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애이브 버러우스 '선인장 꽃'

clint 2018. 5. 17. 18:08

 

 

 

 

 

 

이 작품은 정석적으로 브로드웨이 취향의 코메디이다. 말하자면 심각한 내용을 다룬 진지한 연극이 아니라 피로한 비즈니스맨에게 하루저녁의 위안을 제공하는 도피주의(escapism)의 연극이다. 현실의 골치 아픈 문제들을 잠시 잊기 위해 극장에 온 관객들에게 부담없는 재미를 안겨주는 데서 그 사명이 끝나는 연극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류의 통속 오락극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감각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 오락극은 새로운 모랄이나 사상을 앞장서서 고취하는 연극은 아니지만 그것이 오락으로서의 생명을 지니기 위해서는 급속히 변화하는 시대의 사조를 바짝 쫒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영화나 TV의 통속 오락극들이 진부하고 전근대적인 기성관념에 젖어있기 때문에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면치 못한다. 종국에 가서는 기성관념에 타협하고 그 속에 안주해 버리지만 관객일반이 신봉하는 기성의 가치들이 아슬아슬하게 도전받는 인상을 주어야 긴장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극의 쥴리앙은, 뭇처녀들과 자유롭게 애정의 유희를 벌리고 토니는 상대가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실은 거짓이지만) 연애관계를 계속하고 스테파니는 쥴리앙의 바람기를 알면서도 그에게 이끌리는 등 이 극의 주요등장인물들은 기성의 윤리관에 비추어 보면 상당히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순수하고 보수적인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토니는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짓을 죄악이라고 믿는 순진한 처녀이고 쥴리앙은 함락되기 쉬운 플레이보이이며 스테파니는 현모양처 스타일의 규수에 지나지 않는다. 광란의 디스코, 마리화나 파티, 불륜의 남녀관계 등, 겉보기에 위태로운 사건들은 실상 일순간의 객기에 지나지 않을 뿐 이들은 끝에 가서는 관객 일반이 인정하는 소위 "정상" 상태로 돌아온다. 그리고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이 해피엔딩은 거짓이다. 관객일반은 거짓인줄 알면서도 이 거짓된 결말에 안심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들은 약 두시간을 단지 즐기고저 했을 뿐이지 그들의 신념이 공격받기를 원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다. 만일 이 거짓을 따지고 든다면 연극은 오락극의 차원을 넘어서서 진지한 연극으로 변하게 된다. 그러나 "선인장 꽃" 은 단순한 오락극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당장은 행복한 결말을 내리고 만다. 그러나, 오락극이면서도 "선인장 꽃" 이 상당히 감각적으로 동시대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 글속에 당연한 것으로 전제되어 있는 몇가지 태도 때문이다. 이혼,기혼남자의 외도, 여자의 순결을 절대시하지 않는 태도, 곧 자유연애 사상 등을 찬양하지는 않더라도 그것들을 죄악시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이미 기정사실화 되어있다. 관객들도 여기까지는 양해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관극이 가능하다. "선인장 꽃" 은 물론 현대 미국의 작품이고 이 작품속에 나타난 윤리관은 우리와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놀랄만큼 진보적인 작품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현실을 정직하게 놓고 보았을 때 이 작품이 과연 우리에게 급진적인 작품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우리의 현실은 그에 못지 않지만 우리의 사고와 의식과 교육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최근까지 엄청나게 위선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왔다. 겉으로는 대마초만 피워도 법에 정해진 처벌을 넘어서 직업까지 박탈 당하지만 속으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여류명사들이 촉광 낮은 만찬석상에 불려다니는 사회속에 우리는 살아왔다. 과연 "선인장 꽃" 을 보고 그 부도덕한 내용 때문에 충격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선인장 꽃"은, 미국의 통속극이다. 그러나 우리 쪽의 진지한 연극 보다도 그 시대감각은 앞서있다. 만일 우리 관객이 이 연극을 재미있게 볼 수 있다면 바로 그 동시대적 감각 때문이고 우리 관객의 시대감각도 겉으로야 비록 충. 효를 부르짖더라도 한쪽으로는 똑같이 동시대의 감각을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우리 사회에도 거짓과 위선이 물러가고 진실과 맞닥뜨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며 우리 쪽의 예술인(또는 오락인)들의 생각도 조금은 트여지기를 기대해 보자

