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대체로 빛나는 수작이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심벨린』은 작가 만년의 로맨틱한 경향이 강한 시기의 작품인 만큼 줄거리가 황당무계한 정도여서 현대인의 시야로는 불합리해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읽는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극작가가 묘사하는 세계로 몰입하게 되며, 셰익스피어의 예술적 흥취를 무한히 만끽할 수 있다. 기교 상에서 보면 비극미와 희극미가 교직(交織)되어 관객의 심리를 불안과 기대 속에 말려들게 하는 탁월성이 돋보인다.
『심벨린』 은 셰익스피어의 두 번째 낭만극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즉 『페리클리스』 뒤에 쓰여진 낭만극의 실험 작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더욱이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 이후에 발표된 『겨울 이야기』와 『태풍』에서 화사하게 꽃필 싹을 배아 했다는 사실이다.
『심벨린』이 언제 쓰여 졌고, 초연되었는지 확실한 물적 증거는 없다. 다만 주제와 문체의 특색으로 미루어 보아서 대략 1609년에서 1610년경에 쓰여졌고, 셰익스피어의 나이 40 중반 경의 작품이라고 생각되어 오고 있다. 심벨린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나서 간행된 1623년의 제2절판 전집에서 비로소 활자화되었다 이 작품의 성격이 비 희극성이고 현란한 해피엔딩인데도 흔히 비극의 범주에 들어있으나 우리 현대인의 감상안목으로서는 도저히 비극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다. 사건의 진행이 비극적이지만 만사가 원만히 해결되고 한바탕 기쁨을 갖는 대단원은 비극이 아니라 즐거운 희극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펼치는 비극의 즐거운 종말이 로망스다운 세계의 예술적 향기에 독자나 관객은 듬뿍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심벨린』은 주제와 기법상 『페리클리스』와 『겨울이야기』 그리고 『태풍』과 공통점이 있으니 예시하면 비극적으로 극이 전개되어 가다가 막판에 이르러 화해와 재회로 행복하게 매듭짓고, 극중 인물의 박진력 있는 내면묘사가 거의 없고, 불가사의한 사건이 일어나는 플롯 전개 등이다.
『심벨린』 은 이야기의 소재를 상당히 많은 데서 얻어 왔고 셰익스피어의 독창성과 탁월한 극적 기교성으로 독자적인 플롯을 창출했다고 지적되고 있다. 벨라리어스와 유괴된 왕자들의 이야기는 1582년에 엘리자베스 1세의 이전에서 공연된 작가미상의 낭만적인 극 『사랑과 행운의 진귀한 승리(The Rore Triumphs of Love and Fortune)』에서 차용해온 것 같고 이머젠의 정조를 둘러싼 이야기는 보카치오(1313-75)의 『데카메론』의 제2일 아홉 번째 이야기가 소재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탄생한 무렵 영국을 통치해온 소위 전설적인 왕인 심벨린 왕에 관한 이야기는 라파엘 흘린셰드의 『영국 연대기』를 참고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당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전기적 장편시 『요정의 여왕』 에서도 이야기의 소재를 수집한 것 같다.

이 극의 흐름을 살펴보고 구성상의 특색을 추적해나가려 한다. 브리튼 왕 심벨린에게는 원래 두 왕자와 공주 이머젠이 있었다. 왕은 재혼했는데, 새 왕비에게는 아들 클로텐이 있었다. 이머젠은 자기 뜻대로 평민인 포스튜머스와 결혼한다. 진노한 왕은 포스튜머스를 추방한다. 이머젠은 그녀의 남편이 유배당해 있는 동안 간악한 로마인 야키모의 술책으로 남편으로부터 정조를 의심받게 된다. 아내의 부정을 믿는 포스튜머스는 자기 아내 이머젠을 살인하라는 명령서를 그의 충복에게 보낸다. 한편 이머젠은 계모인 왕비와 그의 아들 클로텐의 흉계에 못 이겨 남장을 하고 궁정을 탈출한다. 이머젠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동굴에서 칩거생활을 하던 노인에게 구조를 받게 된다. 실은 그 노인이야말로 20년 전에 심벨린 왕에게 추방당한 충신 벨라리어스다. 그는 자기들이 왕자의 신분임을 모르고 있는 두 젊은이와 동굴에서 목가적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브리튼과 로마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 포스튜머스는 아내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려 가슴깊이 고민하면서 죽기만을 갈망한다. 한편 이머젠을 범하고자 그녀를 추적하다가 클로텐은 벨라리어스의 큰아들에게 살해되고, 야키모는 브리튼군의 포로가 된다. 야키모의 실토로 그의 간계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이머젠과 포스튜머스 이들은 오해를 풀고 부부간의 금실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런데 심벨린 왕은 전쟁에서 전승했을 뿐 아니라 실종되었던 두 왕자와 추방했던 충신 벨라리어스와도 상봉하게 되니 만사가 축복 속에 끝나게 된다.

