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때의 승려 일연에 의해 쓰인 것으로 내용이 야사(野史) 성격이 강하며, 단군신화를 비롯하여 수많은 신화와 설화가 수록된 설화문학서라고 할 수 있다. 연극 '꿈'의 소재가 된 '조신의 꿈'은 불교 사찰 건축이나, 탑 또는 불상 등에 얽힌 이야기들을 정리한 삼국유사 탑상(塔像) 편 속의 낙산사 부분에 있는 내용이다.
작가는 낙산사에서 성불 수도하던 중 세속적인 욕망을 끊지 못하고 파계한 조신과 동경조선유학생 학우회가 주도한 '2.8 독립선언문'의 작성에 참여했으나 결국 친일의 길을 걸은 춘원 이광수의 장면을 병치시킨다. 시공간과 역사적 배경이 다른 두 개의 장면은 때로는 교차됐다가 중첩되기도 하면서 일순간의 욕망에 사로잡혀 행동했다가 그로 말미암아 고뇌하고 쫓기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작품 속에서 이광수는 '조신의 꿈'을 소재로 한 소설 '꿈'을 집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이광수는 젊은 시절 글을 통해 조선의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문인이었으나 친일활동으로 지금은 변절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조신에게서 본다. '조신의 꿈'에서 드러나는 삶의 고통과 깨달음의 얘기는 한때 민족 자주의 꿈을 꾸었으나 결국 좌절해 버린 '근대의 잘못된 첫 단추' 이광수의 꿈과 겹친다.

허망한 꿈의 장면 등 전혀 다른 시공간의 모습을 자주 번갈아, 또는 동시에 무대에서 구현해야 한다는 설정 때문에 무대에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다. 동화책이나 만화 속의 이미지 같기도 하다. 무대 깊은 바닥에서부터 단을 세워 우측 아래로는 '조신의 꿈'을 소재로 경성 집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이광수의 현실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조신이 파계한 후 김 태수의 딸 월례와 함께 도주해 자식들을 낳고 편안하게 사는 세속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 단 높이 위의 무대 후면은 이광수가 쓰는 '조신의 꿈' 내용에 나오는 낙산사. 구도와 번민의 공간이다. 조신은 이곳에서 다른 승려 평목과 함께 수도 중 월례와의 인연을 끊지 못해 결국 도망친다. 낙산사와 이광수의 집 중간의 무대 공간은 깊은 산 속의 십자 갈림길 같다.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등장인물들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다.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구도자의 자세나 조국을 빼앗긴 백성의 정신적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뇌를 함께 드러낸다. 가까운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갖고 있듯 관객이 보기에 따라 여러 갈래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친일인사로 몰린 이광수는 파계한 후 월례와 안락한 생활을 했으나 늘 번민하고 쫓겼던 조신의 처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고통스럽게 항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극 중 그림자가 "만해 한용운 선생은 총독부 방향이 싫다고 집마저 북향으로 돌려버리셨지"라고 싸늘하게 얘기하자 이광수는 이렇게 답한다. "조국이 대관절 뭐길래. …일본으로 상해로 시베리아로 한평생 떠돌았지만 한 번도 내 인생의 가난함과 피곤함을 한탄한 적이 없었다. 돌아가신 부모는 다시 못 살리더라도 유린당한 조국만은 껴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고 싶었지. 망국의 청년으로 현해탄을 건너가 먼저 개화의 물결을 쐬었으니 조국의 부끄럽지 않은 선각자가 되고 싶었지…. 그런데 어쩌다 일본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 있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어째서 기다리는 것은 반민족주의자, 친일분자 이광수인가."

