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장 주네 '엄중한 감시'

clint 2018. 5. 22. 18:52

 

 

 

줄거리

모리스, 르프랑, 초록눈은 요새화된 감옥의 죄수들이다. 르프랑은 며칠 후면 석방될 예정이고, 모리스는 신참이며, 초록눈은 살인범으로 곧 사형될 처지다. 이 사회에서는 범죄의 정도로 사람이 영웅시되거나 무시당하는데, 초록눈과 같이 살인범이거나 ‘백설이’처럼 대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모두에게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이 감방에서도 초록눈이 가장 두목이다. 오늘은 초록눈의 아내가 면회 오는 날이다. 그녀는 남자들이 한번 보면 반할 정도로 미인이다. 르프랑은 초록눈 대신 그녀에게 여러 번 편지를 썼다. 왜냐하면 초록눈이 글을 몰라서 부탁했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르프랑과 사이가 좋지 않다. 르프랑이 초록눈의 아내를 빼앗을 거라고 악담한다. 이에 서로 다투며, 초록눈은 그들을 말린다. 그러나 르프랑은 모리스를 죽인다.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감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록눈처럼 영웅적인 대접을 받고자 함에서다. 그러나 정작 초록눈은 그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르프랑은 석방도 못되고, 불행을 선택한 처지가 되어 버린다.

 

 

 

장 주네Jean Genet(1910-1986)가 생전에 발표한 다섯 편의 희곡은<엄중한 감시Haute surveillance, 1947>,<하녀들Les Bonnes, 1947>,<발코니Le Balcon, 1956>,<흑인들Les Nègres, 1958>,<병풍들Les Paravents, 1961>로서 그 작품들의 상연에는 언제나 수많은 소동이 따랐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방랑자, 도둑, 동성연애자 등으로 ‘테두리 밖의 삶’을 살았던 그의 삶과 작품이 가지는 다양하고도 독특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리고 1943년 감옥에서 시작된 주네의 문학적 노력은 자신의 억압된 욕망을 글로 표출하는데 바쳐졌는데, 부르주아 사회의 소유권의 윤리가 그를 사생아와 헐벗은 자로서 이중으로 무(無) 속으로 내던지기 때문에 그는 부르주아 법과 미덕에 대한 전도된 숭배로 ‘성스러움과 도둑질’의 놀이를 하면서 그의 범죄의 이력을 시작한다. 이렇듯 선(善)의 세계에 의해 거부당한 주네는 악(惡)의 세계에 의지하며, 배반을 통해서 절대에 도달하려고 시도한다. 그의 삶은 ‘정직한 사람들’의 삶이 역전된 거울 이미지가 되며, 그의 등장인물들처럼 그는 자신의 유죄를 절대악의 이미지로 미화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감옥을 궁전으로, 도둑을 왕자로, 창녀를 연인으로 부름으로써, 감옥, 도둑, 창녀를 미(美)의 대상으로 만든다. 따라서 그의 희곡에서 선은 악으로 대체되는 가치들의 전도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의 희곡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이며, 그 세계 역시 그들을 추방한 바깥 세계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계급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 계급체계의 맨 꼭대기에는 살인자, 가끔은 ‘범죄의 은총’을 입은 보이지 않는 신적인 존재들이 있고, 그 아래에는 아마도 도둑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냉정함과 무자비함, 남성미, 타고난 기품 그리고 거의 신비스럽기까지 한 지배력에 의해서 다른 도둑들과는 따로 떨어져 있으며 죄수들 가운데 강하고 잘 생긴 우두머리들이 있으며, 그들 아래에는 난폭자들, 부랑자들이 있고, 맨 밑바닥에는 추방당한 자들 가운데서도 추방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는 유약한 남색 상대역이 있다.
 
 

 

