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장경섭 '패밀리! 빼밀리?'

clint 2018. 11. 17. 18:04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가족의 의미는 확장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자리 잡고 진짜 가족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핏줄이 아닌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연극 [패밀리! 빼밀리!](장경섭 작)도 제목 상 패밀리가 등장하지만 혈연으로 얽힌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다. 구두쇠 '지도산' 집에 세들어 사는 이들이 가족애를 느끼는 과정이 중심이다. 서로 다투고 아웅다웅하면서도 믿고 의지하며 사는 이들의 일상이 유쾌하게 펼쳐진다.

이 작품의 정식 제목은 [패밀리! 방 빼는 거야! 집세 밀리면?]이다. 아마도 세 들어 사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협박은 "방 빼!"일 게다. 한 달 한 달 번 돈으로 제 몸 뉘일 자리를 위해 방세를 지불해야 하는 이들에게 집세는 가장 큰 약점이다. 극 중에서도 '지 선생님'으로 불리는 집 주인 '지도산'은 세입자들이 시끄러울 때마다 방을 빼라는 말로 협박을 한다. 그가 외치면 오래 전부터 줄을 서있던 이들은 물론 안에 있던 사람도 화장실을 양보해야 한다. 무대 왼 편에 간단한 나무 문짝 하나를 펼쳤다가 접는 것만으로 화장실을 구현하고 선보이는 에피소드는 그래서 재미있다. 아침이면 길게 늘어선 줄에서 빨리 나오라며 외치는 장면은 공동 화장실을 써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법하다.

극에서 돋보이는 것은 한 집에 모여 사는 개성 강한 캐릭터 들이다. 저마다 사연을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가 에피소드 형식으로 펼쳐진다.

집 주인 '지도산'은 돈이 든다고 아파 쓰러지면서도 엠블란스도 부르지 못하게 하는 구두쇠다. 노름 빚 때문에 사채를 끌어 쓰고 쫓기는 '이성기', 그에게 돈을 받아내려는 조폭과 내레이터를 하면서도 배우의 꿈을 꾸는 '김세나' 도 등장한다. 그 외에도 한복을 입고 사탕만 물면 동자승을 접신한다는 점쟁이 '조지나', 츄리닝 한 벌로 버티며 공중부양을 하겠다는 '나철학' 등의 이야기는 인물 자체의 독특함만으로도 웃음을 끌어낸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라이브로 연주되는 피아노 반주다. 연극 무대로는 드물게 건반 연주가 흘러 감정의 표현을 돕는다. 이자를 받으려는 사채업자와 갚을 능력이 없는 이성기가 뒤엉켜 싸우는 모습도 배경으로 깔리는 탱고 음악 덕에 춤이 된다. 치고받던 두 손을 맞잡고 춤추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조지나'는 무속인의 운명 때문에 세상을 일찍 떠난 엄마를 그리며 노래하고, 주위 사람들과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집 주인은 그 바람을 음악으로 이야기한다. 가끔씩 흔들리는 음정은 다소 아쉽지만 등장인물의 아픔은 대사보다 멜로디를 타고 흐르는 가사 속에서 더 잘 전달된다. 가진 것 적은 이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며 서로의 숨겨진 아픔을 드러내는 설정은 얼핏 뮤지컬 '빨래'를 연상시킨다. 그보다는 격한 웃음 코드를 가졌지만 처음에는 가볍던 유머도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 사연에 녹아든다. 각자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표현하던 작품은 매일 집세를 재촉하던 주인이 죽으면서 그 동안 숨겨온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꼭 피를 나눠야 가족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에 머물고 간직하는 것이 '가족'이라며 떠나간 집 주인 '지도산'의 마지막 선물은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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