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뚜르게네프 '시골에서 한 달'

clint 2018. 6. 8. 08:03

 

 

 

이반 세르게비치 투르게네프가 1855년에 발표한 극작품이다.

<시골에서의 한 달>은 러시아의 시골 부호의 젊은 부인인 나딸리야 뻬뜨로브나를 중심으로 그를 사모하는 남편의 친구 라끼찐, 루틴한 생활에 지루함을 느끼는 나딸리야, 그리고 그녀가 불현 듯 생의 활기를 느끼듯이 다가온 아들의 가정교사인 벨랴예프, 그 벨랴예프를 좋아하는 양녀 베라 등이 얽힌 사랑과 지루함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은 것은 각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잘 짜여져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한 작품이라 하겠다.

 

 

 

 

 

<시골에서의 한 달>은 일련의 뚜르게네프 드라마들 가운데 분량 상으로 가장 길고 인물 성격의 창조에 있어서도 가장 복잡한 작품이다. 실리는 이 드라마를 "체호프 세대 이전에 도달한 심리 드라마 발전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는데, <시골에서의 한 달>이 종래의 어떠한 전통 드라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섬세하고 복잡다단한 심리적 변이 양상들을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일종의 '사랑의 심리학'이라 명명할 수 있을 이 드라마의 플롯 구조 - 등장인물들 간의 미묘한 감정 관계는 투르게네프 적 세계관의 본질이, 소설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공히 등장인물의 구체적 행동이 아닌 사고의 고독한 순환에 걸려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소통하기보다는 독백하고, 마주서기보다는 홀로서기만을 고집하는, 그에 함몰되는 인물의 내면 풍경이 바로 "심리"라고 지칭되는 것. 그러나 바로 이 "심리"라는 것을 그저 '복잡한 것', '미묘한 것', '설명할 수 없는 것' 등으로 애매하게 추상화시키고 '초기 뚜르게네프의 낭만성'이라는 식의 간편한 레테르를 붙여버릴 때, 우리 역시 무의식적으로 전래의 비평적 관례를 반복하게 된다. 뚜르게네프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사랑, 그 감정을 매개로 한 인물들 간의 교호 관계는 작가 개인의 취향이나 미숙성, 수사학적 미장센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19세기 상류 귀족 사회의 문화적 규범의 문제이며, 따라서 행위 시학의 범주에서 조명되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한 달>에 나오는 인물들이 느끼는 지루함이란 어떠한가? 나딸리야 뻬뜨로브나에게 지루함이란 소여로서의 삶에 내재해 있는 코드 화된 일상 자체에 다름 아니다. 돌려 말한다면, 그녀가 한탄하는 지루함이란 전 시대가 남겨놓은 문화적 유습으로서의 지각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오네긴과 빼초린을 읽음으로써 학습한 일상에의 포즈일 뿐이다. 지루함의 다른 중요한 변주의 하나는 "게으름"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낭만주의적 세계 지각으로서의 지루함과 변별되는 뚜르게네프만의, 그의 시대와 인물들의 고유한 세계 지각 - 19세기 중엽에 나타난 '세계에 대한 문화적 표상 방식'이라 불려 마땅하다. <시골에서 한 달>의 인물들이 느끼는 게으름의 감수성은 다분히 무의식적이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의 여지가 봉쇄되어 표출된 비판적/자기 의식적 감정이라기보다도 문화적 코드에 순응적인, 그것을 넘어보고자 애원하면서도 차마 넘어서는 모험으로는 나아가지 못하는 데서 역전적으로 표출된 두려움/억압의 산물인 것이다. 나딸리야, 라끼찐, 심지어는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벨랴예프조차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시골에서의 한 달>은 분명 과도기적 작품이다. 뚜르게네프는 이 드라마를 끝으로 그의 극작 시대를 접고서 줄곧 소설 쓰기에만 전념했고, 그의 후기 대작들이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확고한 전통을 세우는데 크게 이바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전체적 경향으로서, 그리고 후대의 이데올로기적 평가로서의 리얼리즘이라는 범주에 의해 뚜르게네프의 텍스트 전체를 의미 화하는 일에는 너무나도 큰 무모함이 있다. 이는 비단 작가의 개인적 성향이라든지 작풍을 근거로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작가가 자신의 창작 활동을 수행하였던 시대적 조건 - 문화적 관습, 규범, 제도 등등과의 관계를 염두에 둘 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작가는 자기 시대를 진단하고 미래를 앞질러 예견하여 전망을 제출하는 능력을 갖는다는 리얼리즘의 테제 - 그것이 갖는 확고함만큼이나 또한 분명한 사실은 작가는 자기 시대의 문화적 규율에 길들여져 있고,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거나 저항하는 과정 가운데 창작 활동을 수행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Ivan Sergeevich Turgenev( 18181883)

오래된 귀족 가문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페테르부르그 대학의 철학- 인문학부를 마치고 베를린 대학에서 3년간 수학했다 초기 대표작 빠리샤이후 많은 중· 단편을 발표하고 1850년대에는 동시대인지에 비평문들을 실으면서 평론가로 활동했다. 1852년 고골을 추모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유형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이 시기는 그의 창작의 전기로 평가된다. 루진, 아버지와 아들등의 작품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 산문 작가로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뚜르게네프에게 극작은 다양한 형식을 실험하는 하나의 시도였으며, 1852년 이후로 극작이나 연극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경쾌한 희극이나 살롱 희곡, 심리주의 극 등 극작에서도 다양한 형식들을 모색하고 시도하였으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던 격언극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기도 한다, 뚜르게네프의 극작은 무엇보다도 이후 체호프의 새로운 드라마를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닮으면 터지는 법(1847), 독신자(1849) 등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