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셰익스피어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

clint 2018. 5. 22. 08:56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사극이나 코미디와 정말 다르다! 셰익스피어가 살던 당시의 작은 도시를 무대로 중산층의 평범한 인물들이 벌이는 '웃으면 복이 와요!' 혹은 19세기 빈에서 유행하던 오페레타 비슷한 코미디! 그게 바로 이 작품 '윈저의 신바람 난 아줌마들'이다. 공산주의 이론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이 작품을 무지무지 좋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착하고 지조 있고 똑똑한 중산층 여자들이 앞장서서 못된 귀족을 혼내면서도 그의 명예는 지켜주며 그런 일을 통해서 남편들을 교화(?)하고 또 상류 하류 계급의 사람들을 모두 단결시켜서 계급갈등을 없애는 이야기니까 그럴만하다.

 

 

 

 


제목에 나오는 주인공 '윈저의 아줌마들'은 페이지(Page) 부인과 포드(Ford) 부인이다. 둘 다 부유한 남편과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며 명랑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멋지고 착하며 정조관념 뚜렷한 중산층 아줌마들이다. 이 두 여자가 남편들의 재산을 관리한다는 걸알게된 팔스타프(Falstaff)는 한심한 상류계급의 주정뱅이 사기꾼표 도둑놈으로 돈을 노리고 이 두 아줌마에게 똑같은 연애편지를 보낸다. 도둑질하는 것보다는 돈 있는 여자를 꼬시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전통적 멍청이 발상에서 저지르는 짓이다. 그런데 아주 친한 두 여자는 이 두 편지를 서로 비교해본 뒤에 이 '욕심쟁이 귀족'을 손 좀 봐주기로 공모한다. 아줌마들의 첫 번째 작전으로 포드 부인은 팔스타프에게 밀회의 약속을 전하는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멍청한 팔스타프는 이 계획을 똘마니들인 바돌프(Bardolph), 피스톨(Pistol), 님(Nym)에게 누설했고, 해고당한 피스톨과 님은 이 계획을 두 부인의 남편들에게 일러바친다. 두 남편 중 페이지는 부인을 믿지만 포드는 부인과 팔스타프의 관계를 의심한다. 질투와 의심이 가득해진 포드는 '브룩스'로 가장하고 팔스타프에게 술을 사주며 밀회의 세부사항을 알아낸 뒤 현장을 덮칠 생각이다. 두 여자는 역시 기발한 방법으로 포드의 질투심도 치료한다. 드디어 현장(포드의 집)에서 팔스타프가 포드 부인과 로맨틱한 무드를 잡고있을 때 페이지 부인이 달려 들어와서 남편(포드)이 집에 온다고 알려준다. 놀란 팔스타프는 숨기 위해서 빨래 바구니로 뛰어든다. 곧 포드가 나타나고 아줌마들은 집안을 뒤지게 놔둔다. 이미 빨래 바구니는 치워버렸으니까! 바보 꼴이 된 포드는 마누라와 페이지 부인에게 사과한다. 그 동안 빨래 일꾼들은 바구니를 갖다가 테임즈 강에 집어던졌고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팔스타프는 그저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한다. 재미 들린 아줌마들은 제 2탄을 준비한다. 다시 팔스타프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는 또 '브룩스'에게 세밀히 떠들고... 또 다시 포드가 달려 들어오자, 두 아줌마는 팔스타프를 포드가 아주 싫어하는 여자(하인의 아줌마)로 변장시켜서 매맞고 쫓겨나게 한다. 이제 두 아줌마는 모든 것을 남편들에게 말하고 병력이 두 배로 늘어난 네 사람은 다음 작전을 짠다. 포드 부인이 보낸 편지대로 팔스타프는 괴상망측한 (변태끼 있는) 요정 차림새로 윈저 공원의 숲에 나타난다. 여기에 페이지 부부의 딸인 앤과 마을의 몇 사람들이 요정으로 변장하고 나타나 팔스타프를 놀라게 해준다. 이 장면에는 서브플로트의 다른 작전이 겹친다.

