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위군’ ‘투르빈가의 나날들’ ‘거장과 마르가리타’ 등으로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거장 반열에 오른 미하일 아파나시예비치 불가코프(1891∼1940)는 유머와 풍자가 넘치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작품 세계로 러시아 문학에 새로운 전환기를 선사한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스탈린의 억압적인 독재 체제가 막을 내린 이후의 평가다. 표현의 자유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에 대해 압박과 통제가 가혹했던 스탈린 체제에서 불가코프의 작품 대부분은 발매 금지 및 상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러시아 혁명이나 소련 체제에 대해 우호적인 글들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이후의 내전에서 의사로 전쟁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던 불가코프는 ‘투르빈가의 나날들’에서 혁명에 반대했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반 소련 적’ 이라며 맹비난을 받았다. 결국 이 작품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1928년 강제로 종연되었고 이 작품을 15회나 관람한 스탈린의 호감도 상연금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이후 작품에서도 불가코프는 소련체제의 어두운 부분을 들춰내고 검열 제도의 문제점과 권력을 풍자해 1929년에는 그의 모든 작품 출판과 무대 상연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비슷한 상황을 계속 견뎌야했다. 한편 1930년 불가코프는 소련 정부에 편지를 여러 번 써서 작품을 출판할 수 있게, 그렇지 않으면 망명을 떠날 수 있게, 그것도 아니면 극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즈음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1893∼1930)가 자살했고, 스탈린은 불가코프에게 직접 전회를 걸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선처해주었다. 불가코프는 각색가, 번역가, 감독조수 등으로 일했지만 7년을 끌어온 ‘위선자들의 밀교’ 공연이 공산당 평론가들의 반대에 부딪쳐 상연금지를 당하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극장을 떠났다. 불가코프는 급작스러운 시력 약화와 병중에도 글쓰기에 몰두해 결국 실명하게 되었고, 1940년 죽기 한 달 전까지 세 번째 부인인 엘레나 세르게예브의 구술필기를 통해 소설 《거장과 마르가리타》 원고교정 작업을 마친다. 문학에 대한 불가코프의 열정과 신념을 표현한 “원고는 불타지 않는다!" 라는 말을 남긴 이 작품은 사후에 부인 엘레나가 당국의 눈을 피해 원고를 숨겨 두었다가 1966년 검열로 삭제당한 불완전한 상태로, 1973년에는 검열 없이 정식으로 출간되었다. 혁명과 체제에 대해 회의적이고 민중에게 불온한 생각들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끝없는 비판과 위협에 시달렸던 불가코프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좌절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불안정해 혼자 거리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두려움 속에 살았다. 스스로 자신의 원고를 태워버리기도 했다. 불가코프가 스탈린에게 편지를 쓴 것은 그런 암담한 상황을 벗어나보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늑대 대하듯 했다. 사람들은 몇 년 동안 사냥감을 몰듯 나를 몰아댔다. 나는 원한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난 무척 지쳤다. 짐승도 지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 짐승은 더 이상 늑대도 작가도 아님을 선언했다. 그 짐승은 이제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침묵하고 있다. 침묵하는 작가는 없다. 만약 그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는 진정한 작가가 아니다. 만일 진정한 작가가 침묵하고 있다면 그는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어느 날 책 할인 코너에서 불가코프가 쓴 《스탈린에게 보내는 편지》를 발견하고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왜 작가 불가코프는 독재자 스탈린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썼을까? 왜 작가는 상상력을, 다른 의견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권력자 한 사람을 위한 글을 쓴 걸까? 그리고 불가코프의 편지와 스탈린의 전화라는 실화를 재구성하고 연극적 상상력을 더해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1999)를 선보였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조치들은 스탈린 같은 절대 권력자의 존재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조치가 오히려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적인 집단이나 대중,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많이 행해진다. 한편 검열 위험 앞에서 저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어느 선까지 표현할지 결정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 이러한 “자기 검열은 타인의 검열과 달리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자기생각을 뿌리부터 뽑아버려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자기검열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고 만다.
불가코프가 스탈린에게 편지를 계속 쓴 것은, 그리고 답변으로 받은 스탈린의 전화는 불가코프에게 희망을 품게 했을지도 모른다. 무자비한 권력자와 대화를 이어갈 수도 있고, 상황이 개선될 수도 있고, 자신의 작품들이 조국에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안타깝게도 후안 마요르가의 불가코프는 그 헛된 희망과 잘못된 방향성으로 인해 점점 권력자를 너무 의식하게 되었고 자기 검열을 넘어, 권력자의 말을 받아쓰며 자기 생각은 존재하지 않도록 변해 갔다. 과연 진정한 작가는 누구를 위한 글을 써야 하는가?

작가의 글
대형 마트의 재고 코너에서 <스탈린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된 지도 벌써 한참 전입니다. 작가 미하일 불가코프와 예브게니 자먀틴이 독재자에게 쓴 편지들을 모아놓은 것이었습니다. 한 통을 제외하고는 모든 편지에 불가코프의 서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책에는 편지들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특히 전화 한 통화에 대한 언급이 흥미로웠습니다. 불가코프에 따르면 스탈린이 직접 불가코프에게 전화를 걸었고 짧은 대화도중 전화가 끊겼다고 합니다. 관련 부분을 훑어보고 나서 나는, 유명한 어떤 작가가 한명의 독자만을 위해 글을 써내려가는 희곡을 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역사적 재구성이 아니라 불가코프 시대와 우리 시대를 성찰해볼 수 있는 판타지로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그 작품은 1999년에 처음 무대에 올랐고 이후로 전 세계 이곳저곳에서 20회 넘게 공연되었습니다. 어떤 공연에서는 무대를 스탈린이 만든 세상의 축소판처럼 보여 주었고 어떤 공연에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배신자란 낙인과 함께 체제에서 추방하기만 하는 스탈린의 모습을 부각해 재현했습니다. 또 어떤 공연에서는 유일하게 하나의 출처만 인정하는 규율과 미약한 인간 존재 사이의 불평등한 대결로 무대를 꾸였습니다. 예술과 권력의 적대 관계를 보여주는 드라마 또는 비극으로 다룬 공연도 있었습니다. 독자나 관객 입장에서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와 마주하면 작가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인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올라 머릿속에 맴돌곤 합니다. 누가 내 글을 쓰는 거지? 지금도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누가 내 글을 쓰는 거지?
한국의 독자와 관객에게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어떤 질문을 불러일으킬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대형 마트의 한 코너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탄생한 이 작품과 아름다운 한국어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많이 고맙습니다. - 후안 마요르가

Juan Mayorga
'외국희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빅톨 위고 '레미제라블' (1) | 2018.06.17 |
|---|---|
| 미하일 쿠즈민 '베네치아의 광인들' (1) | 2018.06.16 |
| 원작 <뤼시스트라테> 김광림 재창작 '여성반란' (1) | 2018.06.12 |
| 이반 뚜르게네프 '시골여자' (1) | 2018.06.08 |
| 뚜르게네프 '시골에서 한 달' (1) | 2018.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