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외교관 르네 갈리마르가 국가 기밀을 누설한 반역죄로 복역 중인 감옥에서 자신이 20년 간 사랑했던 중국 첩자와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페라<나비부인>을 극 중 삽입하여 주제를 강화한다. 갈리마르는 서양 남자의 동양여자에 대한 그릇된 환상에 사로잡혀 릴리 송의 실체를 보지 못하다. 왜 갈리마르는 그가 남자인 것을 몰랐을까? 릴리 송은 이렇게 말한다. 첫째, 남자들은 항상 자신이 듣기 원하는 것만을 믿으려 한다. 둘째 서양 남자들의 동양 여성에 대한 환상.
M. butterfly는 데이빗 헨리 황 이라는 중국계 미국인이 쓴 희곡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씌여졌다고 한다.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푸치니의 오페라 'Madame Butterfly' (나비부인)의 줄거리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일본여성이 백인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당하고 자살하는 내용이다. 나비부인이라는 오페라를 약간 각색하고, 실제 있었던 희대의 사건이 합쳐져서 이토록 강렬한 희곡이 한편 탄생된 것이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란, 중국으로 파견된 프랑스 외교관이 중국인 여성과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봤더니 그 여성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던 것. 뿐만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스파이였던 것. 결국 비밀문서 노출사건으로 그들은 6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여장남자는 어떻게해서 20년이 넘도록 유지된 그 남자와의 관계에서 들키지 않을 수 있었던가..그 이면에는 서양인이 생각하는 동양여성에 대한 고정 선입관과 남자가 여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의식적인 지배욕이 크게 작용했던 것.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희곡에선 대략 이런 문장이 나온다. she says no, but her eyes say yes. 이거야말로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중 하나일 것이다.)
이 희곡은 무척 정교한 플롯을 가지고 있고, 나비부인 오페라가 대사 중간중간에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어서 극적 긴장감을 한층 고조시키며 무엇보다도 기막히게 충격적인 극적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끝까지 흥분상태 속에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특히 사건전개가 시간적 순서에 의존하는게 아니라, 결론 부분을 처음 시작할때 맛보기로 잠깐 언급했다가 과거 회상 장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뒷부분이 궁금해서라도 계속 읽게 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 희곡의 매력으로, 오리엔탈리즘 (서양인의 편견적 눈으로 바라본 동양)과 호모섹슈얼리티에 대한 기존 stereotype의 선입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이런 문제에 대해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는 데 있겠다. 과연 이 희곡에서 진짜 나비부인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을 끝까지 읽은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환상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적 대비효과를 통해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이 희곡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작가의 글
이 모든 일은 1986년 5월 식사를 하면서 예사롭게 대화를 나누다 시작되었다. 프랑스 외교관이 있었는데 그 애길 들어보았느냐고 어느 친구가 나에게 물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나중에 나는 뉴욕타임즈지가 그에 관해 보도한 두 단락짜리 기사를 찾아냈다.
버나드 보리스코트란 이 외교관은 그가 그의 "여자친구"의 벗은 몸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난 그녀가 매우 수줍음이 많은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부부간에도 서로에게 서로의 벗은 몸을 보이지 않는 것)이 중국의 관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것이 중국의 관습도 아니며 서양여성에 비해 아시아 여성들이 애인앞에서 더 수줍어 한다는 생각은 사실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보리스코트의 그같은 생각은 아시아 사람들을 절을 하며 얼굴을 붉히는 꽃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서양인들의 고정관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외교관은 한 인간과 사랑에 빠졌다기 보다는 일종의 정형화된 환상을 대상으로 그 환상에 빠져있었던 셈이라는 결론을 내리게됩니다. 나는 또한 이 중국 스파이가 불란서 외교관이 이같은 착각에 빠지도록 더욱 부추겼다는 점에서 다소곳하고 순종적인 동양여성의 이미지로 자신을 위장하여 이같은 이미지를 스파이로서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최대한 이용했을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흑인들이 "니그로"보다는 "흑인"이란 말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반적으로 "동양"이라는 말보다는 "아시아"란 표현을 선호합니다. 여기서 나는 "동양"이란 용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아시아를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곳으로 간주하거나 제국주의적 관점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희곡을 한 편 쓸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일부러 이 이야기에 대해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도큐멘타리 드라마를 쓰는 일에는 난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실화의 "진실"을 알게 되면 내 마음대로 상상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거든요. 