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도 남원,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경치 구경을 하던 중,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되고 둘은 뜨겁고 달콤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몽룡의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치고, 결국 중앙의 관직을 받게 된 아버지를 따라 이몽룡은 춘향을 남겨둔 채 서울로 떠난다. 그 빈자리에 찾아온 중년의 변학도, 그는 몽룡보다 더한 열정과 진심으로 춘향에게 구애를 한다. 춘향은 그의 맑고 뜨거운 눈매에 흔들린다. 그리고....
연애와 욕망의 성취와 좌절, 그로 인해 시작되는 불안과 두려움, 슬픔, 혼란의 다양한 감정들을 말과 소리, 움직임과 노래들로 꿈처럼 자유롭게 펼쳐낸 작품. 특유의 현란하고 코믹한 대사들이 아름다운 움직임, 공연 내내 연주되는 라이브 음악과 어우러져 신선하고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연극 <춘향>은 고전소설과 판소리 등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의 이야기와 인물들의 특정 부분을 빌어 완전히 새롭게 연극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춘향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되 특정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등장인물들..

‘춘향’이가 지조와 절개라는 투박한 고전의 옷을 던져버리고 당당하고 도발적인 여자로 돌아왔다. 전남 남원 남원루에서 ‘그네타기’를 하다가 이몽룡을 만나 신분을 넘어선 운명적 순애보는 대대손손 내려오는 가족의 애정사(史)로 느껴질 때가 있다.
‘춘향’은 두 사람의 불꽃 튀는 연애담과 캐릭터의 틈새를 비틀고 고전소설을 웃음으로 다이어트시켰다. 춘향이의 당돌하고 노골적인 ‘19금’ 대사, 기발한 설정으로 볼륨을 높이는 몽룡과 춘향이의 정사장면, 불완전한 내면으로 ‘마조히즘’ 적인 성적욕망을 들어내는 반전은 연극적인 설정이 더해져 빵빵한 ‘웃음’이 터진다. 변학도는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춘향은 튕기면서 “딱 하룻밤”만 약속하는가 하면, 곤장은 회초리로 둔갑해 성적욕망을 해소하는 도구로 쓰여지는 식이다. 변학도는 춘향을 성적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는 그녀를 위해서라면 ‘회초리’까지 들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오히려 이몽룡은 바람둥이 스타일에 마마보이 캐릭터로 뒤집는 인물해석과 발상이 재밌다. 무대는 춘향이의 당돌하고 화끈함으로 조선 숙종시대 고전소설을 뚫고 나온 현대적인 지구별 춘향이로 재해석된다. 해석의 발칙함은 시원한 웃음의 바람을 80분 동안 일으키며 이야기를 몰고 가는 뒤집는 구성과 배우들의 동력이 탄탄하다. 두 사람을 소환해 내는 첫 장면이다. 익숙한 등장인물의 춘향이 그룹과 가족, 몽룡 모(母)를 제외하고는 현대 복장이다. 화장을 짙게 하고 우울한 표정을 한 춘향(이춘희 분)은 한복에 커다란 베레모를 눌러쓴 채 느린 속도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불안한 시선과 움직임으로 무표정하게 등장한다. 가족들을 이끌고 1보 걷고, 좌·우로 느릿한 시선을 응시하며 지구별 세계에 진입하는 춘향을 마주하는 순간부터 예쁘지도 않고 불량스러워 보이는 캐릭터와 이춘희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이 터진다.
이몽룡은 현대복장에 스카프 까지 목에 두른 패션니스트다. 방자는 백팩을 하고 밀착 경호한다. 우주를 돌아 현대 지구별에서 재회하는 이몽룡과 춘향이의 첫 만남은 바뀌지 않은 남원루 어느 공터의 유명한 ‘그네타기’ 장소다.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특정장면과 서사의 뼈대를 유지하면서도 인물을 재해석한 비틀기는 공감되고, 시공간을 속도감 있게 재현해 내는 장면은 경쾌하다. 무대는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일순간 배우들의 놀이와 움직임, 소리의 변형으로 장면이 바뀌고 애정신호들이 쏟아진다. 무대장치와 대도구는 싹 걷어내고, 배우들의 말과 움직임, 간결한 오브제로 장면을 ‘쓰윽’ 만들고 라이브연주는 내면의 감정을 얹어놓는 리듬을 형성하고 배우들은 웃음으로 박자를 따라간다.
만남도 화끈하다. 춘향이는 몽룡이를 향해 “돈 좀 있냐?”고 묻고, 좀 산다는 말에 “하고 싶냐?”라고 되받는 식이다. ‘첫 만남, 첫날 의식’은 날숨과 들숨의 소리와 호흡의 볼륨을 조절하며 코믹스러운 장면으로 그려진다. 객석에서 키득키득 대는 소리가 더 시끄럽게 들린다. 연출은 춘향이의 지조와 절개라는 이미지를 지우고, 당돌하고 화끈하며 자유분방한 현대여성으로 재해석 된다. 삶과 신분의 차이는 소외를 형성한다. 사랑으로만 신분 차이를 뛰어 넘어 절대적인 사랑으로 성취되거나 극복될 수 없다. 예외도 있겠지만 한복을 입고 지구별로 도착한 이몽룡이 살아가는 시대는 초월적이고 숭고한 사랑은 어려운 시대다. 지구별에 도착한 춘향이 처럼 당돌하고 쌔져야 변학도에게 진정한 구애도 받을 수 있다. 일편단심은 고전소설에서만 등장하는 얘기가 됐다. 결혼 전 헤어짐과 만남은 물처럼 흐르고, 사랑은 변심과 복수로, 결혼 보다는 이혼율이 더 많아 질 수 있는 지구별 세상이다.

