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게오르그 뷔히너 '보이첵'

clint 2018. 5. 17. 07:16

 

 

 

 

 

프레드리히 요한 프란츠 보이첵. 육군 일등병 제 2연대 2대대 4중대 소총수.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있었다. 보이첵은 군대에서는 상사의 면도를 해주며, 의사의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량이나 감정의 상태를 점검당한다. 가난하기에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는, 시키는 대로 밖에 할 수 없는, 삶의 희망도 가질 수 없는 나약한 인간 보이첵.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신착란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어느 날, 한 가설무대에서 악대장은 보이첵과 함께 온 '마리'에게 눈독을 들이고… 의사들과 중대장은 나약하기만 한 보이첵을 향해 인간으로서 가치없음을 놀리기만 한다. 돈 때문에 악대장과 놀아날 수밖에 없는 '마리' 결국 보이첵은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 '마리'를 죽이고 자신도 죽음을 택하게 된다.

 

 

 

 

 

보이첵은 뷔히너의 유작인 미완성 시민비극으로 《보이체크》는 무대공연사상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자필 미완성본으로 전해진다. 가장 오래된 판본은 1836년에 씌어진 것으로 주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필본은 뷔히너의 사망 후 유고 속에 묻혀 있다가 오스트리아의 작가 프란초스(Karl Emil Franzos)에 의해 처음으로 해독되어 1879년 뷔히너 전집에 수록되었다. 실제적으로 일어난 형사사건을 극화한《보이체크》는 새로운 희곡 기법을 보여주어 표현주의적 드라마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 가난한 병사 보이체크는 주위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이다. 박사는 자신의 임상실험을 위해 보이체크에게 완두콩을 먹인다. 또한 장교의 기분에 의해 인생의 희노애락이 좌우되는 수동적인 인간이다. 그의 적은 세상이다. 그는 파멸에 이르기 전 이미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철저히 무력한 인간으로 변형된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보람과 근거는 마리이다. 마리가 장교에게 유혹당하자 그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연못에 투신한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환경에의해 무력한 인간은 파멸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보이첵, 그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분명 무엇인가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다. 권력과 지식계급에 몸과 마음을 지배당하고 조정당하는 보이첵은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해간다. 정신착란증세에 시달리던 보이첵은 결국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도 분열된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만든 문명속에 자멸해 간다. 외부적 강압에 억눌렸던 보이첵과는 또다르게 그것은 또다른 의미의 비극적인 완결편을 예고한다. 보이첵처럼 사람들은 어느 위에선가 군림하고 또 그 밑에 지배당하고 있다.
《보이체크》는1913년 뮌헨의 레지덴츠 극장(Residenz theater)에서 초연되었으며, 같은 해 베를린에서도 공연되었다

 

 

 

 

 

보이첵은 게오르그 뷔히너의 4개 작품 중 최후의 작품이자 미완성 희곡으로 알려져있다. 1820년대의 작품이지만 자신의 본성에 순종하거나 역사 및 사회의 강압적인 힘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저항하다 끝내 패배하고 마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난하고 배운것 없는 제 4계급의 인간 보이첵을 통해 작가는 그가 사랑하는 민중의 참 모습. 즉 자연인을 보여주는 한편, 착취의 핏발로 얼룩진 시뻘건 검은 도덕과 이상주의적 자유의지로 위장하는 시민 계급의 전형적인 대변인을 중대장과 의사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어떠한 건강한 자연인도 보이첵처럼 정신적으로 (중대장에의해) 육체적으로(의사에의해) 수탈당하면 어쩔 수 없이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인간이 범죄자가 된다고 할때 과연 그 책임이 당사자에게만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던지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Georg Buchner ; 1780―1824)는 24세도 채 못 채운 나이에 요절한 천재작가이다. 그는 1813년 10월 17일 헤센주(州)의 다름슈타트 근방에 있는 소도시 곳델라우에서 태어나 망명지인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1837년 2월 19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친 에른스트 뷔히너(Ernst Buchner)는 의사였으며, 빌헬름, 루이제를 비롯한 그의 동생들은 당대의 유능한 학자들이었다. 뷔히너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 1823년 3월 25일 학교의 축제일을 맞이하여 「과일을 먹을 때 주의하세요! Vorsicht bei Genusse des Ebstes!」라는 라틴어로 된 글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낭독한 이래, 1827년과 1828년의 크리스마스에는 부친 및 양친에게 헌시(獻詩)를 했는가 하면, 1830년 9월 29일 자신이 다니던 김나지움의 어느 공식 축제를 맞이하여 자살을 옹호하는 글「카토에 관한 연설 Rede uber Cato」을 썼고, 1831년 3월 30일에는 김나지움의 졸업식을 맞이하여 “메네니우스 아그리파 Menenius Agrippa」의 이름으로 산상(山上)에 모인 민중들이 로마로 돌아갈 것을 라틴어로 권유하는 글” 발표하기! 도 했다.