주네의 희곡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극적 형태는 놀이와 의식(儀式)이라고 할 수 있다. <엄중한 감시>에서<병풍들>에 이르기까지, 극행동은 역할놀이, 즉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되고 싶거나 혹은 파괴하고 싶은 것과 동일시되고자하는 시도에 항상 기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원래의 제목이<상석규칙Les Préséances>이었다는 사실이 암시하듯이<엄중한 감시>에서 르프랑은 초록눈의 세계에, 아마도 최고의 살인자인 백설(白雪)이의 세계에 속하기 위해서, 모리스를 교살함으로써 위대한 살인자가 되는 놀이를 한다. 이 희곡에서의 갈등은 두 등장인물들이 다른 한 명의 등장인물에 대한 그들의 동시적인 사랑과 증오를 표출하는 삼각관계에서 나온다. 초록눈은 살인범인 덕택에 이 사회 안에서 영광의 자리에 위치하면서, 시시한 좀도둑에 불과한 르프랑과 모리스의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다. 한편 무대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는 않으면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만 환기될 뿐이지만, 이 감옥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신적인 존재인 흑인인 백설이가 이 같은 계급체계의 최정점에 위치한다.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일종의 검은 미사messe noire/black Mass라고 부른 바 있는<하녀들>에서부터는 극 중 놀이가 매일 똑같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만, <엄중한 감시>에서는 이들의 범죄놀이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는 느낌만 여러 곳에서 감지되는데 이 역시 도착된 미사의 형태를 띠고 있다.<엄중한 감시>는 그들의 행동들이 무의식적으로 의식이 된 세 명의 죄수들의 삶을 보여 준다. 모든 것이 날마다 되풀이되는 곳인 그리고 잡다한 사건들이 최소한의 것으로 환원되는 곳인 감옥 세계에서는, 모든 행위가 거의 종교적인 신앙심을 갖고 행해진 의식이 된다. 이러한 도착된 미사에서, 당당하면서 냉담한 초록눈은 예수의 형상소이며, 르프랑은 사제의 역할을, 모리스는 희생물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닫혀진 독방 저 너머로, 르프랑과 초록눈에 의해 강력하게 환기되는 백설이는 보이지 않는 신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굳센 검둥이이며, 악의 검은 야만의 신성인 그의 범죄는 초록눈의 것 보다 훨씬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의 범죄가 더 필연적이었고 분명히 더 의지적이었기 때문이다.

 


르프랑은 살인행위의 ‘영광만을 위해서’, 즉 그의 살인행위가 자신을 선택된 사람들 속에 확실히 들어가게 해줄 거라는 그릇된 믿음 속에서 모리스를 살해했다. 그러나 르프랑은 실패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는 일에는 어떠한 실재성도 없다. 르프랑의 역할은 자유로운 창조자라기보다는 모방자의 역할이다, 그래서 모방을 통해서는 그는 그의 신들처럼 될 수 없다. 그가 위대한 살인자를 본떠 잉크로 가짜 문신을 그린다든가, 초록눈의 저고리를 몰래 입는다든가, 그리고 문맹자인 초록눈을 위해 그의 아내에게 대신 편지를 써줌으로써 그의 내밀한 세계 속으로 침투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르프랑은 여전히 그대로의 자신이며, 보잘것없는 도둑이며, 심지어 그의 영웅인 초록눈이 보기에는 르프랑이 모리스를 살해하는 일 조차도 시시한 일일뿐이다. 이처럼 주네의 희곡은 일반적으로 굴욕적인 종류의 죽음으로 끝나는 의식이다. 이렇듯 주네의 희곡에서 등장인물들이 그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외관과 반사상들이 벌이는 놀이 혹은 의식의 층위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지배자들의 힘이 현실 속에서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피지배자들의 반항은 오직 의식 혹은 놀이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며, 더욱이 놀이 속에서조차도 그들의 반항이 항상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는 사실에서 극단적인 비극성을 보여준다 하겠다. 

 

장 주네의 5희곡은 하나씩 독립된 작품임과 동시에 다섯 작품을 계기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지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세계관을 담고 있다. 특히<하녀들>은<엄중한 감시>와 상당히 유사한 작품으로 간주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배경과 등만 인물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는 같은 작품이란 주장도 있다.<하녀들>은 국내에서 극단 풍경(박정희), 연희단 거리패(이윤택), 백수광부(이성열) 등에서 연극으로 또는 무용극으로 활발하게 공연되었지만,<엄중한 감시>는 그 중요성에 비해서 공연 빈도가 적다. 이에 복잡한 구조와 의미 분석상의 난해함으로 얽혀있는 <엄중한 감시>를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명쾌한 표현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엄중한 감시」는 장 쥬네가 생전에 발표한 5 희곡 중 맨 처음 집필한 것으로서, 앞으로 펼쳐질 그만의 특유한 연극적 기법들이 혼재해 있지만, 어떻게 보면 채 다듬어 지지 않은 미완성 상태의 희곡으로 보인다. 그랬다. 연출의 눈에 「엄중한 감시」는 길들어지지 않은 야생마라고 할까? 매우 호흡이 거칠고 불규칙하며, 도데체가 종잡을 수가 없는, 애초에 접근 자체를 거부하는 듯한 매우 난해한 작품이었다. 더군다나 「하녀들」이후로 나타난 ‘극중극’ 형태가 주는 연극적 재미 등은 고사하고, 수많은 극적 상징과 과거가 현재와 교차되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 희곡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작업 참여자들과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어떠한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이해하기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