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우와 포도」(A Raposae as Uuas)는 1953년의 작품으로 브라질에서의 초연 직후 아르헨티나 위시해서 전 라틴아메리카 각국에서 공연되고, 유럽 각국, 동구권, 아시아에서도 인도 중국 일본 등 순식간에 세계 도처에서 번역 공연되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이 작품의 테마는 동서양 초월해서 또 민족이나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테마인 것은 긍정하나, 유럽이외 나라의 희곡이 단시일 내에 이토록 전세계를 휩쓴 것은 드문 예이다.

작가 길레르메 휘게레도는 1915년 상파울로 에서 태어나 리오데자네이로 ‘대학에서 법을 전공하며, 한편 저널리즘과 문학세계에 들어가 시· 소설· 평론 ·번역 등 폭넓은 활동을 했다. 「여우와 포도」는 발표한 그해, 브라질 연극평론가 협회의 금상, 리오데자네이로市 상을 수상, 수개국의 연극제에서 상을 휩쓸었던 작품이다.

선반위에 까맣게 익은 달콤한 포도를 따먹으려고 여우는 두 손을 뻗친다. 그러나 선반은 너무 높아 여우의 손발은 더 이상 닿지 않는다. 그는 포도를 따먹기 위한 다른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자위를 한다. "저 포도는 푸르탱탱하니까!“ 이 우화는 고도의 성찰과 되새김을 요구하고 있다. 잘 익은 포도는 자유를 상징한다. 포도를 따먹는 행위는 자유를 누리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압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못난 여우들은 자유의 쟁취를 위해 노력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몸부림 대신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익숙해 있다. 저 포도는 푸르탱탱하다고! 이 같은 자기기만의 언어로 우리는 우리자신의 게으름을 은폐시킨다. 참 자유를 획득하려는 몸부림은 <여우와 포도> 길레르메 휘게레도 작품에서 구체화된다. 참 자유를 되찾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노예 이솝의 마지막 절규가 마비된 우리의 의식을 강타한다.

노예 이솝에 의해 이야기는 여러 우화가 이 공연의 주제를 비유적으로 상기시켜준다. 듣는 희곡, 읽는 희곡의 요소가 사변적인 색체가 강한 우화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평면적인 대사나 이야기 등은 그것이 노리는 강한 교훈성에 의해 부분적이나마 그 단조로움이 극복된다. 압제에 길들여진 여러 형상들을 비유적 차원으로 형상화한 이 공연은 작가 휘게레도가 사는 브라질의 현실뿐만 아니라 우리의 헝클어진 역사와 현실을 조망케 한다. 현실성과 개연성을 상실한 인물 및 상황설정이 우화가 지닌 교훈적 힘에 의해 커버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반 사실성과 우화성이 주종을 이룸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사실주의 연극술에 의존하였음 또한 제고되어야 할 숙제라 할 수 있다.

초연 연출가의 말 - 임영웅
지난 가을 어느 날, 한말숙여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은 희곡이 있는데 작품을 읽어보고 난 뒤 이야기하자고 했다. <여우와 포도>를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즉각 공연하겠다고 답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브라질의 戯曲이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수없이 이솝 우화를 듣고 읽었다. 그러나 너무 친숙했던 탓이었을까? 재미있고 짜릿한 그 寓話들의 작자인 이솝에 대해서는 우리는 별로 아는 바가 없다. ‘여우와 포도’는 이솝 寓話 중의 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戯曲은 주인공이 이솝 자신이다. 희랍 시대에 노예였다는 이솝이 어떻게 해서 갈망하던 자유를 얻게 되었는가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웃기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연이 남는다. 批評家들이 이 작품은 예술성과 대중성, 그리고 사상성까지 조화를 이룬 걸작이라고 칭찬한 것에 공감이 간다. <여우와 포도>는 희랍 시대를 무대로 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진실은, 그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통하는 영원한 것이다.
무대를 양식화하고, 의상을 現代化한 의도도 이 이솝의 이야기가 희랍 시대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생각에서였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조우 '태변' (1) | 2019.05.06 |
|---|---|
| 몰리에르 '아내들의 학교 비판' (1) | 2019.05.04 |
| 호세 소리야 이 모랄 '돈 후안 테노리오' (1) | 2019.04.29 |
| 플라우투스 '암피트리온' (1) | 2019.04.26 |
| 루돌프 베지어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 (1) | 2019.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