이상과 같은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우리가 이 극이 세 개의 중요한 줄기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즉 포스튜머스와 이머젠 부부를 중심으로 한 줄기와 벨라리어스와 두 왕자를 중심으로 한 줄기, 그리고 브리튼과 로마의 전쟁을 중심으로 한 줄기이다. 그런데 사무엘 존슨은 『심벨린』에는 감정이 적절히 표현된 것이 많고, 자연스러운 회화나 유쾌한 장면도 몇 장면 있지만 그것은 조화를 희생하여 성취한 것이다.” 라고 이 극을 폄하했는데 그랜빌 바커도 “복잡 미묘하면서도 조잡한 작품”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이 극에서 특정한 인물과 사건에 시선을 꽂아 극세계에 몰입하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변은 세 가지이다 그 첫째는 이야기 줄거리가 복수적 구성이다. 그러므로 사건이 전개되는 장소도 브리튼, 로마, 웨일즈 등 도처로 이동한다. 둘째로는 주인공의 불확실성이다. 셋째로는 위의 이유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선을 자주 옮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극중 인물들이 작품 전체에서 받는 인상이 매우 얄팍하게 느껴진다.
이 점을 깊이 고찰한다면 작가는 전형적인 성격창조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이 『심벨린』을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만들지 못한 중요한 요인의 하나라고 짐작된다. 그런 점에서 『심벨린』이 17세기와 18세기 2세기 간의 비평사에서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고 비평적 조명이 가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비평이 확립되기 시작한 18세기에 있어서도 혹평 아니면 등한시되었던 『심벨린』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재평가의 기운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즉 여주인공인 이머젠과 같은 훌륭한 인간묘사에 대한 찬사와 또 하나는 후술하겠지만 이 작품이 지닌 그 서정성에 주는 높은 평가이다 “이머젠이야말로 가장 안존하고 가장 흠잡을 데 없는 여성이다”라고 19세기 낭만주의시대의 비평가 허즐릿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절을 숭앙한 도덕주의와 맞아 이머젠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계관시인 테니슨이 임종 시에 『셰익스피어 전집』을 머리맡에 가져오라고 해서 생전에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심벨린』의 페이지를 뒤적이다가 숨을 거두었으니, 사람들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 무덤 속에 책을 함께 묻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심벨린』 에서 이머젠은 영특하면서 매우 지혜로우며 분결같은 고운 심성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스윈번은 『셰익스피어론심벨린』(1880)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 가장 사랑스런 여성”이라고 이머젠을 높이 떠올렸다 그녀의 사랑은 줄리엣처럼 서정적은 아니지만 적극적이며 정결하며 그녀의 숨결은 이사벨 못지않게 지순하게 묘사되어 있어
감동의 진폭을 넓혀주게 된다. 전술한대로 이 작품이 인기를 끌게 된 또 하나의 요인은 서정성이 비평계에서 통념적으로 높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 속에 배어있는 서정성은 언어가 가진 음악성을 근대화시킨 셰익스피어 자신의 창조적 운율이 담겨져 있는 노래가 적지 않게 있다는 사실이 증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보면 2막 3장의 아침의 노래는 슈베르트의 작곡에 의해 널리 애창되어 오고 있다. 4막 2장에 나오는 서정적인 만가는 소위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추구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Mrs. Dalloway, 1925)에서 기조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주지된 바다.

