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수아 1세를 모델로 했다. 왕은 천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광대이자 곱추인 트리불레의 익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입속의 혀같이 굴며 왕을 방탕과 타락으로 이끄는 트리불레에게는 숨겨 둔 딸이 하나 있다. 그는 딸을 애지중지하며 모든 남자들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자 한다. 특히 왕에게서. 하지만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궁정 귀족들이 그녀를 납치해 난봉꾼인 프랑수아 1세에게 상납하고, 트리불레는 자객을 고용해 왕을 암살하려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왕을 사랑하게 된 트리불레의 딸이 왕 대신 죽음을 맞는다.
광대의 익살이라는 희극적 요소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극은 제 손으로 딸을 죽인 아버지의 통곡 가운데 처절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평했다. 엄격한 검열로 출판이 어려웠던 이 작품은 끝내 잊히는 듯했으나 곧 불멸의 걸작으로 재평가되었다.

극의 제목은 <왕은 즐긴다>이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실제 주인공은 왕 프랑수아 1세라기보다는 꼽추 트리불레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빈도로 보나 주인공의 심리와 상황을 설명하는데 주로 사용되는 독백구사 횟수로 보나 트리불레가 다른 인물들보다 압도적인 비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위고의 작품에서 비정상성에 기초한 흉측한 외모를 가진 주인공은 비단 이 작품 속의 트리불레만은 아니다.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1831)의 콰지모도, <웃는 남자>(1869)의 곡예사 그윈플레인 역시 혐오스런 외모의 소유자다. 특히 <왕은 즐긴다>보다 1년 먼저 출간된 《파리의 노트르담》 의 콰지모도 또한 꼽추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장르를 달리하긴 했지만 작가가 연이어 꼽추를 주요 등장인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두 번씩이나 꼽추를 작품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한 명은(트리불레) 궁정에서 왕의 즐거움을 위해 복무하며 얼핏 보기에는 막강한 권력과 위세를 휘두르는 듯하지만 주위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라면, 다른
한명은 (콰지모도) 교회 종지기로 민중 사이에서 바보 왕 노릇을 하며 평범한 서민들에게 즐거움과 유쾌함을 선사하고 다른 한편 신부의 음험한 욕망의 하수인으로 이용당하는 인물이다. 요컨대, 위고는 한 작품에서는 사회의 최상류층에서 냉대와 우롱을 당하는 인물을, 다른 작품에서는 민중에게 그들의 우월감을 확인시켜 주고 그들로부터 가혹하게 내쳐지는 인물을 그려냈다. 이 두 작품에서 작가는 꼽추의 비루한 운명을 통해 계층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즐거움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회적 약자를 착취하고 이용해 먹는 인간의 냉혹함과 야비한 본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왕은 즐긴다>의 궁정 광대이자 꼽추 트리불레는 루이 12세와 프랑수아1세 치하에서 광대로서 군주의 웃음을 담당했던 실존인물이다. 위고는 실존인물을 극으로 옮겨와 군주의 유희와 쾌락을 담당하고, 귀족들과 군주 사이의 마찰을 책동하며 귀족계급과 왕족 사이에 팽팽한 긴장 관계를 조성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그런데 공적인 위치에서 그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악행을 서슴없이 주도하는 인물이라면, 사적인 차원에서는 한없이 선량하고 나약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트리불레의 비극성은 바로 이러한 공적인 측면과 사적인 측면의 부조화 혹은 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1832년에 초연된 <왕은 즐긴다>는 1851년 베르디에 의해 <리골레토>라는 제목의 오페라로 다시 태어났다. <리골레토>는 <라트라비아타>, <일트로바토레>와 더불어 베르디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작품이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빈번히 공연되는 작품 가운데 하니다. <왕은 즐긴다>는 1832년에 초연되었다가 초연 이튿날부터 공연이 중단되고, 1882년이 되어서야 프랑스 무대에서 명예를 회복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공연이 금지된 이 작품의 진가를 베르디는 어떻게 알아보았을까? 이미 1844년에 위고의 <에르나니>를 오페라로 만들어 상당한 성공을 거둔 바있던 그는 평소 위고 작품의 열혈 애독자였다. 당국의 공연금지와 이에 맞서는 위고의 재판 청구가 입소문이 나면서 작품은 오히려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따라서 베르디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달군 <왕은 즐긴다>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희곡으로 작품을 접한 베르디는 광대의 절절한 부성애와 비극적 말로에 매료되어 1849년 작업 파트너인 피아베에게 대본을 의뢰한다. 그러나 작곡을 마치고 세상에 선보이기 직전, 오페라 <리골레토> 역시 프랑스에서의 전철을 밟게 된다. 프랑스에서 문제시되었던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내용이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군주국 오스트리아의 검열관 눈에도 불온하고 선동적인 것으로 비쳐진 것이다. <왕은 즐긴다>는 베르디의 손길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는 다소 약화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한층 더 충만하고 감각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다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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