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두고 온 이북의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동해안 마을에 자리 잡고 사는 어민 세 가족의 망향가이다. 김 노인과 박 노인과 북청 댁은 전쟁 때 고향을 등진 피난민들이다. 그중 박 노인은 갓난이까지 가족을 몽땅 북에 두고 왔고 북청 댁의 남편은 월남에 실패했으며 김 노인은 처와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부인은 거제도 수용소에서 죽었고 아들은 도회지에서 유학중이다. 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이들은 마음속의 고향, 그리고 고향과 자신을 이어주는 바다와 함께 살고 있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김 노인은 배를 소유하고 있고 박 노인은 그 배의 선장으로 배를 타고 있으며 북청댁은 김 노인의 집에 붙은 주막집을 꾸리며 함께 거처하고 있다.
막이 오르면 장소는 북청댁의 주막이고 때는 한창 명태 잡히는 계절의 저녁나절이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동네 어부와 김 노인의 배일꾼들의 대화를 통해 선장인 박 노인의 기행이 드러난다. 그는 명태를 잡으러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 쪽 북쪽바다로 배를 돌리곤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김노인은 북청댁과 박선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박 노인이 배를 못 타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2막은 김 노인과 박 노인의 대결이다. 박 노인의 안전을 염려하는 김 노인과, 바다와 고향 생각에 사로잡힌 박 노인이 의견 대립을 벌인다. 결국, 박 노인은 마지막 출항을 허락받고 운해가 낀 바다로 나가고 그 사이 은행에 취직한 김 노인의 아들 창길이 어촌에 돌아온다.
3막은 1, 2막과 좀 동떨어진 분위기다. 1, 2막이 어촌의 구체적, 일상적 삶에 기초해 있다면 3막은 일종의 토론 형식이다. 고향과 바다를 버릴 수 없는 피난민 제1세대와 새로운 삶을 원하는 2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다. 고향이 아버지의 삶을 앗아갔다는 아들자식에 김 노인은 항변한다. 또한 여기서 두 세대 간의 통일에 대한 의견 대립도 드러난다. 이런 통일론들 중에는 오늘의 상황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아직까지도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토론은 바다로 나갔던 박 노인이 결국 피납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조금은 엽기적인 사건으로 끝난다. 서울 색시와의 결혼을 앞둔 아들이 집을 새로 짓자고 조르자 격한 아버지가 낡은 집의 천장에 올라가 보라고 한다. 천장에는 거제도에서 죽은 아내의 시신이 아직도 누워 있다. 자신의 시신을 꼭 고향의 흙으로 덮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극은 시체를 본 아들의 비명과 실성한 듯한 노인의 중얼거림으로 끝난다.

작가 이 반
이 극의 장정은 비교적 간결명료하게 압축된 플롯에 있다. 비록 3막에서 톤이 바뀌고 극의 끝처리에 멜로드라마와 같은 작위성이 있지만 박선장의 기행의 발견, 박선장의 마지막 출항, 우려되었던 피납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극 행동은 우리 희곡에서 보기 드문 긴박감과 압축미를 지닌다. 또한 극 전반에 깔리는 불길함에 대한 예시도 고전적이다. 즉 만선의 계절에 다른 어선에 비해 고기를 못 잡는 박 선장, 창길의 돌아옴, 마지막 출항 날의 짙은 운해, 그리고 좀 부자연스러운 면은 있으나 중간 중간 김 노인과 북청 댁의 삶의 지주로서 천정에 누워있는 시신에 대한 언급들이 그것이다. ‘그날, 그날에’는 또한 성격 묘사 면에서도 작가 작품 중 가장 생생하다. 고향만을 그리며 사는 김 노인과 박 노인 북청 댁의 묘사는 상당한 사실적인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만 창길의 성격이 다소 설명적 평면적인 느낌이 있으며 길자와 같은 군소인물의 처리도 필연성이 조금 부족하다. 대사는 3막의 토론 부분에서 창길의 직접적인 의견 표명 부분이 어색하게 두드러지지만 양세대의 입장이 각각 설득력 있게 비교적 균형을 갖추고 제시 되어있다.

대한민국 연극제 희곡상(1979)에 빛나는 이반 작「그 날, 그 날에」이다.
이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도 고향을 바라볼 뿐 갈 수는 없는 실향민의 한을 절절하게 드러낸 작품으로서, 1979년 제3회 대한민국연극제에 극단 광장이 조병진 연출로 출품하여, 문화공보부 장관상, 희곡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한 작품이다. 통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못한 시대에 분단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그렸다는 점과, 고향을 이북에 두고 남하한 동해안 어부들의 가족과 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어부들의 생활상을 보여 주며 투박한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리얼리즘 드라마의 진수로 평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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