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적 짧은 희곡인 <고양이와 달>은 마치 예이츠의 시세계의 상징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듯이 주된 상징적 의미를 가득 차 있다. 그 상징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아 고양이 미나로쉬와 달의 관계와 성자와 절름발이 거지와 장님 거지의 관계로 나타난다.
달이 여성 원리(The Feminine principle)의 원형이미지로서 여성 신성(The Divine Feminine) 인 어머니 소피아의 영광을 상징한다면 고양이는 지상에 거하는 고행하는 딸 소피아의 지혜를 상징한다. 즉, 춤추는 고양이 미나로쉬는 지상에서 딸 소피아의 건재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신비주의의 모토인 ‘위와 같이 아래에서도(As Above & Below)’와 같이 예이츠는 성모 소피아는 천상에 거하고 딸 소피아는 지상에서 인간과 함께 고행을 하는 숨은 구세주로서 천상과 지상의 두 소피아가 서로 긴밀한 연관을 지닌 하나로 보고 있다. 따라서 예이츠는 초기 불멸의 장미시편에서부터 ‘불멸의 장미(The Immortal Rose)’로 상징되는 딸 소피아의 고행을 찬미하였다. 또한, 성모 소피아와 딸 소피아는 예이츠의 시와 희곡에서 캐슬린 백작부인의 희생과 성모의 구원이라는 긴밀한 관계로 묘사되고 있다. 이 점은 이 희곡에서 고양이 미나로쉬인 딸 소피아와 어머니 소피아의 상정인 달이 하나로 어울려 춤으로 휘돌아가는 모습으로 상징되고 있다. 고양이 미나로쉬는 마지막 세대에 마침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딸 소피아의 상징으로 남녀양서구유의 물병자리의 시대가 오기 직전인 물고기자리의 마지막세대에 나타나는 딸 소피아의 상징이다.

또한, 예이츠는 자신의 때인 마지막 세대에 마침내 자신의 노래를 듣고 잠깨어 일어난 불멸의 장미는 여성 신성의 등극의 때를 맞이하여 지난 2000년의 수난의 시대와는 달리 긍지와 평화를 지니게 될 것을 고양이 미나로쉬의 달빛 아래에 풍요로운 춤을 추는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이츠는 지난 2000년의 남성 중심의 시대인 암흑기 동안 딸 소피아의 수난과 억압당한 날들을 오랜 ‘산토끼의 죽음’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오랜 암흑기를 거쳐서 드디어 여성 신성의 빛과 영광의 때를 만난 것을 미나로쉬의 한바탕의 춤마당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 미나로쉬는 <배우 여왕>의 데시마와 동일시 될 수 있으며 그녀가 새 여왕이 되었듯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영광을 획득할 딸 소피아를 상징한다. 따라서 고양이 미나로쉬의 춤과 데시마의 영광스런 여왕으로서의 등극은 모두 딸 소피아이자 동양의 미래불의 영광의 시대가 도래함을 상징한다. 고양이의 달빛 아래에서의 춤은 예이츠의 시세계에 나타나는 초월적 이미지인 마이클 로바티스의 환영 속에 등장하는 서양종교의 상징인 스핑크스와 동양종교를 상정하는 불상을 사이에 두고 춤으로 휘돌아가는 ‘무희’의 이미지와도 상통한다.
또한, 이 희곡에서 성자의 이미지는 예이츠가 그의 시적 목표의 달성인 불멸의 초인인 ‘다이몬’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두 거지인 장님 거지와 절름발이 거지는 사람의 영혼과 몸의 상징으로 장님 거지는 눈먼 영혼을 상징한다. 후에 절름발이 거지가 축복을 받고 성자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것은 한 사람의 영혼이 승화되어 불멸의 다이몬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상징한다. 예이츠는 세상에는 불멸의 초인이 될 ‘다이모닉 맨’이 있다고 보았다. 장님 거지로 상징되는 잠든 영혼을 성자의 영혼으로 대체한 육신을 상징하는 절름발이 거지는 인간 영혼의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축복받은 영혼을 상징한다. 따라서 절름발이 거지인 영혼은 성자의 영혼과 하나가 됨으로써 깊은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 불멸의 존재인 다이몬이 된 것이다. 성자가 부르는 ‘고양이와 달’에 대한 노래는 모름지기 성자란 고양이 미나로쉬와 달로 상징되는 여성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즉 모든 불멸의 초인들인 성자들은 남녀양성의 힘의 균형을 이룬 신성의 원리를 아는 불멸의 존재로서 ‘존재의 합일’을 달성하기 위한 요소인 감춰진 ‘여성 원리’에 대해 통달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와 같이 예이츠는 ‘존재의 합일’에 도달한 성자들은 남녀양성구유의 신성 중 사라진 여성 원리인 달과 고양이의 숨은 관계를 인지하고 칭송할 수 있는 존재자들이라는 것을 상정을 통해 보여주어 자신의 시적 궁극 목표를 이 희곡에서도 다시 한 번 역설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드워드 올비 '듣기' (1) | 2018.08.13 |
|---|---|
| 윌리엄 B. 예이츠 '배우여왕' (1) | 2018.08.09 |
| 앙토넹 아르또 '첸치 일가' (1) | 2018.08.07 |
| 해롤드 핀터 '시사풍자극' (단막 10편) (0) | 2018.08.04 |
| 존 밀링턴 싱 '슬픔의 데어드라' (1) | 2018.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