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극은 중국의 다양한 지방 연극 가운데 하나다. 800년 고도 ‘북경(北京)’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해서 ‘경극’이라고 부른다. 노래·대사·동작·무술·화장·의상·소품 등 다채로운 요소들이 모여 이루는 종합예술 적 성격의 연극으로서 중국 전통 공연 예술을 대표하는 경극은 중국 연극 발전사를 더듬어 볼 때 가장 늦게 출현한 장르지만, 그만큼 중국 고전극의 미학적 전통을 집대성해 최고의 완성미를 보여 준다.
그중 <패왕별희>는 초패왕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경극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우리에겐 천카이거가 감독하고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패왕별희’로 더 익숙하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 <항우본기>를 근간으로 진말(秦末) 한초(漢初)의 극적인 역사상을 러브스토리로 재구성했다. 본 번역은 통행본인 <패왕별희>(胡菊人編輯, ≪戱考大全≫, 宏業書局, 1970)를 중심으로 하고, 이를 정리해 주를 단 <패왕별희> (曾永義編注, ≪中國古典戱劇選注≫, 國家出版社, 1990)를 저본으로 했다.

(楚)나라 구 귀족의 후예로서 진(奏)의 폭정에 항거해 봉기한 항우는 천하 통일을
눈앞에 둔 적도 있었지만 유방의 군사(軍師)인 한신(韓信)의 명을 받고 거짓으로
투항한 이좌거의 계략에 빠져 우희와 여러 장수들의 간언을 물리치고 출병했다가
결국 복병에 의해 해하(지금의 안후이 성)에서 포위되어 최후 일전을 벌이게 된다.
당시 한신은 항우의 군대를 첩첩으로 포위하고는 상대방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진중의 초나라 출신자들을 불러내어 밤마다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다.
그러자 사방에서 들려오는 구슬픈 고향 노래를 듣게 된 초나라 군사들은 한신의
계획대로 사기가 급격히 멀어졌고, 탈주병이 속출하게 된다. 이에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도 이 노래를 듣고는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진영에서
마지막 연회를 벌인다. 그때 항우 곁에는 애첩 우희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따라주는 술잔을 들고는 치밀어 오르는 감회와 비분을 시로 읊었다.
패왕 항우가 눈물로 절규하며 노래를 부르니 주위 사람들도 모두 숙연해졌고
항우와 전장을 누비던 명마 추도 슬프게 울부짖었다. 왕은 말을 안으로 끌어들여
이별을 고했다. 여기에는 말의 안전을 도모할 것이라는 그의 확고한 암시가 숨어있다.

우희는 패왕의 기분을 돋우려고 애쓰며, 주군에게 술잔을 바치고 노래하며 춤춘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남몰래 훔치면서. 그때 군령이 들어와서
적이 사방을 에워싸고 공격한다고 아뢴다. 하지만 이 포위를 뚫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패왕은 애첩 우희에게 다시 만날 길이 없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것은 하늘이 그의 최후를 명했기 때문이리라. 우희는 굳센 어조로
싸움에서 지더라도 반드시 후일을 도모해야 하며, 애첩 따위를 염려해서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패왕은 유방에게 가서 목숨을 기탁할 것을
권고하지만, 여인은 잠시 주저함도 없이 반박한다.
“폐하의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아니하고,
어진 여인은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습니다. 천하통일을 꿈꾼 황제께서
어찌 아녀자의 일까지 걱정하십니까? 폐하의 보검으로 그대 앞에서 자결하여
성은에 보답하고 폐하의 근심도 덜길 원히옵니다."
패왕은 이를 거절했지만,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기로 결심을 굳힌 우희는
왕이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린 틈을 노려 칼을 빼앗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우희가 자결한 뒤 패전을 거듭하며 쫓겨 다니던 항우 역시 오강(烏江)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자결해 우희를 뒤따랐다.
비통함 속에서도 우직해 보이는 패왕의 장렬한 패전, 그리고 죽음으로
지킨 우희의 사랑이다.

제여산(齊如山, 1876∼1962)은 경극 작자이며 희곡 이론가다. 하북성(河北省) 고양(高陽) 출신으로 경극 집안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경극과 함께했다. 일찍이 서구에서 유학해 유럽 연극을 두루 섭렵하고 귀국한 뒤, 중국에 유럽 연극을 소개했을 뿐 아니라 경극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했다. 1912년 북경에서 매란방의 몸동작과 그가 공연한 극본의 문장에 대해 조언함으로써 매란방과 지기(知己)가 되었다. 이후 매란방의 공연을 위해 극본 문장을 수정하고 몸동작을 조정하는 등 매란방과 공동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1916년부터 제여산은 이석감(李釋戡) 등과 함께 매란방을 위해 40여 편이 넘는 극을 지속적으로 창작하거나 개편했다. <패왕별희>, <천녀산화(天女散花)>, <낙신(洛神)>, <태진외전(太眞外傳)>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의 공동 작업은 경극 무대에 개성 있는 여성 배역의 형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 경극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매란방이 경극 천재라는 칭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1931년 매란방, 장백구(張伯駒) 등과 북평국극학회(北平國劇學會)를 조직해 ≪희극총간(戱劇叢刊)≫과 ≪국극화보(國劇畵報)≫를 편집·출판하는 동시에 진귀한 희곡 자료를 수집했다. 또 부설로 국극전습소(國劇傳習所)를 설립해 유중추(劉中秋), 곽건영(郭建英) 등 학생 75명을 교육했다. 논저에는 ≪중국극지조직(中國劇之組織)≫, ≪경극지변천(京劇之變遷)≫, ≪국극신단보(國劇身段譜≫ 등이 있는데, 이를 모두 합해 ≪제여산극학총서(齊如山劇學叢書)≫라고 한다. 일찍이 북평여자문리학원의 교수를 지냈고, 1962년 대만에서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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