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쑹즈디 '안개 낀 충칭'

clint 2019. 3. 3. 13:07

 

 

 

 

 

<안개 낀 충칭> 1940년에 발표되어 그해 말에 중국만세극단(中國萬歲劇團)이 충칭에서 공연한 이래 중국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후 청두(成都), 홍콩 등지에서 공연되며 큰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중일전쟁시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은 전쟁을 피해 충칭으로 모여든 젊은이들의 고민을 묘사하며 젊은이들의 삶의 선택과 그 결과를 통해 국민당이 통치하고 있던 충칭의 암흑과 부패를 잘 드러냈다.

등장인물 린좐위, 사다첸, 라오아이는 한때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베이징을 통치하던 군벌에 맞서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하던 가슴이 뜨거운 대학생들이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베이징을 침략하는 통에 충칭으로 피난을 오고 난 뒤로는 생활고로 인해 이러한 열정이 점점 식어 가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불만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린좐위는 우연히 베이징에서 함께 공부했던 타이리를 만난다. 타이리는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다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사교계의 무희가 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충칭으로 피난 와 있었다. 타이리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린좐위가 식당을 개업하도록 도와주려했지만 사다첸이 그녀의 돈은 더러운 돈이라며 화를 내는 통에 서로 어색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사다첸은 생계 때문에 할 수 없이 타이리의 돈을 받게 되고 그 돈으로 린좐위와 함께 식당을 연다. 식당이 잘되어 린좐위는 돈을 벌었지만, 식당 일이 그녀가 생각하던 삶이 아니란걸 느낀다. 그녀는 항전을 위해 일해야 하는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타이리한테 원래는 이걸로 생활을 유지해보고자 했지. 괜찮았어. 생활은 유지되었지. 하지만 시간이 조금도 없어. 책 읽을 시간조차 없어라고 푸념한다. 그녀는 여동생 자디와 서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식당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임을 깨닫고 식당 문을 닫기로 한다. 그녀는 결국 다른 일을 하러 나선다.

 

 

 

 

식당 문을 닫고 6개월 뒤, 사다첸은 여러 번 홍콩에서 충칭으로 물건을 운반해서 큰돈을 벌어들인다. 그 와중에 사다첸은 홍콩에서 성병에 걸리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린좐위 에게까지 전염시킨다. 린좐위는 병을 앓다가 위안무롱이 함께 홍콩으로 가자는 말을 듣고 사다첸과 이별하고 집을 떠나려 한다. 그때 타이리가 와서 위안무롱이 자기와 결혼하자고 해놓고 딴 여자와 함께 도망을 가려 한다며 분개하는 말을 듣게 된다. 린좐위는 이전에 위안무롱이 자신은 타이리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 말을 믿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타이리에게 솔직히 사정을 말하고 혼자서 집을 떠난다. 린좐위가 떠난 뒤 위안무롱이 사다첸을 찾아와 사다첸의 화물이 일본군에게 공습을 받아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알리고 타이리와는 언쟁을 하고 사라진다. 사다첸은 타이리에게 두 사람은 사람들에게 버림 받은 처지라며 함께 살자고 한다. 그러나 타이리는 사다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다첸은 타이리의 그런 태도에 분개한다. 이때 배달부가 라오아이의 죽음을 알린다. 사다첸은 몹시 슬퍼하며 막이 내린다.

 

 

 

 

 

이 작품에서 린좐위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깊이 고민하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여러 가지 제약에 힘겨워한다. 사다첸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자신이 민족의 반역자가 되어 감을 자각하지 못한다. 돈과 여자에 빠진 부패 관리 위안무롱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불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감행하며, 라오아이는 항상 불만을 토로하고 현실을 풍자하지만 말로만 그친다. 타이리는 고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디만이 뜨거운 열정으로 전방에서 지내며 충칭에 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항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권유한다. 린좐위가 슬픔을 안고 새로운 삶을 위해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풍부한 시적 이미지를 담고 있는데, 그녀의 떠남을 통해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독자와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제목은 채찍"이었다. 마치 채찍으로 매질하여 자극을 주듯이 후방에 사는 사람들의 마비된 미음을 각성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작가소개

중국 현대 극작가로 본명은 쑹루자오(宋汝昭)이며, 1914년 허난성(河南省) 펑난현(豊南縣)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출생했다. 중학 시절에 신문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연극을 좋아했다. 베이징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연극 활동을 시작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연 등에 참가했고, 1932년에는 좌익작가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듬해 국민당의 박해를 피해 상하이로 가서 극단을 조직하고 좌익 연극 운동을 하다가 두 차례 체포당했다. 1935년에 석방된 뒤 상하이를 떠나 타이위안(太原)에서 본격적으로 극본을 창작하기 시작한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로는 극단에 참가해 각지에서 항일 연극 운동에 종사했고, 1938년 이후 충칭(重慶)에 거주하며 항일 연극 운동에 종사했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 1946년에 상하이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산둥(山東)대학교로 가서 교편을 잡았고, 이듬해에는 하얼빈에서 [생활보(生活報)] 편집장을 맡았다. 1948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한국전쟁 때 두 차례 취재차 한국을 방문했다. 중국작가협회 이사, 중국정치협상회의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1956417일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쑹즈디(宋之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