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작가 테르지앙이 조정래 대하소설 <아리랑>의 프랑스어판 번역본을 읽고 희곡으로 각색했다. 총 12권, 4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대하소설이 유럽에서 번역출판된 것도 최초의 일일 뿐만 아니라, 이처럼 희곡집으로 재생산된 것도 처음 있는 일. 작가는 <아리랑>의 방대한 스케일을 3일간의 주요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원작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증 주요인물에 극의 흐름을 집중했다. '춘향'이라는 성처녀 캐릭터를 창조하여 주제를 부각시켰으며, 섬세하게 변주되는 무대장치들은 한 편의 연극을 눈앞에 보고 있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저지른 극악무도한 행태들을 가려왔던 침묵의 벽이 조정래의 소설과 더불어 일거에 허물어진 느낌이다. 이 벽은 희곡이라는 장르의 어조에 새롭게 실려 다시 충격파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라 말하는 지은이는 민족의 슬픈 역사를 복권시키고 긍지의 함성을 이끌어내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독일이 분단을 극복했듯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희곡 각색자는 프랑스 시인이자 극작가인 피에르 앙드레 테르지앙. 테르지앙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아리랑’ 전권을 모두 읽은 뒤 두 달에 걸쳐 이 희곡을 썼다. 총 12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 한 권의 희곡으로 각색 되는 과정에서 300명 가까운 등장인물들은 몇 명 으로 간추려졌다.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내용을 압축하기 위해 ‘춘향’과 ‘투사(鬪士)’라는 2명의 캐릭터가 새로 추가됐다.
시간적으로는 1894년에서 1945년까지 51년의 세월이 3일간의 사건으로 재구성됐으며 전체 3막 42장으로 이루어졌다.
조정래씨는 “희곡에 100%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긴 이야기를 압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으며 한국인의 정서를 표출하기 위해 애쓴 것 같다”며 “다만 구체적 묘사들이 생략돼 리얼리티를 좀 더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예를 들어 일본군이 한국인들을 사격연습 표적으로 활용하는 장면 등은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원작 ‘아리랑’에 생생한 남도 사투리가 살아 있는 것과는 달리 ‘분노의 세월’은 표준어로 서술됐다. 불어판 ‘분노의 세월’이 현대 표준어로 씌어진 만큼 한국어 번역도 표준어로 된 것. 원작 ‘아리랑’과 희곡 ‘분노의 세월’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도 드러낸다. 남녀 간 이끌림이나 사랑 묘사가 절제돼 있는 ‘아리랑’과 달리 ‘분노의 세월’에는 키스와 포옹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
각색자인 테르지앙은 희곡집 말미에 “조정래의 문체 속에는 일견 서구적이면서 때로는 동양적인 액센트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어렴풋한 반향까지 풍부하게 발견된다.”고 밝혔다.

작가 : 피에르 앙드레 테르지앙
시인이자 극작가, 미술, 건축을 공부한 법학도로서 법률가로 일했고 지금은 시나리오와 희곡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9.11 테러와 관련된 시들을 발표했으며, 역사적 주체와 행위자를 텍스트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련의 작업으로 세 편의 희곡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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