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모리스 마테를링크 '내부'

clint 2018. 9. 19. 11:53

 

 

 

 

어린소녀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내부>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보기 어렵다. 거실에서 평온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기족(아버지, 어머니, 두 딸, 잠든 아이), 정원에서 창문 너머 가족을 지켜보는 이웃(노인과 이방인, 노인의 손녀들), 익사한 아이의 시신을 운반하는 마을 사람들이 나오는데 등장인물들이 그룹별로, 즉 역할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받던 한 소녀가 갑작스럽게 주검으로 발견된 이유가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사건을 가족에게 알려야할 노인이 최대한 시간을 끌며 삶과 운명을 성찰하는 점에서, 한 가족의 비극보다는 우리 삶을 느닷없이 짓누르는 운명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이 하나의 개념 또는 성향으로 단순화되었듯,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동성과 침묵은 인형의 메타포로,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내부>에서 작가가 공들여 묘사한 가족의 모습은 야릇하다. 아버지는 무릎에 손을 얹고 벽난로 옆에 앉아 있다. 어머니는 잠든 아이를 안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두 딸은 수를 놓거나 몽상에 젖는다. 각자 의자에 파묻혀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있는 듯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가끔 창밖을 바라보거나 서로 쳐다보며 미소 지을 뿐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는 움직임으로 더욱 강조된다. ‘가족 중 누군가 일어나서 걷거나 어떤 동작을 할 때, 드물고 느린 움직임이 무겁게 느껴지고, 흐릿한 빛 때문에 멀리서 보면 영적 움직임처럼 보인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으로 더 잘 표현될 법한 일상적이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평온한 상태가 갑자기 전복되는 상황을 강조하고자 한 것일까? 그렇다면 굳이 드물고 무겁고 느린 움직임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한 이방인이 조심해요. 자매가 떠는 것을 보았어요.”라고 말한 이유는, 노인이 말했듯 영혼의 힘이 어디까지 펼쳐지는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이 확장된 상태가 쉬고 있는 듯한, 꿈꾸는 듯한 <내부>의 가족으로, 행위가 최소화된 무언극으로 표현되고 있다.

 

 

 

 

 

떡갈나무 문에 빗장을 걸고, 덧문까지 닫고서 <내부>의 가족은 편안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아이의 죽음으로 보금자리는 파괴되고, 밀려오는 낯선 군중의 시선에 내부공간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내부> 마지막 장면도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문밖에는 익사한 소녀가 잠든 아이처럼 들것에 누워 있다면, 밖의 소란에도 아랑곳 않고 방에서는 아이가 자고 있다. 문을 경계로 삶과 죽음이 나뉘는데, 잔혹하게도 삶은 계속되고 있는지 아니면 삶과 죽음의 엄격한 순환인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죽음에 대한 이중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죽음 자체보다는 삶과 죽음의 대립과 공존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징이 함께 던짐이라는 뜻에서 파생되었듯,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원래 하나였는지 모른다. 마테를링크가 생각하는 인형 또한 양면성이 있다. 인형은 자율성의 부재, 수동성과 같은 개념이기도 하지만, 신성한 오브제처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따라서 인형이라는 메타포는 운명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우리 내부에 잠재된 무한한 힘,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과 끝없이 교류하는 영혼의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마테를링크에게 영혼은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무의식이 표출되는 감춰진 영역, 알 수 없는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신비로운 영역이다. 말하는 순간 신성한 문이 닫힌다고 생각한 마테를링크에게 침묵은 영혼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이러한 관점은 새로운 배우의 탄생, 새로운 연출법을 요구한다. 이미 만들어진, 소화하기 쉬운 이미지에 대항하지 않는다면, 익숙한 것을 버리지 않는다면, 부동극의 의미를, 영혼의 척도인 침묵을, 암시의 극작법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자나 상징적 투사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이 배우를 대체할 거라고 예언한 마테를링크, 그가 진정으로 희망한 것은 배우의 사라짐이 아니라, 몸이 함축하는 개별성과 우발성을 넘어, 가면을 벗고 장벽을 부수며 본질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정신적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