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하이너 뮐러 '살육'

clint 2019. 3. 31. 12:45

 

 

 

눈 덮인 전장에 병사 넷이 굶주리고 있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데 동의한다. 문제는 누가 희생되는가이다. 병사 2, 3, 4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지만 병사1은 총을 잡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상태다. 셋은 총을 내리고 병사 1을 쳐다본다.

잠시 후 식인행위가 이루어진다. 살육의 또 하나의 장면 <푸줏간 주인과 아내> 또한 식인의 잔혹한 이미지를 이용한다. 푸줏간 주인 사베스트는 나치스 돌격대원으로 일하기 때문에 판매할 고기를 받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성찰하는 대신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 고객에 대한 봉사라 믿는다. 미군 폭격기가 근처에 추락하자 푸줏간 주인은 비행사를 체포하여 살해한다. 죽이는 것은 푸줏간 주인의 전문 분야라는 게 살해명령을 한 부대장의 주장이다. 푸줏간주인의 행태에 주민들은 냉소적이다

이 장면은 파시즘의 폭력성이 독일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존재하는 가에 대한 신랄한 풍자이다. 소시민 사회까지 지배하는 일상의 파시즘이 보여주는 야만성은 인간을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한 것으로 격하시킨다. 뮐러에게 살인, 식인과 같은 부정적 요소는 나치의 기만적 행위와 야만성을 철저하게 비판하기 위한 전략적표현 기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나아가 이 같은 요소들이 지닌 잔혹성의 표출은 인간의 내부에 잠재하는 야만성 드러내기의 방식이다. 하이너 뮐러의 텍스트는 이 드러냄을 통해 인간이 지닌 야만적 자아를 인식하도록 요구한다. 뮐러에게 잔혹성은 인간의 실제 조건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연극적 장치로 기능한다.

 

 

 

 

 

 

살육도살장으로서의 독일 역사에 관한 시도 계열의 서막으로서 민족사회주의의 지배 시기와 19454, 러시아군의 베를린 입성 시기를 배경으로 파시즘의 야만적 폭력성을 압축된 다섯 개의 장면에 담고 있다. 첫 번째 장면 <긴 칼의 밤>을 보자. “국회 방화 사건이 일어난 날밤에 공산주의자 A는 나치스 친위대 대원인 형(B)의 방문을 받는다. 예전에 A와 행동을 같이하던 동료이기도 했던 B는 게쉬타포의 심문을 받은 이후, 배반을 하지 않았음에도 동료들의 불신으로 나치의 일원이 된다. B의 내적 갈등은 결국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배신자라는 치욕에서 벗어나기 위해 A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하게 만든다. 파시즘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형제를 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여기에서 형제간의 갈등, 형제 살인의 모티브가 독일 국민의 분열을 상징하는데 이용된다. 뮐러에 따르면 독일의 역사는 그 시작 이래 근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는 형제간의 싸움의 역사이며, 따라서 이는 독일 문학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될 수밖에 없다.

2차 세계대전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상기시키는 두 번째 <내겐 동료가 하나 있었네.>는 인간 가치의 상실과 도착적 인간의 모습에 대한 극단적인 본보기이다. 눈 덮인 전장에 살아남은 네 명의 독일 병사는 추위와 굶주림에 조국과 인간의 의미를 상실한다. 병사4에 의해 우리의 가장 약한 일원이자 위험으로 간주된 병사1은 나머지 세 병사에 의해 잡아먹힌다. 파시즘의 폭력성이 일으킨 전쟁은 인간을 식인자로 만든다. 가장 극단적인 야만의 형태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식인 행위는 민족사회주의가 전쟁의 수행을 위해 기만적으로 전개한 의식 고취의 개념들, “충성”, “궁극적 승리”, “전우애에 의해 정당화된다.

세 번째 <소시민의 결혼>은 종전을 바로 앞둔 시기의 어느 소시민의 집을 보여준다. 광신적인 히틀러 추종자인 이 집의 가장은 히틀러의 자살, 총통께서 보여주신 본보기에 따라아내와 딸을 권총으로 사살하는 충성심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정작 자신을 쏠 차례에 가서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비겁한 자이다. 히틀러 시대에 습득된 민족사회주의 이데올로기는 가장 친밀한 가족 관계까지 파괴한다. 3제국이 몰락하는 시기에도 파시즘은 일반 소시민의 의식 속에 여전히 깊이 뿌리 박혀 있다.