연출은 두 사람의 신분의 차이를 동시대의 ‘부유’와 ‘소외’로 환치한다. 소외는 내면의 분열과 병이 된다. 과거급제를 통한 신분상승과 나랏일을 하는 몽룡 부(父)는 대한민국사회 권력이다. 현대사회로 한복을 입고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춘향이가 넘어설 수 없는 신분과 집안 환경이다. 지고지순하고 불꽃 튀는 애정신호로만 경계를 뛰어 넘어설 수 없는 사회다. 정신은 분열되고, 내면은 우울해 질 수 밖에 없다.
계층 차이와 신분의 계단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욕망은 환상이다. 차이를 극복 하지 못하면 좌절과 상실감에 인간은 불안해 지고 내면은 균열된다. 극심한 우울로 정신분열의 전파를 보낸다. 분열 조절이 안 되면 분노의 광기로 전이된다. 고전소설 춘향은 절개와 지조로 신분상승을 뛰어넘는 사랑에 성공해 남원루는 청춘들의 마음의 성지가 됐다. 현대사회에는 성공률 제로에 가깝다. 재벌그룹 삼성가의 이부진과 평사원 출신 임우재의 세기의 결혼과 신분을 초월한 로맨스도 이혼으로 끝났다.
인간은 신분의 차이와 부(富)의 계단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침전된 내면은 광기의 균열을 보인다. 감정은 멜랑꼴리(우울과 슬픔의 감정)의 상태가 지속된다. 내면을 환기할 수 있는 것이 버라이어티한 감정의 유지이며, 이것이 치유다. 이 지점에서 연출과 극단은 멜랑꼴리 버라이어티쇼 ‘춘향’이를 유쾌하게 재해석하면서도 의미와 살점들을 대비감 있는 제목으로 살려냈다.
현대적인 여자로 ‘춘향’이의 내면을 망원경으로 확대해 도발적인 욕망과 정신적인 균열을 코믹하면서도 유쾌하게 비틀었다. 우울증은 지구별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는 병이다. 이수인 연출은 성적욕망도 화끈하고 자유롭게 드러내는 춘향이로 그린다. 기다림은 우울과 불안함이 뒤 섞인 불완전한 인간으로 설정한다. 변학도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면, 때려 달라고 당돌하게 요구하고 그 쾌감을 즐기는 여인으로 뒤집어 절개와 지조의 여인(女人) ‘춘향’을 웃음으로 무너트린다. 현대로 날아온 춘향은 몽룡이와 이별 뒤 불안전한 사랑으로 멜랑꼴리한 내면과 불안한 욕망을 드러내고, 한 발 더 나아가 ‘마조히즘’적인 뒤틀린 성적욕망까지 더해진다.
연출은 마지막 장면에서 고전 비틀기 한방을 보낸다. 낮선 남자가 들어선다. “춘향이가 누구죠?” 한다. 이때 춘향이가 “제가 춘향이 인데요” 하며 따라 나선다. 지구별 춘향이의 지조와 절개는 무너지고 성취의 욕망은 순환적이며, 내면은 멜랑꼴리한 상태가 된다. 월매 대사처럼 “꿈이구나, 다 꿈”이 되는 이수인 연출 이야기는 인물의 허점을 발칙한 해석으로 막아내고 버라이어티한 웃음으로 채운다.

작가의 글
이 연극은 다들 대충 알고 있는 춘향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연애와 욕망의 성취와 좌절의 과정, 후유증을 충분한 광기를 담아 몹시 모호하고 진솔하게 그려볼까 하는 사소한 동기에서 출발한다. 극의 구성적 전개는 춘향의 스토리를 슬쩍 짚어가는 방식으로 가되 그 서사 자체는 살짝 경시하기로 한다. 대신 말, 소리, 표정과 과하지 않은 움직임의 세심하고 효율적인 구사와, 정중동의 교활하고 능란한 리듬,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들의 친숙함과 낯섦을 남원식 비빔밥처럼 적절히 비비고 섞어서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하지만 충분히 맛있도록 상당히 감각적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체호프와는 다른 방식과 비슷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코미디로 느껴지면 좋겠다. 멜랑꼴리한 코미디랄까. 간단히 말해 우울한 분위기와 상충되게 웃음이 유발된다든지. 위의 언급에서 짐작하다시피 이 작품은 ‘춘향 이란 인물을 일관되게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그를 통해 인문학적/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한 모종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그저 그 고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매개로 이런저런 흥미롭고 연극적인 상상을 펼쳐보면서, 뭔가 뻔하지 않으면서 다소 새롭고 재미있는 무대 언어를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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