 

 


다름슈타트에서 김나지움을 마친 그는 1831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의학부에서 의학과 자연과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 시절에 그는 자신이 세(貰)를 들어 살던 집 주인 목사의 딸인 빌헬미네 얘글레(Wilhelmine (Minna) Jaegle)와 비밀리에 약혼을 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2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그는 1833년에는 다시 독일로 돌아와 기센대학에서 의학공부를 계속했는데, 이때 그는 역사와 철학도 아울러 공부했으며, 한편으로 정치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즉 그는 1834년에 '인권협회'를 창설했는가 하면, 헤센의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헤센 대공국의 반동적 사회상황에 저항하기도 했다.
1834년 7월에 뷔히너는 부츠바하 출신의 학교장 바이디히 F. L. Weidig와 함께 '헤센급전'이라는 독일 최초의 사회주의적 성향을 띤 전단을 작성하여 농민들에게 살포했다. (이 전단은 "오두막에 평화있으라, 호화저택 타도하자!"라는 선동성이 강한 구호로 시작된다.) 그러나 같은 해 8월에 이 전단 살포작업은 밀고(密告)당함으로써 중단되고, 뷔히너는 경찰에 의해 쫓기는 몸이 되었다. 그후 그는 기센을 떠나 다름슈타트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체포된 동료의 구출작업에 힘을 쏟았다. 이 무렵에, 더 정확히 말해 1835년 1월말에 그는 첫 희곡 작품 「당통의 죽음 Dantons Tod」의 집필작업을 시작하여 약 한달 후인 2월 말에 본 작품을 탈고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에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후 그는 더 이상 독일 땅에 머물지 못하고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슈트라스부르크로 도주하게 된다. 그후 동년 6월 13일에는 뷔히너에 대한 체포장이 나붙게 됨으로써 그는 더 이상 고국 땅을 밟을 수 없는 운명을 맞이 하게 되지만, 7월 말에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구츠코(Gutzkow)의 도움으로 고국에서 「당통의 죽음」이 출판된다. 같은! 해 5월에 중편소설 「렌츠 Lenz」의 구상에 들어가며, 10월에는 빅토르 유고(Victor Hugo)의 드라마 두 편―「Lucrece Borgia」,「Marie Tudor」―을 번역한다. 그 해 가을에 「렌츠」를 탈고(脫稿)하고 가을과 겨울 사이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 ‘돌잉어의 신경조직’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그 다음해 이 연구논문을 취리히 대학의 철학부에 박사학위 청구 논문으로 제출한다.
1836년에 들어 뷔히너는 세 차례― 4월 13일, 4월 20일, 5월 4일―에 걸쳐 슈트라스부르크의 자연역사협회에서 ‘물고기의 신경조직’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며, 초여름에는 「레옹세와 레나 Leonce und Lena」의 제1판 집필작업과 「보이첵 Woyzck」의 구상작업에 들어간다. 같은 해 9월에 그는 기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어 취리히 대학에서 학위를 받는다. 그리고 10월에는 거처를 취리히로 옮기고, 11월 초에 「두개골 신경에 관하여」라는 테마로 취리히 대학에서 시험강의를 하고, 겨울에는 「보이첵」의 집필을 완료한다. 1837년 1월 말에 그는 치명적인 병에 걸리고, 2월부터는 병석에 눕게 된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그의 의식은 혼미상태에 빠져들게 되며, 마침내 2월 19일에 뷔히너는 더 이상 깨어나지 못하고 영면(永眠)한다. 눈을 감은지 이틀만에 그는 시와 대학의 요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리히의 크라우트 가르텐이란 공동묘지에 묻힌다.

 

 

      

# 막 없는 구성, 27개의 장으로 구성됨.
# 가난한 이에게 덕성이 가능한가. 인간이 실험에 들게 된다면.
# 보이첵 : 염병할... 그 녀석이 여기 이렇게 서 있었지? 이렇게?
마리 : 하루가 천년 같이 길고 지구에 역사가 있는데 무수한 인간이 거기에 섰었겠죠. 차례차례로.
# 보이첵은 의사에 의해 콩만 먹는 실험에 쓰인다. 의사는 그가 담벼락에 노상방뇨한 것에 대해서 꾸중한다. "자연! 본능! 흥, 그걸 참지 못하다니!" 보이첵의 저당잡힌 본능들.
# 마리의 부정을 알고 난 후의 대사
보이첵 : ... 하느님, 저 태양을 폭발시켜 주소서. 이 세상이 온통 모든 계집년, 사내들, 짐승들 할 것 없이 색정에 어울려 돌아가게 폭발시켜 주소서. 그런 년놈들 대낮에도 그걸 하고, 파리새끼처럼 우리 손바닥 위에서도 그걸 하고, 계집년! 계집은 모두 화냥년! 하나, 둘. 저봐, 녀석이 년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있어. 꼭 내가 늘 하던 것처럼.
# 경제적인 죽음을 권하는 상점.
# 마리는 자신의 부정을 알고 성경을 읽으며 뉘우치려 하나....
# 18장 의사의 집 안마당에서의 의사의 말, 중요.
"만일 내가 이 고양이를 창밖으로 내던져 버린다면 원심력과 이 동물의 본능 사이에 어떤 관계가 생길 것인가?" : 주어진 것과 의지에 대한...
# 아이들의 노래로 노리는 효과.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로 노리는 효과.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면 시대를 앞서는 굉장한 작품이 되었을 듯. 사건다운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몰입되어 있지 않는 세련됨이 있다. 아라발의<기도>라는 작품을 생각나게 하는 대사들.
뷔히너의<당통의 죽음>도 문제 의식을 현대인의 복잡하고 분열된 내면으로 까지 닿게 하는 작품이다.
그의 시대가 1813-1837임을 생각하면 그가 시대를 앞서도 한참 앞선 천재라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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