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박상현 '4천일의 밤'

clint 2019. 3. 1. 21:20

 

 

12· 12사태 당시 신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김오랑 소령의 미망인 백영옥의 삶을 다룬다.

작가 박상현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린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치유할수 없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만큼 균형감각을 이루는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다큐멘터리적인 멜로드라마로 구성되고 의문의 추락사를 한 백영옥의 일생은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미망인 백영옥이 남편을 잃은 후 한을 안고 살았던 4천일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백영옥은 군인의 아내로 평범한 행복을 꿈꾸며 살았던 주부. 그러나 12.12사태로 남편을 잃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바뀌고 만다. 절망감에서 시력까지 잃은 그녀는 현각스님을 맞아 마음의 눈을 뜨고 제2의 삶을 산다. 어느 날 남편이 모시던 사령관 정병주의 죽음을 전해 듣고 12.12사태를 일으킨 인물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한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는 감시의 대상이 되고 불미스런 스캔들에 휘말리며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4천일의 밤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죽음과 삶이라는 건널 수 없는 두 차원에 속한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는 민홍기 기자라는 관찰자를 통해서 거리를 두고 이를 지켜본다. 이 작품의 소재에 작가 박상현이 다가가는 방식은 매우 흥미롭다.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 12 ·12 군사 쿠데타와 관련된 소재를 대하면서, 작가는 이 소재의 사회, 정치적 의미를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그는 이 사건의 한 구석에서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직을 수행하다 총격전에서 사망한 김오랑 소령과 그 미망인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정면을 향한 것이 아닌, 비스듬한 시선은 외적인 사건의 내면을 파고든다. 그것은 사회적 사건이 개인의 내면에 새겨 넣는 그림을 읽는 것과도 같다. 김오랑 소령의 미망인 백영옥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니 생전의 백영옥이 12 ·12 사태의 주역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소송을 취하한 사건을 둘러싸고, 이에 연루된 인물들은 각기 다른 상이한 거짓 담론을 만들어낸다. 정치, 사법, 언론, 종교 둥 한 사회의 가장 힘 있는 집단들이 백영옥이라는 개인의 삶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할 때, 이 거짓 증언은 동일 집단이 12· 12 사태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동형의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은 그 자체로 거짓의 치졸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 된 또 다른 담론과의 충돌을 통해서 그것을 드러낸다. 다시 한 번 작가는 신화로서의 이야기를 제시한다. 그것은 생전의 김오랑이 백영옥에게 보냈던 편지와 서약서이다. 효과적인 멜로드라마 적 장치로 활용될 수 있는 죽은 남편의 젊은 시절 편지와 사랑의 서약서를 박상현은 감정의 고양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거짓 담론과 충돌할 진실의 담론이다. 그 글들은 시간을 뛰어넘고, 죽음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신화이다. 또한 그것이 신화인 것은 지켜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다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거짓을 폭로하기 위한 것이 아닌 내적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다짐이기에 박상현의 신화는 윤리성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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