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후지따 아사야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

clint 2018. 5. 19. 15:03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한일합작공연, 종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거짓말쟁이 영자>를 무대에 올렸으며 거창 국제 연극제 및 과천마당극 초청공연과 일본 쿠마모토 "보코와 보코 페스티발"에 초청공연 되었다. 현재 연극계의 추세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에 대한 재조명, 여성의 삶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성으로 풀어보는 현실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면, 이들 세 조류가 만나서 하나의 작품을 이룬 것이 바로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일제시대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남성들의 집단 히스테리인 전쟁 속에서 군인들의 성적 노리개였던 영자가 해방과 함께 고향에 돌아와서 거짓말로 일생을 지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공연이다. 마당극처럼 꾸며진 무대에서 남녀 고수들의 도움을 받아 영자의 일생을 연기하는 김은영의 변신이 폭은 크지 않지만 각 장면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그대로 객석으로 전달된다. 이 작품이 일본 연극인에 의해 씌어지고 연출되어 광복 50년이 되는 해 공연되었다는 것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1995년을 마감하면서 연극계가 위와 같은 공연들로 제기하는 것은 시대에 함몰되지 않고 그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의식과 평등한 사회에 대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과거의 슬픔과 상처를 보아야 하는지 치유의 방법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과제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 모두는 다루는 내용들에 어울리는 표현 양식을 탐색하고 있고, 공연 요소들도 골고루 수준급이었다는 점에서 한해 연극계를 대표할 만한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세대인 한 일본지식인의 눈에 보인 과거 일제의 죄상을 형상화하면서, 잘못을 반성하고 아픔의 역사속에서 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여주겠다는 일본연극인 후지타아사야가 연출과 극본을 담당한 의의는 평가할 만한데도 말이다. 80년대의 민중극, 혹은 아마츄어극단의 실험극을 연상시키는 무대에는 올 상반기 한동안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정신대 문제 관련기사들이 확대 복사되어 배경으로 세워져 있고 양쪽 끝에 각각 북 꽹과리와 장구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천정에 매달아 아래로 늘어뜨린 밧줄들은 영자의 삶의 질곡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 암울하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노파가 되어 버린 영자는 5분 가량에 걸쳐 끈질기게 과거를 부정한다.

송씨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일본에 가본 적도 없다며, 줄기차게 아니여몰라를 외치던 그녀의 현재는 조명이 한번 꺼졌다 켜지고 나서 과거로 소급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이 가속화하던 때, 돈도 벌고 흰 쌀밥을 많이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아버지 친구 송씨의 말에 14살의 영자는 일본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후송되기 전날 밤 영자는 조선 출신의 일본군으로부터 자신이 사실상 종군위안부로 끌려 왔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이 그랬듯이 역시 절대적인 순결관을 가지고 있던 영자는, 종군위안부로 생활하면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일본군에게 잔혹한 폭행을 당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돌아온 고향에서 살아가기 위해 영자는 과거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평생을 혼자 살며 종군위안부였던 과거를 숨겨온 그녀에게 어느 날 일본인 기자가 찾아와 취재를 부탁하면서 비로소 영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종군위안부 문제가 민간사업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그러한 문제가 존재했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려는 세력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게 된 것이다. 정신대 문제가 한창 사회의 주요 이슈로 거론되던 때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의 익명성 때문에 보상 운동이 잘 진척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결국 차별적인 성논리에 따라 여성 순결을 지나치게 강조해온 사회의 모순구조는 그들이 공개적으로 상처를 드러낼 수 없게 함으로써 난치병을 앓도록 종용했던 것이다.

종군위안부라는 과거가 밝혀짐에 따른 주위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영자는 정신대 문제를 알려내기로 결심하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실망에 빠진 영자에게 일본에서 잡지를 봤다며 종군위안부 동료였던 하나꼬가 찾아온다. 고향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있는 그녀와 술을 들이켜며 과거를 회상하던 영자는, ‘그리운 추억도 없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하고 보상받지 못한 역사와 청산하지 못한 오류를 상기시킨다. 정신대 문제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운동을 하라고 찾아온 송씨를 내쫓으며 극은 수미쌍관으로 완결을 향한다. 자신도 피해자라며 보상운동을 통한 경제적 복권을 꿈꾸는 송씨를 국적 불명의 마쯔모또- 창씨개명 당시의 성-라고 비난하며 몰아낸 후, 영자는 정화수를 떠놓고 빌다가 살풀이굿을 하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격렬한 장단에 맞추어 신들린 무녀처럼, 그러나 결연한 표정으로 강단있게 추는 그 춤 속에서 더 이상 한스러움에만 그치지는 않으려 하는 제작진의 의도가 엿보였다.

 
 
 


예술은 종종 사실들을 편집, 표현해 내는 매개다. 그러나 영화건, 연극이건, 음악이건, 미술이건 간에 대부분 그 결론에 있어서 매개적 한계성을 극복해 내지는 못하고 있다. 묘사나 미화, 때론 행동을 위한 결론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거짓말쟁이 여자 영자’는, 한 종군위안부의 삶을 다소 진부하리만큼 전형적 정통적으로 구성하면서 섹스 코메디와 고전적 번안극이 넘치는 대학로의 한 모퉁이에서 조심스럽게 우리 역사의 상흔을 들춰 내 보여 주고 있다하겠다. 그것이 바로, 현란한 조명이나 배경음악, 독특하고 거창한 무대장치, 유명배우의 연기 등 감각적인 세련된 볼거리 들을거리에 인색한 이 연극이 볼만한 이유이다. 그리고 우리의 몫-실천을 위한 재고는 가슴에 묵직하게 박힌 극의 주제와 함께 앞으로 계속해서 구체화해 나가야 할 문제이다.

 

 

 

후지타 아사야

와세다대학 연극과를 졸업한 후 2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한 일본의 연극계 원로다. 일본연출가협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일본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사토 대표는 우장춘 박사 일대기 등 친한 공연을 다수 제작해 온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