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몰리에르 '위선자 따르뛰프'

clint 2018. 5. 19. 10:52

 

 

 

 

 

 

오르공에겐 다미스와 마리안느라는 두 아이가 있는데 젊은 엘미르와 재혼했다. 오르공과 그의 어머니 페르넬 부인과 타르튀프라는 인물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모두들 행복했을 것이다. 이 두 모자 타르튀프를 성인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미스, 마리안느, 엘미르, 클레앙트(엘미르의 남동생), 그리고 하녀인 도리느가 보기에는 위선자이고 그의 ' 신성모독적이고 사기꾼같은 찌푸린 상판대기'는 진실한 독신자의 미덕과는 썩 거리가 멀었다. 그야 어쨌든 오르공은 발레르와 약혼하다시피 되어있는 딸 마리안느를 타르튀프에게 주려고 결심하고 있다. 엘미르는 타르튀프에게 이결혼을 단념시키려고 나섬으로써 타르튀프의 엉큼한과 오르공의 옹고집을 알아 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튀프는 단 둘이 마주 대하게 된 것을 이용하여 이 젊은 부인에게 알쏭달쏭한 말로 조심스럽게 넌지시 사랑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다미스가 뜻밖에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아버지에게 타르튀프의 그러한 협잡을 알렸지만 오르공은 아들의 말을 곧이 들지 않을뿐더러 그를 쫓아내고 타르튀프에게 자기의 전 재산을 증여한다. 타르튀프가 또 다시 그런 짓거리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그는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번에는 엘미르가 남편을 옆에 숨겨놓고 교묘하게 꼬리를 치는데에 그만 타르튀프가 걸려들어 버린 것이다. 숨어 있던 오르공은 격분하여 불쑥 나타나 이 사기꾼을 쫓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타르튀프는 주인같은 말투로 응수한다. 증여받은 이상이 집은 자기 집일뿐만 아니라 오르공의 처지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적 문서를 전에 자기에게 맡겼는데 그것을 자기는 쥐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 우리가 협잡을 미워하시는 임금님 아래 살고 있지 않는다면 ' 오르공은 파멸하고 말았으리라. 타르튀프가 오르공을 체포케 하려고 데리러 간 포리는 이제까지 참을성 있게 타르튀프의 뒤를 밟아 오던 사람이었는데 이 타르튀프야 말로 사직 당국에서 찾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느닷없이 이 악당의 덜미를 잡는다. 왕은 과거의 충성을 생각하여 오르공을 용서한다. 마리안느는 당연히 발레르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몰리에르는 왕의 지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르튀프」의 공연의 권리를 얻기 위해 5년간이나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몰리에르의 적들은 그가 거짓 믿음과 진짜 신앙을 같은 공격속에 포함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어느 광신적인 사제는 작자에 대해서 ' 지옥의 불에 앞서 우선 분형 (焚刑) '을 요구했다. 몰리에르는 어느 특정의 협회, 즉' 성체(聖體)협회 의 활동을 공격한 것이 확실한 것 같은데 그 회원들은 개인의 생활을 정탐하고 있었던 것이다.

 

1664년, 베르사유 궁전의 축제에서 <사기꾼>이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보수적-종교적 세력의 압력에 의해 루이 14세는 이 극을 금지시킨다. 1667년, 몰리에르는 이 극을 다른 이름으로 팔레-르와얄에서 공연하였지만, 첫 공연 이후 다시 금지되고 만다. 이제 파리의 대주교는 이 극을 읽기만 하는 자도 파문하겠다고 협박했다. 1669년의 개작본에서야 비로소 왕의 공연허가가 주어졌고, 그 후 커다란 성공을 하게 된다. 초판에서는 따르뛰프가 성직자였지만, 개작본에서는 몰락한 귀족으로 바뀌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양심의 감독자(directeur de conscience)라는, 신앙과 생활방식에 대한 조언자들이 높은 존경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몰리에르는 바로 이런 자들을 풍자하고 있다. 경건함의 명목 하에 일어나는 기만적인 행위들을 탄핵하고 있는 것이다.