<푸줏간 주인과 아내>는 네 번째. 소도시의 어느 푸줏간 주인, 사베스트는 나치스 돌격대의 대원으로서 근교에 추락한 미군 조종사를 가차 없이 죽인다. 앞의 세 번째 장면과 마찬가지로 소시민에 속하는 푸줏간 주인을 중심으로 파시즘의 야만성이 독일의 일상에 깊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피비린 내 나는 살인과 도살의 끔찍스러움이 지배하고 있다. 미국인을 살해하고 난 후 꾸는 푸줏간 주인의 꿈은 경악스러운 폭력의 악몽이다. 악몽에 시달리던 푸줏간 주인은 결국 근처의 호수에서 익사한다. 그의 아내는 처음에 그를 구하려 하나 나중에는 그의 익사를 방조한다. 그녀는 남편이 죽어가는 가운데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계산한다. 민족사회주의의 시대에 일상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이기주의일 뿐이다. 소도시에서 일어난 이 사건 속에 독일 파시즘의 시끄러운 소리가 콜라주 형태로 삽입되어 있다. 외국인과 유태인에 대한 적대감, 자기들 간의 증오와 악의가 뒤섞인 채,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이 소리는 파시즘 지배하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다섯 번째 장면 <침대보 또는 성령잉태>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이다. 1945, 러시아군이 베를린에 입성한다. 사람들이 숨어있는 어느 지하실에 탈영병인 독일 병사 하나가 뛰어 들어온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이 병사에게 침대보를 이용해 밖에 백기를 걸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백기를 걸던 병사는 나치스 친위대에 발각되고 지하실 사람들은 모든 책임을 그 병사에게 전가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병사가 끌려 나가 처형된 후 러시아 군인들이 병사의 시체를 메고 지하실에 들어온다. 지하실에 있던 늙은 여자는 그 병사가 자기 아들이라 속이고 동정을 구함으로써 지하실 사람들은 러시아 군인으로부터 생명뿐만 아니라 빵까지 얻는다. 러시아 군인이 빵을 던져주고 나가자 죽은 자 위에서 빵을 차지하기 위한 살아남은 자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파시즘의 몰락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비겁함, 거짓 그리고 자존심을 상실한 생존 욕과 같은 일반인들의 이기적 사고 유형 내지 행동 유형이다. 파시즘의 영향은 종전 이후에도 계속 살아남아 작용하고 있다. 뮐러는 이같은 민족사회주의 잔재의 비판과 함께 이 장면에서 러시아군과 독일인의 첫번째 만남을 신성 모독적으로 성령잉태에 비유함으로써 동독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사회주의를 얻게 되는 순간을 비판한다. 자체적인 혁명이나 희생 없이 러시아로부터 선물로 얻은 강권 정치의 모델로서의 사회주의는 동독에게는 낯선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이며 이는 하나의 무거운 짐으로 작용한다.

 

 

 

 

파시즘 하에서의 인간들의 야만적 모습, 즉 형제 살해, 동료 살해와 인육을 먹는 모습, 가족 살해, 포로 살해와 배우자의 간접살해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탈영병 희생시키기가 보여주는 극단적 테러상황은 민족사회주의의 독재가 끝난 이후에도 그 야만성이 그대로 개인과 사회의 의식 상태와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식시킨다. 여기에서 주지할 수 있는 것은 이 다섯 장면에서 이루어지는 테러의 극단적 공격이 모두 독일인에 의해 독일인에게 가해지고 있다는 점과 생존의 조건으로서 항상 살육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살은 뮐러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 공식적 역사상에 대한 논박이다. 독일의 역사는 뮐러에 의해 마치 도살자와 도살당하는 자만 존재하는 듯, 일방적으로 묘사된다. 이 같은 일반화된 묘사는 파시즘이 과연 독일인들 내에서만 존재하고 다른 민족들, 러시아인, 폴란드인 또는 유태인 등에 가해지지는 않았는가, 또 실제로 지하에서 파시즘에 저항했던 독일인과 파시즘에 희생당한 독일인에게 이러한 일방적 묘사가 정당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비판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뮐러의 이러한 일방적인 파시즘 묘사는 역사 속에 주체가 되지 못하는 인간의 극단적인 객체 위치인간의 야만화 그리고 빠져나갈 수 없는 죽이기와 살인의 순환을역사의 흐름으로 보고 있는 그의 전략적 묘사 방식이다. 다시 말해 역사에 무감각하고 과거를 망각하고 있는 관객, 독자에게 뮐러의 이러한 극단적인 파시즘 묘사는 하나의 충격 요법으로 작용한다. 뮐러가 이러한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만큼 파시즘과 그에 따른 야만성의 역사는 독일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거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