 

 

 

 

 

이 작품의 메인 플로트는 두 아줌마들이 팔스타프를 손보는 작전이고, 서브플로트는 페이지 부부의 딸 앤과 결혼하려는 구혼자들의 얘기다. 닥터 케이즈(스펠링은 Caius지만 발음은 '키즈' 혹은 '케이즈'로 읽기 때문에 무식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슬렌더(Slender), 펜턴(Fenton)이 구혼자인데 세 명 모두가 케이즈의 가정부 퀴클리(Quickly) 부인을 통해서 앤에게 마음을 전하려는 것도 웃긴다. 그런데 앤의 아버지 페이지는 슬렌더를 사윗감으로 생각하고 어머니 페이지 부인은 케이즈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부부는 각자 맘에 드는 사윗감이 숲에서 딸을 납치하도록 헸는데 슬렌더와 케이즈는 앤을 못 찾고 엉뚱한 상대를 만난다. 그리고 앤은 가난해도 고상한 가문 출신인 펜턴을 택하여 결혼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시한 '중산층'과 '상식'(common sense)은 지금도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자부심을 갖고 자랑하는 것들이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는 곳 '윈저'에서는 외부에서 부여한 권위를 부정한 시선으로 본다. 슬렌더는 허풍 부리는 것이 바보처럼 보이고, 왕의 빽으로 권위를 부리는 샬로우 판사도 역시 바보 꼴이 된다. 웨일즈의 성직자 역시 자신의 권위가 외부(교회)에서 오는 것이기에 사투리 때문에 놀림 당하고 프랑스 의사 케이즈 역시 비슷한 꼴을 당한다.
상류층에 대한 반감은 무대 밖에서 페이지가 자기 딸에게 청혼하려는 펜턴을 거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페이지는 펜턴이 돈만 노리는 것이라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상류층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감 표시는 돈과 여자를 노리는 팔스타프를 계속해서 놀려주고 골탕 먹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산문이 많아서 작품 거의 전체가 당시 중산층들이 쓰는 보통 말로 쓰여졌다. (물론 지금 영국 사람들이 쓰는 말보다는 더 화려하고 연극적이다) 이런 말로 농담과 속담 그리고 (요즘 우리가 영어를 섞어 쓰듯) 유식한 라틴어까지 계속 해대기 때문에 퀴클리 부인 같은 하류층(노동계급) 사람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또 에반스와 케이즈의 서툰 발음과 엉터리 영어를 통해서 외국인을 놀리는 것도 이 작품의 코믹한 부분이다.

 

 

 

 

 

