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우리의 고전인 ‘열녀춘향 수절가’의 각색본이 아니다. 한때 유행했던 춘향전의 재구성도 아니고 요즘 흔히 말하는 재창작에 가깝지도 않다. 이것은 ‘춘향’ 이라는 모티프를 매개로 연출가가 완전히 새로 창안한 독립적인 텍스트다. “인간의 몸은 인간의 영혼을 보여주는 최고의 그림”이라는 비트켄슈타인의 말처럼 사실적인 재현이 아니라 배우들의 몸을 통해 독자와 관객의 상상력과 오감을 최대한 자극하고 활용하는 가장 실험적이고 전복적 이면서 혁명적인 텍스트이다, 여성에 관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그러진 욕망을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통쾌하게 비판하는 텍스트이다. 여성을 탐하는 남성의 시선과 그 시선 아래에 자신을 스스로 가두고 합리화시키는 여성의 시선을 동시에 비판하는 텍스트이다. 그러니 독자관객들이여, 이제 살펴보시라. 이 낯익은 현대판 ‘열녀춘향’ 들의 벌거벗은 풍속에 꼼짝달싹할 수도 없을 만큼 촘촘하게 포획돼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열녀춘향. 본래 열녀(烈女)란 남편을 위해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을 일컫는다. 하지만 고전의 '열녀(烈女)'가 현 시대로 건너온다면? 결국 '열녀(十女)' 일 뿐이다. 열과 성을 다하는 여성의 모습도 결국은 남성이 원하는 모습 중 한 가지인 셈이다. 춘향의 열 가지 얼굴을 낱낱이 해부하는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열녀춘향. 부제는 '10 Girls ChoonHyang' 이다. 이것을 부제라고 해야 할 지 혹은 제목의 풀어쓰기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포스터에 걸린 제목의 진짜 얼굴을 작은 글씨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작품의 묘한 분위기를 미리 만날 수 있다. 사실, 매력지수로 보자면 제목에서부터 큰 호감을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여성과 사회, 여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 자신 등 사회가 발전하고 인식 수준이 올라가면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담론은 심심치 않게 논의거리로 등장했다. 더군다나 춘향은 여성의 인권을 이야기 할 때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인물 아니던가. 그런 춘향을 연극무대로 옮겼다는 소식은 '연극 무대에서 또 교육할 것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아마 이러한 생각을 품는 데는 작품의 포스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10cm에 육박하는 높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발. 기이하게 꺾인 여성의 발, 그 속을 고스란히 보여준 이 작품은 '여성'이라는 단어에 실처럼 따라붙은 '하이힐' 이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기존의 관념과 무엇이 다른가, 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 작품은 시작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짙은 화장에 머리를 틀어 올린 한 여성이 그녀의 입술색 만큼 짙은 가방을 옆에 매고 관객들을 객석으로 인도한다. 또한 그 옆에서는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멋스럽게 입은 여성이 일을 거든다. 머리를 틀어 올린 여성은 월매요, 다른 여성은 춘향이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열녀춘향의 한 얼굴이다.

그녀는 공연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안내자의 역할과 동시에 경계 없이 춘향으로 변모한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을 만끽하며 그 봄처럼 생동감 넘치는 성(性)을 묘사한 춘화(春畵)를 설명한다. 그녀가 춘화를 설명하는 방식은 진짜 그림이 아닌 핸드백 속 소품으로부터다. 립스틱, 장지갑, 휴대폰과 이어폰 등을 통해 춘화를 설명함으로써 이 작품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개할지 귀띔을 해준다. 작품은 이런 식이다. 각각의 춘향이 나와 '보여주고' 들어간다. 능숙한 솜씨로 고추전을 만들고, 때로는 사계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도 하며, 몽룡과 파자 놀이를 하며 지성미를 드러내 보이기도 한다. 프로 레슬러로 변모해 수청을 요구하는 변학도를 처단하고 링 위에서 넉 다운 된 이몽룡을 인공호흡으로 살려낸다. 마지막으로는 알사탕을 우걱우걱 입에 우겨넣으며 가학적인 수모를 견뎌내면서 정조를 지키는 춘향의 면모를 내비치기도 한다.

연극 '열녀춘향'이 여성을 담론으로 하는 기존의 작품과 다른 점은 우리의 욕망을 '그저' 내비치고 있다는 점에서다. 열 명의 춘향은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열 가지 욕망이다. 그 욕망에 대한, 그 욕망을 낳은, 더불어 그 욕망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 시대에 대해 작가는 물론 뚜렷한 입장과 주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각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장치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은 신선함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가게 된다. 작품의 매력지수가 상승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발상보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이 더 재미있는 작품이다. 군데군데 극 전체의 신선함을 감퇴시키는 장치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 중에서도 극의 마지막, 퇴장한 배우들 뒤로 남겨진 하이힐을 다시 한 번 조명한 것은 이 작품의 신선함과 맞물리지 못하는 느낌이 있다. 세련과 센스로 무장한 이 작품이 여성을 향한 욕망을 이야기 할 때 여전히 하이힐을 언급하다니, 변모한 시대를 잘 포착하지 못한 듯해서다. 사실 이 시대는 하이힐보다 더 센 것을 원한다. 낮은 굽을 신고도 하이힐을 신은 것과 동일한 각선미를 자랑하는 여성. 하이힐의 10cm를 아예 몸에 장착한 여성을, 이 시대는 욕망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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