 

 

 

 

따르뛰프는 예수회의 행동지침론(Kauikstik)이나 신비적 신학에 능통한 자로서,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좇아 충실한 가장이었던 오르공에게 영향을 미쳐 그의 재산을 빼앗고 그의 딸과 결혼하려 하고, 심지어 그의 아내에게 접근하기까지 한다. 오르공의 아내가 결국 계책을 써서 오르공이 숨어있는 장소에서 따르뛰프로 하여금 자신에게 육체적으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오르공은 눈을 뜨게 되지만, 이미 그의 재산은 따르뛰프에게 넘어간 상태다. 거의 시민비극으로 끝날 뻔한 무대의 사건은 왕의 개입을 통해 따르뛰프의 정체가 폭로됨으로써 해피 엔드로 끝난다. 여기서 왕은 (Deux ex machina)의 기능을 하는 것인데, 이런 결말은 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이 극에서 오르공의 처남인 끌레앙뜨는 이성종교의 이상을 체현하고 있다. 집중된 줄거리와 인물묘사, 운문의 기술 등의 면에서 이 작품은 몰리에르 예술의 정점을 이룬다고 평가되고 있다. 3막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는 따르뛰프의 성격은 등장하자마자 하는 몇마디의 말을 통해 이미 탁월하게 묘사된다. 다른 인물들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런 장점들은 이 극이 오늘날까지 자주 공연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위선자>란 부제를 가진 이 5막의 운문희극은 거짓 신앙을 풍자한 내용으로 인해 그 공개상연을 위해 5년 동안 투쟁해야 할 만큼 문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작가는 여기서 인간의 악덕과 당시의 파리 사교계를 활보하고 다녔던 위선자들을 가차 없이 풍자하고, 타르튀프와 같은 위선자가 없어질 때 프랑스가 더욱 번영하리라는 점과, 국왕이 그들의 도움 없이도 진실과 허위를 식별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어쨌든 이 작품으로 인해<타르튀프>의 이름은 현재에도<위선자>를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5년간 공개상연이 금지된 문제작 이 작품은 1664년 국왕 루이 14세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개최한 대제전 때에 처음으로 공연되었다. 악덕 종교가 위선자를 신랄하게 꼬집은 이 작품은 종교인들의 반감을 사서 상연이 금지되었다. 그 후부터 몰리에르는 국왕에게 계속 탄원했으나 1669년이 되어서야 공개상연이 정식으로 허락되었다. 이 작품은 통렬한 풍자극으로서 몰리에르의 걸작 중의 하나이며 그 공연은 전대미문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전의 희극이 줄거리나 대사, 그리고 몸짓 등 외부적인 수단으로 관객들에게 호소하려 했던 반면, 몰리에르는 성격에 모든 바탕을 두고 인간의 약점을 폭로함으로써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려 했다. 성격의 묘사, 이것이 그가 추구했던 목적이었고 인간정신의 이면과 동기, 그리고 원동력을 심리적 리얼리즘으로 포착함으로써 당대 인간들의 평범함과 복잡함을 그려냈으며,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강한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타르튀프에서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뿐만 아니라, 숨겨진 악습과 내면세계를 통해 성직자의 타락상을 묘사하고 있다. 타르튀프의 위선적인 모습은 그의 등장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있으면 도움 받은 돈을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러 갔다고 전하시오.” 라는 대사에서 오르공 가의 주인 행세를 하는 탐욕스러움이 엿보인다. 처음 오르공 가에 왔을 때의 비렁뱅이에서 육욕(肉慾)을 감추고 신앙심이 두터운 종교인처럼 행동하는 모습은 다음 장면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은 하녀에게, “제발, 그 가슴을 가려주시오. 그런 것에 영혼은 상처받고, 사악한 생각들이 꼬리를 문답니다.” 라고 말하면서 손수건을 건네주는 모습에 관객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작품에는 비극작가인 코르네유나 장 라신의 작품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번쩍인다.

두 비극작가가 주로 인간의 고뇌와 격정을 묘사한 반면, 몰리에르는 인간과 사회의 보편적인 악과 약점을 비판했다.

그는 관객이나 독자들을 웃기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 그는 이러한 풍속의 비판적 묘사를 통해서 인간을 개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수많은 풍속을 풍자한 작가 가운데 몰리에르만이 뚜렷하게 그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 이유도 그의 내부에 있는 강한 도덕적 욕구 때문이다.
그러나 군주제도나 교회의 권위, 그리고 귀족의 특권 등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완화하는 보수주의적인 측면도 있었다. 자연애 그는 인간의 본능을 바른 것으로 믿었으며 라블레나 몽테뉴와 같이 자연은 선하며 또한 만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불행과 웃음거리를 동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젊은이들을 편들고 이를 막는 어른들을 언제나 곯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본능에 한계를 두어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이 그의 작품들로 하여금 그의 시대와 인간을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도록 하고, 이 총체적인 비전을 통해 한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는 독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