중산층의 두 부인이 몇 가지 문제를 멋지게 해결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요즘 유행대로) 여성운동의 샘플로도 중요시된다. 엉큼한 팔스타프를 혼내주고 남편의 질투심을 고치는 것이 중산층의 승리인가 아니면 여성 승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사실 포드는 마누라를 의심할만하다. 제때에 집에 왔더라면 마누라가 팔스타프와 있는 것을 봤을 텐데 그렇게되면 그저 장난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비해 페이지 부인은 남편이 의심을 안 하니까 다행이지만 이 집에는 다른 문제가 있다. 딸의 결혼 상대로 부부가 서로 다른 사람을 고른 것이다. 그러나 요즘 여성운동의 면에서 따져보자면 두 부인은 (당시 사회가 그랬듯이) 모든 것이 자신들이 이룬 것이 아니라 남편의 지위 재산 사회적 위치 덕분에 얻어진 것들이기 때문에 조금 아쉽다. 그에 비해서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하는 결혼을 하는 딸(앤)이 더 자유스러운 여자로 보인다.
이 작품은 코미디의 기본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남녀의 변장이 나온다. 팔스타프는 포드의 집에서 (포드가 아주 싫어하는) 하인의 뚱뚱한 아줌마로 변장하고 달아나다가 포드에게 매까지 맞게 된다. 이것은 끝 부분으로 연결되어서 공원 장면에서 슬렌더와 케이즈는 자신들이 바라던 여자 앤이 아니라 여자로 변장한 남자들과 만나게 된다. 당시는 동성연애를 추한 것으로 보았기에 이런 상황이 되는 것은 행복하고 로맨틱한 결말과 대비되는 아주 끔찍한 꼴이며 둘 다 바보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시 연극에서 앤을 맡은 것은 어린 남자 배우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끝에 앤과 만나는 펜턴은 행복해 보였을까? 어떤 면에서는 펜턴도 슬렌더나 케이즈와 마찬가지로 보였을지 모른다.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지만 셰익스피어가 이중으로 장난을 했을 가능성도 있는 부분이다.)
작품의 끝 부분에서는 예상했던 대로 나쁜 팔스타프를 골탕먹이고 놀리는 일이 모두 이루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를 추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이미 무력해진 팔스타프를 포드와 페이지가 한번 더 망신시키고 다음에는 그를 결혼잔치에 초대한다. 이렇게 팔스타프는 톡톡이 망신당하지만, 그 혼자만 당하는 것은 아니다. 포드는 질투심 때문에 망신 당한 셈이고, 페이지 부부는 딸 앤이 자기네가 고른 인물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니까 역시 망신당하는 꼴이다. 결국 놀려줄 사람 놀려주고 당할 사람 당하고 가르칠 사람은 가르친 뒤에 이 사회의 중심인 중산층은 기분 좋고 명랑하게 상류층과 하류층 그리고 외국인들까지 모두를 받아들이며 하나로 통합된다. 속고 속이고 놀려주고 당하다가 끝에 모두 행복해지는 동서고금의 해피엔딩이면서 동시에 아이디얼한 사회상을 그리는 교훈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 작품에 팔도 사투리를 잔뜩 넣어서 남북과 동서의 화해라는 주제로 바꿔서 공연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극처럼 재미 있고 흥미로운 연극은 없다. 우선 대사를 빼놓고 그의 무대를 본다면 거기에는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들이 많다. 고관대작의 행렬이 있는가 하면 싸움장면, 대관식 장면, 어릿광대의 농하는 장면, 유령과 마녀의 등장, 변장한 장면......이 밖에 가지가지 관객의 눈요기꺼리가 연극의 밑바닥에 깔려있다. 사실 이러한 극작술은 셰익스피어가 철두철미 무대인이라는 것을 입증해준다. <원저의 아낙네들>은 이와 같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성을 충분히 나타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1602년의 초판에 「존 포올스타프경과 윈저의 명랑한 아낙네들에 관한 뛰어나고도 교묘하게 꾸며진 희극」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듯이 '포올스타프경 망신하다' 라는 부제가 붙을 정도의 소극이다. (사실 셰익스피어극에는 笑劇的요소가 무척 많으며 그것 때문에 재미있는 것.)
포올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적 인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인물이지만 엘리자베스여왕은 이 인물을 '헨리4세'라는 극에서 보고 감탄한 나머지 연애사건에 그를 집어넣어 쓰라는 명령을 받고 셰익스피어는 <윈저의 아낙네들>을 2주만에 써냈다고 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는 포올스타프는 물론, 몇몇 인물들이 '헨리4세'에서 이미 등장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포올스타프는 '헨리4世'에서 묘사된 것과 비교해볼 때 이 작품에서는 복잡한 성격의 깊이가 희박해지고 아주 단순한 소극적 인물로 되어버린 감이 있다. 사극 '헨리4세'에 나오는 포올스타프는 변화무쌍한 기지에 차있으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철면피이고, 자부심이 강하고, 비열한, 그러나 밉지 않은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윈저의 아낙네들>에서는 나약하고 속된 인물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종횡무진한 그의 기지도 힘을 쓰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이 작품이 소극으로 씌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모든 등장인물이 외면적 특징은 있으나 개성으로서의 깊이가 없다고 하는 점을 이해해야 될 것이다. 듣고 줄거운 연극이라기 보다 보고 즐거운 연극이 곧 이 <윈저의 아낙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