그의 벗인 육당 최남선 역시 "한평생 조선심을 찾아다녔는데 반민족주의자라? 목에 칼이 들어온 그 몇 년, 대세에 순응했다고 평생의 노력이 한순간에 시궁창에 처박히는 건가"라며 항변한다. 작품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대비와 중첩의 이미지를 장면 곳곳에 삽입한 것도 눈에 띈다. 갈림길에서 조우하는 원효와 의상의 서로 다른 성불 방식도 그 중 하나다. 원효가 "궁둥이가 짓무를 정도로 온종일 경전 공부만 한다고 성불이 되느냐. 저잣거리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그 사람들이 마음을 얻어야지 체면이 뭐가 중하냐"고 조롱하자 의상은 "요석공주 눈물에 속아 넘어가 파계한 것이 그리 자랑스럽소. 음욕과 보살행도 구분 못 하는 파계승이 무슨…" 하며 받아친다. 원효와 의상의 장면들은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작가가 설정한 꿈의 다의성과 중첩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월례 역을 맡은 김수진 배우가 이광수의 부인 허영숙 역을 해내는 것도 흥미로운 연출이다. 월례와 허영숙의 공통점은 모두가 현실적이고 삶을 헤쳐 나가는데 강인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월례는 화랑 모례와의 혼인을 앞두고도 스스로 낙산사를 찾아 조신 스님의 사랑을 쟁취한다. 허영숙 역시 상해에 있던 이광수를 찾아 결국 그가 경성에 정착하고 친일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친일 심판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이광수에게 허영숙은 이렇게 얘기한다. "가서 싸우세요. 살아남기 위해 변절하는 것이 그렇게 욕먹을 짓인가. 조국을 잃고 칼날이 목에 들어온 그 순간, 그것밖엔 선택할 길이 없었다고 말하세요. 인생은 꿈이 아니에요. 인생은 지옥이고 아귀 판이에요.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같이 아귀가 되어야 해요. 인생은 꿈이 아니라 악몽이에요. 지옥 같은 악몽!"

작가의 글
“사실 이 프로젝트는 소재로서의 삼국유사만이 아니라 신화에 대해 고민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죠. 보통 신화는 일상을 초월하는 것인데, 나는 그 관점이 싫었어요. 왜 일상과 현실을 초월해? 그런데 단순한 초월이 아니라 신화가 현실을 먼 거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랜즈로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실이나 역사의 논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강박적인 문제들이 있잖아요. 친일이니 레드콤플렉스니 정말 옴짝달싹할 수 없는 문제와 시선과 정해진 답들이 있죠. 그런데 그 현실에서 한 발짝 빠져나와 신화의 시선으로 멀리서 그것을 조망하면, 진흙 밭에서 이전투구 하는 우리의 모습을 담담하게 혹은 착잡한 연민으로 좀 다르게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2012년 초연 시)

초고를 쓰던 시기엔 ‘조신지몽’을 소재로 소설을 집펼하는 이광수가 중심이었으나, 차츰 다른 층위를 추가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 탑상 편 낙산사에 나오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인 의상과 원효의 시선, 더 멀리서 인간 세상을 굽어보는 관세음보살의 세계, 그리고 작품 제목이기도 한 <꿈>의 층위. 액자 안에 액자가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액자가 있고 문득 그 액자들이 하나로 펼쳐지기도 하고 작은 액자가 큰 액자를 품기도 하면서 우리들 미완의 근대, 그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조망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작고한 한 문학평론가의 언급처럼 이광수는 만지면 만질수록 덧나는 상처였다. 이 예민한 소재의 작품은 연습 초반부터 배우들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연습장은 격렬한 반감으로 전쟁터 같았다. 몇 명의 배우들은 이광수가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려진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하지 못했다. 이 작품이 사회 풍자극이 아니고 실존 인물을 다룰 때는 그에 대한 자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품과 역량을 갖춘 상징적 지식인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시사한다는 나의 답변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그러나 그 뜨거운 감자를 선택했던 것은 내 의지였다. 나는 희곡이란 장르가 누구나 쉽게 동의하는 답을 말하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과 싸우고 질문하는 장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당시에 받은 상처들을 극작가로서의 맷집을 길러 주는 훈장으로 받아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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