여자 행세를 하는 중국남자에게 속아 넘어가는 불란서의 외교관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현실속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남성과 여성간에, 그리고 동양과 서양간에 존재하는 오해의 정도가 생각밖으로 매우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정도의 실수는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 합니다. 게이(동성연애자) 친구들이 내게 그들끼리 쓰는 "Rice Queen"이란 용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준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주로 아시아 남자를 좋아하는 백인 남자를 경멸하고 깎아내릴 때 쓰는 말이랍니다. 이같은 동성애 관계에서는 아시아인 남자는 실제로 거의 항상 "여자" 역할을 맡는 반면에 "Rice Queen"인 백인 남자는 문화적으로나 성적으로 거의 항상 "남자" 역할을 한다는군요. 이같은 패턴의 관계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려 최근까지도 게이인 아시아인 남자가 다른 게이 아시아인 남자와 사귀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로 생각되었답니다. 게이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백인 남자와 사귀던 아시아인 남자들간의 동성애적 관계는 레즈비안이라고 조롱을 받게 된다고 하는군요. 이와 비슷하게 이성애적 아시아인들은 오래전부터 이국적인 동양여성을 숭배하는 백인 남자를 "노랑 열병"("Yellow Fever")에 걸린 흰둥이라고 표현해왔습니다. 나는 "동양여자는 마누라감으로 최고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아시아 남자들 입에서 나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이같은 "신화"(근거없는 말)는 지난 십여년간 성행했던 우편주문으로 동양 여성을 서양 남성에게 소개하는 업자들에 의해 많이 남용되고 있습니다. 미국 남자들은 이제 말 잘 듣고 길이 잘 든 아시아 여성들의 사진이 담긴 캐탈로그를 우편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일뿐 요즈음에 어디 그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은 더 이상 달리 그런 예를 찾아 볼 필요도 없이 맨하탄의 케이블 텔레비젼의 광고를 보시면 "남자를 왕처럼 모시는 이국적인 동양의 매춘 여성들, 남성에게 즐거움을 주는 기술을 익힌 말 잘 듣는 여자들"을 광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광고들에서 우리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서로 뒤엉켜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카탈로그와 텔레비젼 광고는 서구의 여성들이 이제는 독립적이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여성들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서구 남성들은 이같은 서구 여성들을 거부하고 페미니즘 운동 이전의 길이 잘 든 게이샤 여자를 선호한다는 가정 아래 그같은 서양 남성들의 욕구에 호소하는 광고전략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에서 "착한" 아시아 여성은 백인 주인공을 섬기며 종종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하기도 하는 여성들입니다.
실베스타 스탈론의 [람보 2], 키미노의 [용의 해], 클라벨의 [쇼군], 반 러스터베이다의 [닌자] 등은 모두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종과 성의 문제가 제국주의와 뒤엉켜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민주의 사고방식과 일치하는 이같은 공식에 따르면 착한 원주민은 백인을 섬기는 자들이며 나쁜 원주민은 백인에게 반항하는 자들입니다. 순종적이고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자들이므로 착한 원주민들은 남자든 여자든 식민지에서는 여성적인 특징을 지니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궁가 딘은 그의 영국 주인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칩니다. 이같은 사례는 핑커톤에 대한 나비부인의 노예같은 충성심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중문화에서 널리 침투해 들어와 있는 이같은 성향이나 태도는 정책입안자들이 세상을 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착한 여자처럼 남성적인 서구사회에 복종하기를 원하는 것이 원주민 사회에 바람직한 것이라는 이같은 신식민지적 관념은 아시아나 인근 국가들의 외교정책의 핵심입니다. [엠 버터플라이]는 반미연극이며 서양이 동양을, 남성이 여성을 정형화된 틀속에 넣어 비하하는데 대한 통렬한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정 반대로 이 작품은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겹겹의 문화적, 성적 편견을 헤치고 나와 인간으로서 공통적이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를 대하면서 서로간의 우의를 다져나가자는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에 대한 신화, 서양에 대한 신화, 남성에 대한 신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신화 -- 우리의 의식은 이러한 신화들로 너무나도 가득차 있어서 나라간, 연인간의 진정한 접촉과 이해가 이루어지려면 영웅적인 노력이 필요할 지경입니다. 그같은 노력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잘못된 생각이 판을 치는 표피적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될것입니다. 이같은 세상이야말로 불란서 외교관과 중공의 스파이가 살기에 매우 편리하고 딱 맞는 세상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20년을 함께 살고도 이 불란서 외교관은 자신의 애인에 대해서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알아낸 것이 전혀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