『심벨린』의 무대공연을 살펴본다. 최초의 공연은 사이먼 포먼(Simon Forman)이라는 점성술사가 남긴 ‘연극각서(Boche of Plajes)’에 의하면 1611년 지구극장에서 왕실극단이 올린 공연을 보았다 한다. 그가 줄거리를 기록에 남겼기 때문에 쉽게 추적이 된다. 그 후 셰익스피어 생존 시에 공연되었겠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사실이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가 1634년에 찰스1세의 어전에서 상연되었고, 이때 왕이 매우 흥겨워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것이 두 번째로 오래된 기록이 된다. 왕정복고(1660 )시대 이후에는 연극계의 풍토가 바뀌어져 풍자와 기지로 번뜩이는 풍습희극이 유행하는 시대가 도래한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에 걸쳐 시대의 취향에 따라 개작을 일삼았으니 『심벨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심벨린』을 개작한 것 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고 널리 알려진 작품은 토마스 더피 (ThomasD'urfey)가 쓴 『학대받은 공주 또는 운명의 도박』(1682)으로 극단 로열이 상연했다 더피는 이 극 내용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삼각관계의 줄거리만을 끄집어내서 그 인물의 이름, 줄거리, 어구 등을 자유자재로 개작한 것이다 17세기말부터 18세기 중기까지 이 각색물이 원작을 제쳐놓고 상연되었다. 1759년 2월 15일에 코벤트 가든의 극장에서 윌리엄 호킨스(William Hawkins)가 각색한 다른 『심벨린』을 상연하였는데 이 희극은 삼일치(三一致)의 법칙에 맞게 썼다 한다. 이 연극은 왕궁이나 아니면 웨일즈의 숲에서 공연되었다 한다. 『심벨린』의 원작이 부활 상연되는 것은 1746년이었다. 또 1761년 11월 28일에는 드루리 레인의 극장에서 데이빗 개릭이 이 작품을 부활상연시켰다. 그러나 개작자는 다름 아닌 명배우 개릭으로서 이전 다른 사람들이 쓴 개작과는 다르게 원작에 약간의 가펼을 가했다. 이때 개릭이 포스튜머스, 홀랜드(Holland)가 야키모, 브라이드(Bride)가 이머젠을 연기했다 개릭은 경이로운 재능을 발휘한 명연기로 포스튜머스 역을 해냈으니 꾀 가장 적격의 역을 해낸 하나로 기억되어진다. 이리하여 『심벨린』 은 하룻밤 사이에 관객을 사로잡는 인기 있는 레퍼터리로 굳혀지게 된다. 이 공연 이후로는 차츰 원작에 다가가 거의 『심벨린』은 원작대로 공연된다. 헨리 어빙은 “이 극에서 이머젠을 제외하면 보잘 것 없다“는 극언까지 토로했으니까 『심벨린』의 감흥은 이머젠에 있었으며, 셰익스피어가 그린 탁월한 여인상 중의 하나이다. 18세기 이래로 명성 있는 여배우들의 야망의 표적(標的)은 이머젠이었다. 이 극의 여주인공인 이머젠 이외에도 포스튜머스와 야키모가 또한 대중의 인기를 얻는 역이었다, 1785년 11월 21일의 공연에서 존 필럽 캠블이 포스튜머스를, 조단 부인이 이머젠을 연기했고. 1787년 1월 29일 재공연 때에는 캠블의 누이 시돈스 부인이 동생과 함께 공연했는데 제임스 보든은 ”그가 관극한 『심벨린』 중에서 가장 완벽한 이머젠이라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필립 캠블의 동생 찰스 캠블이나, 그리고 에드먼드 킨, 윌리엄 찰스 맥레디, 사무엘 헬프스 등이 포스튜머스 역을 했다 이 시대에 들어가면 호화스런 무대장치와 이머젠을 부각시키는 무대로 특색을 이루었다. 필립 캠블이 제작한 『심벨린』 공연에서 헬렌 포시트가 이머젠 역으로 관중의 인기를 얻어 그녀의 나이 48세가 될 때까지 이 역을 계속 열연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 극의 여인들』 (On Some of Shakespeare's Female Characters, 1885)이라는 저서까지 간행한 재원으로 당대의 감상적인 이머젠 여인상을 쌓아올렸다. 19세기 때 이머젠 역의 명연기로 쌍벽을 쌓은 여배우로는 포시트와 야키모 역을 한 당대의 명연기자 헨리 어빙과 공연한 엘렌 테리를 들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이 만들어낸 연극(1896. 9. 22)이야 말로 19세기말의 최후를 화려하게 수놓은 무대였다. 어빙이 제작한 이 화려한 무대는 야키모로 분한 어빙에게가 아니라 이머젠으로 분한 테리, 그리고 무대장치를 한 알마 테데마에게 관객의 뜨거운 박수갈채가 계속되어 몇 주간이나 공연은 계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타임스는 신기원을 이룬 공연이라는 격찬을 보냈다. 셰익스피어를 유난히도 혐오하는 엘렌 테리의 연인 버나드 쇼는 『심벨린』 공연에 대해 “가장 저급한 멜러 드라마의 찌꺼기”라고 신랄한 평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최종막을 손질하여 『다시 끝손질한 심벨린』이라는 개작대본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빗나가 오히려 셰익스피어 재능을 증명해 주고도 남는 결과가 되고 말았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배리 잭슨(1923)이 연출한 공연에서 등장인물에 현대복을 입혀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제2차 대전 후에 가장 인기를 끈 공연은 스트라트포드어폰 에이븐에서 피터 홀(Peter Hall) 연출, 페기 아쉬크로프트가 이머젠을 연기한 무대(1957)였다. 옛이야기와 같은 황당무계함이나, 희극성을 강조한 연출기량은 격조 높은 승리의 찬가라는 평을 홀이 받게 된다. 그 외에도 감동적인 공연을 든다면 바네사 레드그레이브(1962),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븐 공연에서 상당부분을 축소한 버전에서 이머젠 역을 감동적으로 연기한 스잔 프리트우드(1974), BBC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클레어 블룸(1984)의 명연기를 열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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