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존 밀링턴 싱 '계곡의 그늘'

clint 2018. 5. 20. 10:53

 

 

 

계곡의 그늘(In the Shadow of the Glen) (1903)은 당시 아일랜드민중에게는 충격이었다. 사랑없는 결혼 생활을 버리고 떠돌이 남자를 따라나서는 젊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인 이 작품은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민담이지만 1903년의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너무도 현실적이고 그의 언어는 너무도 토속적이어서 청중들은 그 극의 현실의 묘사가 아니라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창작된 것이라고 믿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정숙한 아일랜드 여성에 대한 모독” “어떤 아일랜드의 농부의 아내도 남편을 속이지 않는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자들은 ‘민족의 명예’라는 명분 하에 모든 아일랜드 사람들은 용감한 애국자이고 모든 아일랜드 여성은 덕의 화신이며 나라에 대한 주저하지 않는 사랑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영광이라는 주장을 모든 작가들이 따를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싱이 극을 쓰면서 염두해 둔 것은 이러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문화적 민족주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인 노라이다. 아일랜드 군도의 여성들은 가난과 무지의 억압으로 인해 일반적 여성다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 그네들은 오로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원치 않은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게다가 언제든 배를 집어삼키는 무자비한 자연으로 인해 남편과 자식들이 목숨을 잃어도 체념한 채 살아가야 한다. 이 모든 요인들이 지독한 숙명성과 수동성을 부여하여 그네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이 사람들은 무조건 운명에 굴복하지는 않는다. 

입센의 <인형의 집>을 연상시키는 <계곡의 그늘>에서 가정제도의 억압성을 못견뎌하고 벗어나려는 여주인공 노라. 수동성을 탈피하고  능동적 여성상을 선택하려는 여주인공 이름이 입센의 작품과 동일하다는 점을 단순히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은 켈트의 유산으로서 노라가 마이클 대신 떠돌이와 길을 떠나는 것도 이를 나타낸다고 하겠다 농부의 아내인 노라는 과감히 문을 박차고 길을 떠난다. 그녀의 앞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다. 제아무리 떠돌이가 장밋빛 미래를 주절거려도. 집을 나서는 순간 노라는 가정이 주는 안전과 보호막을 상실하고 세찬 풍파에 직면해야 한다. 헐벗고 굶주리며 길바닥에서 새우잠을 자야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주체를 상실하고 피동적인 삶은 사는 대신 그녀는 힘겹더라도 자아를 지키며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John Millington Synge 아일랜드의 극작가.
아일랜드의 문예부흥을 주도했으며, 애런 제도와 아일랜드 서부 해안지방의 소박한 삶을 세련된 필체로 형상화한 탁월한 작가이다. 더블린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언어학을 공부한 싱은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893~97년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서 음악공부를 계속했다. 그러나 1899년경 파리에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만난 후 문학비평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예이츠는 싱에게 아일랜드 문예부흥을 위해 온 힘을 쏟도록 격려하는 한편, 더이상 학업을 계속하지 말고 애런 제도로 가서 그곳 사람들의 삶에서 문학의 소재를 구하라고 충고했다.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림프 육종(肉腫)이 발병하여 투병생활을 하던 싱은 1899~1902년에 매년 일정 기간을 애런 제도에서 지내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말을 배우며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을 〈애런 제도 The Aran Islands〉(1907)에 기록했다. 그리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단막극 〈골짜기의 그림자 The Shadow of the Glen〉(1903 초연)와 〈바다로 간 기사들 Riders to the Sea〉(1904)을 썼다. 1905년에는 첫번째 3막극 〈성자의 샘 The Well of the Saints〉을 발표했다.
아일랜드 서부 해안의 혼잡한 지역을 여행하면서 받은 느낌을 토대로 가장 유명한 희곡인 〈서쪽 나라에서 온 멋쟁이 The Playboy of the Western World〉(1907)를 썼다. 어느 이상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소름끼치는 희곡은 한 시골 소년이 자기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떠벌리면서 영웅 대접을 받지만, 죽었다던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서 나타나자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자랑하기 좋아하는 아일랜드인의 심리와 악당을 미화하는 경향을 꼬집은 이 작품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관객들은 더블린의 애비 극장에서 이 연극이 초연될 때 소란을 벌였다. 1911년 미국 뉴욕에서 이 연극이 초연될 때에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은 거센 항의를 했으며, 보스턴과 필라델피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싱은 죽기 전까지 애비 극장과 계속 관계를 유지했고, 사람들도 점차 그의 연극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완성작 〈슬픔에 빠진 데어드레 Deirdre of the Sorrows〉는 켈트족의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사랑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1910년 애비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싱의 전기로는 D. H. 그린과 E. 스티븐스가 쓴 〈존 밀링턴 싱 1871~1909 John Millington Synge 1871~1909〉(1959)이 가장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