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미하일 쿠즈민 '베네치아의 광인들'

clint 2018. 6. 16. 09:19

 

 

 

 

 

쿠즈민의 <베네치아의 광인들>18세기 베네치아라는 양식(style)’ 위에 세워진 전형적인 양식화 작품이다. 지문에서 쿠즈민은 극의 배경을 골도니와 고치, 그리고 롱기의 베네치아로 정의한다. 작품의 흐로노토프가 되는 것이 18세기 베네치아라는 역사적 시공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코드화된 양식이며, 그 양식이 등장인물과 사건의 존재 기반이 된다는 사실이 작품의 시작부터 명백해진다. 곤돌라 뱃사공의 노랫소리, 가면극과 거리극, 사랑에 빠진 여인과 정부들, 환하게 불을 밝힌 도박장의 웃음소리, 방탕한 가장무도회 등 18세기 베네치아의 전형적인이미지들의 배치가 작품 구성에서 가장 일차적인 축을 이룬다쿠즈민이 그려 낸 18세기 베네치아의 가장 중요한 원 텍스트가 된 것은 당시 큰 인기를 누렸던 무라토프의 책 이탈리아의 형상이었다. 무라토프는 자신의 저서에서 18세기의 베네치아를 마스크 촛불 거울로 이미지화한다. 흑인소년들이 촛대와 커다란 거울을 들고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 <베네치아의 광인들>은 무라토프의 베네치아의 세 축인 촛불과 거울, 그리고 마스크의 이미지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무라토프를 원용했던 메이예르홀트의 베네치아가 현실과 허구/환상의 불확실한 경계 위에서 유희하는 호프만적 그로테스크로 충만했다면, 쿠즈민의 베네치아는 호프만적 그로테스크보다는 세계는 극장이다라는 셰익스피어적 파토스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나르치제토와 함께 아를레킨과 피네트의 마스크를 쓰고 팬터마임을 공연하겠다는 스텔로 백작의 제안은 작품의 절정인 살인 사건으로 끝나게 되지만 18세기 베네치아가 담아내는 영원한 인생극장 속에서 스텔로 백작의 죽음이나 나르치제토의 뒤늦은 깨달음은 모두 항상 반복되었고 또 결국은 반복될 에피소드 적 코미디로 처리된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고 황급히 공연을 마무리한 뒤 베네치아를 떠나는 피네트의 마지막 대사는 이 영원한 삶의 극장에 대한 찬가와도 같다.

 

 

 

 

 

미하일 쿠즈민(Михаил Кузмин, 18721936)1872년 야로슬라블에서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가난한 귀족 가문 출신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났다.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문화에 관심이 컸던 그에게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세르반테스, 스코트, 호프만, 로시니, 베버, 슈베르트 등은 미래의 시인이자 음악가를 키운 문화적 토양이 되었다. 또한 구교도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종교 문화와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쿠즈민은 당대의 예술문화계에 시인이 아닌 음악가로 입성했다. 시인으로서의 문단 데뷔는 그보다 늦은 1904년에 이루어졌다. 19041905년에 시집 알렉산드르의 노래, 이듬해에는 동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루어 큰 반향을 일으킨 중편소설 날개를 발표했다. 다양한 혁명적 예술사조에 개방적이었던 그는 1917년 혁명 역시 두 팔 벌려 맞았으나 결국은 혁명 이후의 소비에트 현실과 화해할 수 없었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 19362월 폐렴으로 사망한다.

 

 

   Mikhail Kuz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