이극의 주인공은 카사노바 뺨 치는 바람둥이 치과의사 쥴리앙이다. 그러나 그는 총각이다. 게다가 마음이 약하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 결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결혼을 해 버리면 마음놓고 바람을 피울 수 없다. 그래서 만나는 여자마다 미리 선수를 쳐서 자기는 아내와 세 아이를 둔 기혼남자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나이 어린 처녀인 토니에게는 정말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다. 이미 기혼자라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쥴리앙은 있지도 않은 아내와 이혼을 하기 위하여 자기의 노처녀 여비서인 스테파니에게 임시 아내역할을 해줄 것을 부탁하고 이어서 이혼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토니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토니는 비록 기혼남자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당돌한 여자이지만 동시에 남의 가정을 파괴해 가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정도의 배짱은 없는 순진한 처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어처구니 없는 과정 속에서 쥴리앙은 토니가 아니라 스테파니에게서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고 토니는 자기 또래의 옆방에 사는 작가 지망생인 남자 친구와 사랑에 빠지며 이들은 결국 제 짝을 만나 해피엔딩에 이른다. 결말은 위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지만 이 작품은 위의 작품과는 달리 실제로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않은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그 것도 비록 사실은 아니었으나 토니라는 앳된 처녀가 기혼 남자라고 믿었던 남자와 과감한 사랑의 행각을 벌인다. 습관성 바람둥이인 쥴리앙도 상식적인 눈으로 보아 지탄의 대상이 되며 기혼남자와 서슴없이 사랑에 빠져든 토니 역시 예사로운 처녀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이들이 막판에 가서 각자 자기네들에게 어울리는 제 짝을 찾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렸기 때문에 수습은 되었지만 이 같은 설정은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다.

 

 

 

 

 

<선인장 꽃(Cactus Flower)을 통하여 이미 국내에도 소개 된 바 있는 애이브 버러우스(Abe Burrows)는 1910년 뉴욕에서 출생하여 1988년 5월 사망할 때까지 수 십 편의 히트 뮤지컬 및 코메디의 작가로 혹은 연출가로 활약한 브로드웨이의 귀재로 알려져 있다. 192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뉴욕시립 대학 의예과에 진학 했으나, 병자들만 상대하며 살아간다는 건 소름 끼치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 2년만에 회계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1931년부터 3년간은 윌스트리트의 주식중개소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몇 년 동안은 아버지의 페인트 사업을 거들기도 했으나 그 것 마저 손을 떼고 단풍당밀회사의 세일즈맨으로 미국 각지를 여행했다. r그 동안 우연히 겪어 본 몇 번의 코메디 공연경험을 통해 유우머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 팔 수 있는 상품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웃음이란 특별한 감정적 반응입니다. 저는 유우머란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데 훌륭한 도구라고 믿습니다. 제 견해로는 관객으로부터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 울음을 유발시키는 것 보다 더 큰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재미난 얘기를 하면 당신은 웃게 되고 이어서 '하하' 하고 큰 소리가 나오게 되면 당신은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제가 당신의 신경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는 얘기입니다. 당신은 진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겁니다. '맞아. 당신 말이 맞아. 우리 마누라는 그렇다구!' 얻는 것이 있음과 동시에 웃음으로서 뭔가를 풀어놔 버리고 안정상태가 되는 것이죠. 또한 웃음이란 무엇인가를 남들과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1938년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한 방송 원고 작성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작시에도 손을 뻗쳐<Abe Burrow's Song Book>이란 앨범을 내 1948 ~ 49년 동안 라디오, TV는 물론 나이트클럽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의 브로드웨이 무대 데뷔는 1950년<아가씨와 건달들>로 이 작품은 대히트를 쳤고, 그 해의 최우수 뮤지컬로 뽑혀 뉴욕 드라마비평가 그룹상과 앙토아넷페리상(토니상의 전신)을 수상하였다. 뒤이어 그가 극작 혹은 연출에 손 댄 뮤지컬로는<Can - Can>,<First I mpression>,<Silk Stockings>,<How To Succed in Business Without Really Trying>등이 있는데 그 중<나도 출세할 수 있다.>는 1961년도의 퓰리쳐상과 뉴욕 드라마 비평가 그룹상을 획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