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장실'은 1976년 劇作家 시미즈 쿠니오에 의해 극단 木冬社(모쿠토샤)를 창단 그 후, 극단 木冬社의 두 번째 작품이며 1977년에 공연됨. 일본을 대표하는 시부야 쟌쟌 소극장에서 초연. 문학성과 환상성, 그리고 네 명의 여배우들이 등장, 배우 각자의 개성을 잘 펼칠 수 있는 작품으로서 호평 받음.

안톤 체홉의 「갈매기」공연이 올려지고 있는 극장의 어느 분장실.
배우C는 니나역을 맡은 배우다. 그녀는 무대에 오르기 전 분장하고
발음, 대사 연습을 하면서 긴장을 풀고 있다.
태평양 전쟁 이전과 이후에 죽은 두 여배우 A와 B는 세파에 진물러진
상처를 안고 분장실에 머물고 있는 귀신들이다.
그들은 「갈매기」의 나나역이나 「멕베스」의 멕베스 부인역,
미요시 쥬로(일본 극작가)의 「잘리는 남자, 센터」등 주역을 해보지 못하고
귀족A, 전령2, 문지기3 등 조연 배우만 하다가 죽었는데 여배우의 꿈 때문에
배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분장실에 나타난다.
자기들이 꿈꿨던 주역들의 대사를 줄줄 외우고 연습도 하고
곧 무대에 오를 것 처럼 분장까지 해가며 한을 달래고 있다.
한편, 배우D는 「갈매기」에서 프롬터 역을 맡았으나 역할을 해보지도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분장실에 나타난다.
배우C가 맡고 있는 니나역을 하고 싶어하는 배우D는 배우C에게 배역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다. 니나역을 제대로 소화해 내지 못해 화가 나서
분장실에 들어온 배우C는 배우D의 억지에 아연실색하여 배우D의 머리를
맥주병으로 후려친다. 배우C 또한 남들이 원하는 배역을 얻었지만 만족할만큼
배역을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다. 배우D는 결국 죽은 귀신이 되어 나타나고
영원히 오지 않을 등장을 기다리는 배우A, B, D는 분장실에서
체홉의 「세자매」연습한다. 슬픈 듯 사랑스런 모습으로 그들이 못다한
배역들을 연습하고 분장실은 긴밤 속에 묻힌다

서연호와 오태석의 작품 대담.
- 대부분 작가의 작품을 오 선생 형식으로 연출해서 공연한 건데, 왜 느닷없이 <분장실>을 하게 됐어요?
오 : <잃어버린 강>도 그렇고 <코소보 그리고 유랑>도 그렇고, 근간의 작품들이 다 사내들만 많이 나오는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극단 여자 단원들이 고생을 많이 해요. 의상 만들랴, 소품 만들랴, 밤샘을 밥 먹듯이 해. 연습 막판에는 교대로 한 보름은 밤을 새요. 작업 시간에 쫓겨서. 그래서 한 번 보답을 해야 되겠는데, '여자들만 나오는 작품 뭐 없을까' 그랬더니 마침 저희 극단에서 기획하는 기무라 노리코가 '여자 넷이 나오는 좋은 작품이 있어요.' 그래요. 귀신이 둘 나오고 하나는 살아 있다가 귀신 되고 하는 이야기라고. 귀신이란다. 귀신이라면 내가 친하잖아. 빨리 하자. 후다닥 번역을 해왔는데 이게 전부 일본말이에요.
- 번역대본을 보면 사실 오 선생 터치가 많이 느껴져요. 실제 작품을 많이 바꾸진 않으셨습니까?
오 : 그건 아니고. 원작의 뼈대를 존중해줬죠. 다만 표현을 우리말로 바꾼 것은 사실이에요. 일본식 어법으로 번역된 대사를 그냥 쓸 수는 없잖아요. 연출은 내 식이고. 그런데, 원작을 존중해주느라고, 100% 내 식으로 가지는 못했어요. 속된 말로 하자면, 절반쯤 까뒤집다가 그 상태에서 덮었죠.

- 맨 마지막 장면, 귀신이 된 여배우 셋이 <세 자매>를 할 적에, 다른 귀신 배우들하고 무대 감독, 연출자가 다 나와서 공연을 준비하는 장면도 원작에 있는 장면인가요?
오 : 원작에서는 거울의 푸르스름한 빛이 명멸하다가 끝이죠.
- 맨 앞 장면에 귀신 배우들이 나오는 장면도 사실은 없는 장면이죠?
오 : 뒷 장면하고 통하게 하려니까 무리한 건데, 첫 장면은 지문으로 간단히 처리해 놓기는 했어요. 구체적으로는 없어요.
- 그렇다면 여러 귀신들이 나오는 맨 처음과 맨 뒤의 장면은 오 선생님의 창작에 가깝다는 이야기인데, 원래 시미즈 쿠니오의 <분장실> 자체가 체홉의 <백조의 노래>에 창조적으로 살을 붙인 작품이거든요. 이 세 작품 사이의 상관관계를 연구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오 선생의 작품연구하고 관계가 있는데, 이 작품은 손톤 와일더의 <우리 읍내>식으로 오 선생이 자기 문법을 가지고 거의 다시 만들다시피 한 <분장실> 이거든. 번안, 재창조에 가깝단 말이죠. 이 연구를 하려면 우선 일본 원작을 정확하게 번역해야 돼요. 시미즈 쿠니오의 원작이 체홉의 작품하고 어떤 관계에서 출발했는지 그건 일본에 기록이 있어요. 그 작가가 왜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기록이 있다고. 그런데 이것이 오태석 선생에게 와서 이렇게 변했다. 이게 이렇게 변하게 된 한국의 기질이 뭐냐. 이걸 파고들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가 되죠. 일본연극은 정밀하게 하려는 노력은 있는 대신 다이내믹한 힘이 없습니다. 막 폭발하고 몰아치는 힘이 없다고. 오 선생 <분장실>에서 좋았던 점은 그 다이내미즘 이거든요. 잠재되어 있던 힘이 막 분출해 나오고.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재창조했는지 그것을 연구하면 좋은 논문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분장실>을 관람한 일본 평론가들이 '야, 이게 어떻게 <분장실>이냐. 한국의 기질은 이런 것이구나. 이건 일본 작가의 작품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건 내가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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