 민중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현재의 위협에 대한 관객의 경각심을 높이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사회적 현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 작품의 의미와 의도는 각기 다른 시대, 각기 다른 관점을 통해 서로 다른 의미와 관점을 만들어 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일인독재 권력으로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데 있다. <중국의 장벽>은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는 극작술을 통해, 정치사회적인 계몽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다. 미국과 유럽, 중국, 이집트를 무대 위에서 언급하면서, 인간이 역사가 시작하는 처음과 마지막을 하나의 동일한 시간으로 묶어놓고 있다. 막스 프리쉬는 이런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작술을 1951년과 1956년에 발표한 <외더란트 백작> 1967년에 발표한 <이력서>에서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