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서민준 '묵적지수'

clint 2019. 2. 14. 18:52

 

 

 

2018년 제8회 벽산희곡상 수상작 <묵적지수>는 초나라 혜황 50(기원전 439), 춘추 전국시대 사상가 묵자가 강대국인 초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초혜왕과 모의전을 벌였다는 고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벽산희곡상 심사 당시 겸애를 숭상하는 묵자의 사상을 반전(反戰)주의로 확장시켰다. 섣불리 현대와 타협하지 않고 고문헌들에 대한 방대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그 시대의 역사성과 사상을 재현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묵적지수'는 ‘진짜 전쟁을 막기 위한 가짜 전쟁’을 다룬 작품이다.  모의전쟁에는 규칙이 있다. 실제 전쟁과 같되 한 사람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작품은 2500년 전, 강대국에 맞서 전쟁을 막아내려는 의지를 다진 묵인들을 조명하여 ‘우리 시대에 마땅히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또한 "묵적지수"는 고대 중국을 무대 위에 재현하기보다 인간과 기술, 권력과 자본의 관계에 내재된 폭력의 실체를 포착하는 데 집중한 작품이다. 작품 속 위정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살육을 불사하고 백성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그 사이에서 묵자는 ‘사람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를 실천하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를 통해 작품은 우리 사회가 능력으로 간주한 ‘힘’의 정체를 의심하며, 승자독식 체제로 편성된 인간 사회의 모순을 짚어보고자 한다. 또한 "묵적지수"는 전쟁 서사를 담고 있지만 몇몇 영웅을 부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각 등장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사회적 약자도 주체적으로 변화와 혁명을 주도할 수 있다고 인식한 묵가의 사상과도 맞닿는다. 2019년 현재의 한국 사회 안에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폭력을 밝혀내고 있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 개개인의 가치와 연대의 의미를 되돌아보려는 의도다.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전쟁이 일상이 된 세상. 묵적은 혈혈단신 초나라로 향한다.

최신식 병기인 운제를 시험하기 위해 송나라를 침략하려는 초나라 혜왕을 만나 전쟁을 막기 위함이다. 묵적은 혜왕을 만나는 데 성공하지만 논쟁과 설득을 거듭할수록 굳은 의지만 확인할 뿐이다. 궁리 끝에 묵적은 전쟁 여부를 건 모의전을 제안한다규칙은 단 하나, 실제 전쟁과 같되 한 사람도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묵적의 제안을 받아들인 초혜왕은 초나라 사람들에게 초인과 송인으로 나뉘어져 역할 수행할 것을 명하고, 모의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사람들은 저마다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수천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한 모의 전쟁은 전투를 거듭할수록 예상치 못한 결말로 치달아가는데....

 

 

 

이야기 전개의 박진감, 리듬감 넘치는 대사, 살아있는 극성으로 강렬한 흡입력을 지닌 이 희곡을 쓴 작가는,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전공 중인 서민준 작가이다. 그는 2015년 신작희곡 페스티벌에서 등단하였고 2018년 두산아트랩 <종이인간>을 공연하며 연극계에 떠오르는 신인 극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적 실천을 한 이들을 조명해 정의의 실천이 부재한 이 시대에 의인이란 무엇인지 본질적인 화두를 던지고자 한다.

 

 

 

 

 

연출은 2005<고양이가 말했어>로 데뷔한 이후 <서른, 엄마>(2009), <날개, 돋다>(2015), <고등어>(2016) 등 청소년, 여성, 소수자에 대한 섬세한 작품을 선보여온 달과 아이 극단의 이래은 연출가가 맡는다. 그는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전쟁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자본주의와 만연한 능력주의가 지배하는 2019년과 어떻게 대비되는지에 주목했다. 연출은 오늘날 골목 상권을 침해하는 대기업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연극 <묵적지수>는 고전적 서사를 유지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 2019년 한국 사회에서 기존 질서에 저항하고 폭력을 밝혀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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