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왕따 총잡이,스닉키

고퍼걸치 마을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은 '스닉키 휫치'가 죽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두 중심 축은 스닉키와 고퍼걸치 마을 사람들이다. 스닉키 휫치가 완전무결한 고퍼걸치에서 단 하나의 오점이 된 이유는 그가 서부의 법칙(예컨대 고퍼걸치 마을 사람들이 정해 놓은 규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퍼걸치 마을 사람들은 스닉키가 못마땅하다 못해 그가 떠나거나 죽기를 바라고, 스닉키는 남들이 뭐라든 고퍼걸치에서 살고 싶어한다. 마을 사람들과 스닉키 사이의 이 갈등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비겁한 겁쟁이가 되기도 하고, 마을의 권력자가 되기도 하는 스닉키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진정한 자아 찾기에 실패하고 죽음에 이르는 스닉키를 통해 우리들이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삶을 살려면, 어떠한 '나' (내가 생각하는 '나' 또는 남이 생각하는 '나')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된다.

작품줄거리
제1막
서부의 고퍼걸치(실제로 있지는 않았지만, 있을법한 환상과 함께, 전설과 이야기 속에 싸여있는 전설 속의 거리)에 서부의 법칙을 모르는 동부에서 스닉키 휫치가 온다. 그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아무도 모른다. 스닉키의 망나니 같은 행동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 모두는 그를 싫어한다. 그러나 스닉키는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없이 대책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그가 빨리 이 고퍼걸치를 떠나거나 죽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닉키는 닥버치 의사의 장난(?)으로 죽음 아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마을에선 장례식 축제(?)가 벌어진다. 블랙우드 목사의 진행으로 행해진 이 장례식은 엄숙하기보다는 장례식분위기를 내는 축제 같다.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일어난다. 갑자기 낡은 관 뚜껑이 열리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제2막
죽었다가 살아난 사나이..죽음의 공포를 잊은 사나이 스닉키 휫치!! 이제 그에겐 무서울 것이 없다.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신으로 거듭 태어난 그에게 사람들은 이제 공포심을 느낀다. 그러나 스닉키는 지금 자기의 모습이 싫다. 과거의 겁쟁이였던 자신은 남의 눈엣가시이긴 하였지만, 마음도 편했고 잠도 잘 잘 수 있었는데, 지금의 스닉키는 항상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제3막
스닉키는 서부의 거리 고퍼걸치에서 최고의 총잡이자,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스닉키는 과거보다 더 불행하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이 고퍼걸치에서 그가 없어져 버리길 더욱 간절히 바라게된다. 계속되는 스닉키의 횡포에 지친 사람들은 스닉키를 살해할 계획 -서부의 법칙에선 절대 용납할 수조차 없는 뒤에서 총으로 쏴 죽이기- 을 세운다. 이때 닥버치가 나타나 스닉키의 "죽었다, 살아난 사연" 의 의문을 풀어준다. 고퍼걸치에는 다시 한번 혼란이 밀려오게 되는데......!!


제임스 로젠버그 (James L. Rosenberg)
로젠버그는 미국 카네기 교육재단의 연극학 교수이며, 작가이다. 희곡으로「스닉키 휫치의 죽음」이 그의 대표작이며, 저서로는 자작시집 몇 편과 번역시「가웨인 경과 녹색의 기사」가 있고, 그 외 몰리에르, 막스 프리쉬, 귄터 그라스, 탱크레드 도스트의 번역 희곡집 및 비평 논문, 그리고 연극의 이론에 관하여 「연극 예술 (The Art of the Theatre )」,「연극의 내용과 방법 (The Context and Craft of Drama)」을 뉴욕 대학교의 연극학 교수 로버트 코리간과 함께 저술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절대적인 무엇을 항상 <언제나 그러하다>라고 인식하고 있다. 마치 그것이<존재 그 자체>로<절대성>을 갖는다는 생각에 어떠한 의심조차 품을 새도 없이. 하지만 우리의 삶을 보자. 과연,<절대>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오해의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나를 통해 이루어진 각각의 집단들이 다시 나를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에게<절대성>이라는 이름을 아무런 의심 없이 부여하게되고 나는 다시 그 안에 갇혀 나올 수 없게 되버린다. 이 아이러니를 당신은 받아들이겠는가? 나는 이러한 <절대성>에게 웃음을 가진 무대를 통해 질문을 하려한다. 스닉키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던 것이 그가 그러했기 때문일까?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믿었던 것도 그가 그러했기 때문일까? 그가 마을에서 절대적 권력을 갖게 된 것도 그가 스스로 그러했기 때문일까? 또한 그가 죽게 된 것도 그에게 과연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가? 존재에 대한 평가와 이해는 <절대성>을 알아보지 못하고 막연히 절대적인 것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상대적 모습에 더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으로 스닉키가 죽고 난 마을에서 또다시 누가 스닉키가 될 것인지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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