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살면서 이러한 질문을 받아본 적 있다면, 당신이 ‘이방인’ 이었을 때일 것이다. ‘내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은 유효하지 않다. 어떤 경계선 안에 존재하는 것이 이상한 이에게 따라붙는 꼬리표 같은 물음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개막한 극단 놀땅의 연극 ‘선을 넘는 자들(작, 연출 최진아)’는 각자의 삶 속에서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선’을 넘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7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무대에 오른 작품은 남한 사회를 꿈꾸며 북한을 탈출하려는 사람, 부푼 꿈을 안고 탈북 했지만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없어 또 다시 다른 나라를 택하려는 사람, 남한에서 한때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이었지만 경제사범으로 몰려 채무에 쫓기다 결국 월북하려는 사람의 사연이 서로 교차된다.
최진아 작가는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구성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이번 극본을 직접 집필했다. 제도적 문제 이전에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시선과 인식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는 것이다.

막이 오르면 북측 비무장 지대에 숨어든 병사 ‘김군’의 모습이 보인다. 눈을 감으나 뜨나 온통 사방이 깜깜한 이곳에 숨은 그는 남한으로 넘어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따뜻한 집에서 행복하게 살 것을 꿈꾸며 매서운 추위를 견디고 있다. 한편에서는 북에서 넘어온 ‘송영수’가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버거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영수는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를 오가며 적응하려 하지만, 낯선 환경과 따가운 시선에 적응하지 못하고 표류한다. 남한 사회는 탈북민들에게 집과 일자리를 주고, 대학 특별전형 등으로 배려하는 듯하지만, 주민등록번호 등을 통해 낙인을 찍어 일반 국민과 선을 긋는다. 입만 열어도 금세 티가 나는 ‘북한 말투’ 탓에 ‘너는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고 ‘북한에는 고층건물이 있느냐, 바나나는 먹을 수 있느냐’ 같은 조롱 섞인 농담도 겪는다. 남들과 다르게 보는 시선이 싫어 북한이 아닌 연변에서 혹은 강원도 출신이라고 속이는 영수는 “필요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닌, 그저 내 얼굴로 살고 싶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탈북민’이라고 했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각종 편견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들 역시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인데, ‘탈북민’이라는 수식어로 인해 개인의 삶은 가려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선을 넘는 자들은’ 탈북민 전체가 아닌 이들 개개인의 삶에 집중해 혼란과 불안으로 얼룩진 일상 자체를 조명한다.

전체적으로 탈북민 이야기를 다루는 극에 채무에 쫓기다 내연녀에게 불법적 대출을 요구하는 정씨의 이야기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작품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탈남’을 시도하는 인물을 더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사람 전체의 이야기로 확장시킨다. 내 삶에 그어진 ‘보이지 않지만 견고한 선’은 무엇이고, 나는 그 선을 넘고 싶은지 혹은 넘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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