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희곡

이승혜 '너는 내 혈관속의 귀여운 암세포'

clint 2018. 11. 14. 16:44

 

 

 

너는 내 혈관속의 귀여운 암세포는 말단 비디오 세대답게 벽장 속에 숨어사는 고등학생과 죽어가는 환자를 간병하는 간호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작가는 다년간 습득해온 필치를 자랑하는데 섬득하게 다가오는 글 솜씨는 시인다웠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리벽 안과 밖의 대비, 그리고 숨어살던 벽장에서 나와 자기 갈 길로 가는 소년의 모습이 현대인의 소외의식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 작품은 타인의 죽음을 지독하게 겪어나가는 한 인물을 통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암세포일지언정 귀여운 미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작가 이승혜

 

올해 30살이 되는 해진은 간병인이다.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의 표정을, 죽음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4년 동안 뇌사상태에 빠진 한 환자의 모습을 날마다 카메라에 담는다. 벽장 속에 숨어있길 좋아하는 고등학생 대석은 해진과 서로를 잡아먹을 듯 으르렁 거리지만 동시에 서로를 너무나 필요로 하는 기묘한 관계로 동거 중이다. 쇼 호스트가 꿈인 해진은 간병 일을 나가지 않는 시간에는 홈쇼핑 광고를 보면서 연습을 한다. 아무리 연습해도 자연스런 미소가 나오지 않아 괴로운 해진은 우연히 옛 사랑 진수를 만난다. 결혼하여 평범한 회사원이 되어 있는 진수는 해진을 통해 과거의 열정을 추억하고 자신의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꿈을 꾸고 해진은 그런 진수와 자신을 위해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숨어있기 좋은 방을 마련한다. 하지만 진수는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고 급기야 해진은 진수를 유리관에 감금시켜 버리는데...

 

 

 

 

작가의 글

이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가 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타인의 죽음으로 인해 죽어가는 현대인의 모습. (심리학에서 스트레스 지수를 보면 배우자의 죽음이 가장 높은 지수인 100이며 부모의 죽음이 그 다음이다. 그 만큼 타인의 죽음이 스트레스 지수의 최고봉을 차지하는데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란 모든 질병의 근원이 아닌가)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정체되어 있는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 깨끗한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는 즉, 과거의 시간을 단절시켜 불연속의 삶을 꿈꾸는 욕구가 중첩되어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죽음. 우리에게 죽음이 왜 필요할까. 죽음이 삶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은 그 유한성이다. 언젠간 이 괴로움에는 끝이 있으니 그 때까지 참던가 즐기던가 하면서 어쨌든 치열하라.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순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그 지독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즉 나의 죽음은 내가 볼 수 없는, 관념으로서 존재하지만 타인의 죽음은 보다 현실적으로 내가 보고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을 앞세워 사람들에게 죽음에서 멀어지도록 최면을 건다. 끊임없이 젊어지는 법, 다이어트 비법, 암 치료법 등을 보도하면서 관리만 잘하면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그로 인해 죽음은 더욱더 금기시되고 잊혀지는 폐물이 되어간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타인의 죽음을 지독하게 겪어나가는 한 인물을 통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암세포일지언정 귀여운 미소로 받아들일 수 있는, 즉 죽음을 인정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또한 누구나 한 번 쯤 꿈꾸었을 법한 현실 도피욕을 사랑이라는 열정을 끌어들여 실험해 보었다. 유턴하기에 애매한 인생의 한 지점, 나이 서른이라는 기로에서 과거와 단절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것을 극단적인 시도를 통해 실험해본다. 그리고 생은 어쩔 수 없이 연속하고 있음을 처절하게 깨닫는 과정을 그려보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