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상현 '진과 준'

clint 2019. 3. 2. 08:55

 

 

 

샴쌍둥이5~10만 명 가운데 1 명 꼴로 태어나며, 이 가운데 60%는 사산, 35%는 출생 24 시간 내에 사망하는, 실제 생존 빈도는 20만 명 당 1명 정도이다. ‘이란 단어는 최초로 태국의 이름(Siam/사이암)에서 유래되었고, 우리말로는 기적둥이라 불린다. 기적적인 생명인 만큼 은 독특한 소재로 영화(공포물)와 만화(스릴러물)에서 다뤄져 왔다. <진과 준>에서는 이란 소재에 전설적인 러브스토리를 담아 새롭고 신선한 각도로 풀어낸다. <진과 준>은 오래 전 서로 사랑해선 안 될 오누이의 슬픈 사랑의 전설을 담고 있다. 전설에 의하여 그들은 후세에 천 년의 단 한번, 그러나 서로 마주볼 수 없는 샴 쌍둥이로 태어날 운명을 갖게 된다. 한 번의 만남 이전에 그들은 한 공간에서 마주칠 수 있지만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만 주어질 뿐이다. <진과 준>은 운명의 장난으로 만나지 못하는 연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크게는 평화를 일구며 함께 살지 못하는 남과 북, 세계인의 이야기, 그 역사이기도 하다. 신체적 기형과 의식의 부조화, 외부세계와의 마찰로 빚어지는 갈등은 단순히 남녀의 문제, 육체적 장애의 문제를 뛰어 넘는다. 이러한 부조화와 갈등은 시공간을 통해 확대되고 재생산되어 민족의 문제, 국가의 문제, 대륙의 문제, 결국은 인류의 문제에까지 이르게 된다.

 

 

 

 

 

 

진과 준은 박상현 작품의 가장 원형질 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아직 희곡과 소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카오스의 상태를 보여준다. 진과 준1장은 소설을 쓰고, 서술 부분을 지워내 대화체 부분만을 남겨놓은 듯하다. 더욱이 형식상 두 인물의 대화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지만, 이 대화는 반드시 두 인물의 것이 아니며, 동일 시간, 동일 상황이 아닌 대화가 스며들고 있다. 말과 말은 불연속이며 동시에 연속적이고, 교환되는 듯하지만 홀로 메아리가 되어 올려 퍼진다. 소설과 희곡이 혼란스런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이 연극 속에서, 박상현은 이라는 두 타자를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의 덩어리로 묶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분리된 두 존재를 분리 이전의 존재로 영원히 하나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두 존재의 영원한 사랑의 결합이라 할 덩어리는 온전한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불구의 상태이다. 하나이면서 여전히 둘인 이것을 작가는 샴쌍둥이라 칭한다. 이미 헤어진 연인은 나의 현재 속에서 함께 하지 않는다. 연인은 과거 속에 살며, 혹은 나의 꿈속에, 나의 욕망 속에 산다. 그러므로 연인은 나와 다른 차원 속에서 나와 함께 머문다. 나와 타자, 진과 준은 다른 시간, 다른 차원 속에서 하나를 형성한다. 이 불구의 상태는 단순히 진과 준이라는 남녀의 결합을 넘어서 내가 너가 되고 너가 내가 되는 존재적 결합의 상태이다. 박상현은 사랑하다가 헤어진 연인의 이야기를, 보편적이며 존재론적 결합의 이야기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 결합은 때로 사회, 정치적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멜로드라마 적 상황에서 출발하여 박상현은 더듬거리며 말을 곱씹고 곱씹어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메콩강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의 차원을 획득하는 것은 그것이 시간을 넘어서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짧은 사랑의 이야기가 윤회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주어진 짧은 삶의 시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시간의 한없는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서야 한다. 그 수레를 움직이는 것은 고통이지만, 그로부터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가 생겨난다.

마지막 장인 론도의 춤은 윤회의 원을 그리며 돈다. 결코 만나지 못하는 두 세계가 두 가지 상이한 리듬 - 슬로우, 슬로우 퀵퀵-을 타고 도는 춤 속에서 하나로 조화를 이룬다. 불완전함, 불구성 그 자체가 조화의 조건이 된다. 그 조화는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것이며, 견디는 것이며, 그 때문에 아름다운 것, 혹은 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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