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clint 2018. 5. 16. 17:28

 

 

 

 

원래 서간체의 소설인지라 각색자의 의도에 의해 작품 흐름이 많이 틀려진다고 할수 있다. 권재우 각색은 친구에게 쓰는 편지를 나레이터식으로 활용해서 나름 작가의 의도에 접근하려하였으나 다소 무거운듯한 흐름으로 보이며 반면 허성수 각색본은 편지 형식보다는 베르테르 (목소리)로 자신의 심정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특히 전밤적인 무거운 흐름을 의식한듯 아우드랑과 샤롯데의 재미있는 인물설정으로 작품에 새로운 활력을 주었으며 막바지의 몽환적인 사랑장면도 밋밋한 것 보다는 나은것 같다. 본인은 전체적으로 허성수 각색본이 공연하기에 좋을듯 하여 추천하며 실제 이 각색본은 희귀본인지라 권재우 각색일변도의 공연에 활력소가 될 듯 하다.

 

 

 

 

 

맑고 순수한 롯테 앞에서 열렬한 사랑의 전율에 휩싸여 버리는 베르테르. 하지만 순박한 마을 사람들 곁에서는 똑똑하고 상냥한 베르테르, 관객은 그 무리 사이에서 베르테르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한다. 자신이 모시는 여주인이자 이미 결혼까지 한 여인을 사랑하는 카인즈. 신분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용납되기 어려운, 카인즈의 애달픈 사랑은 베르테르의 조언(?)으로 더욱 무르익어 가고 그런 카인즈의 모습에서 베르테르 역시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 역시 우연히 롯테가 이미 알베르트와 정혼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심에 빠진다. 주체할 수 없는 열정에 그 곳을 떠나지만 1년 만에 다시 롯테 앞에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베르테르. 그리고 그런 베르테르의 사랑에, 흔들리지만 이젠 다른 남자의 아내이기에 부정한 마음이라는 괴로움까지 맛보지 않을 수 없는 롯테.

 

 

 

 

 

다시 돌아온 베르테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순식간에 타오른 사랑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한 마디도 내비치지 못한 아쉬운 사랑이기에,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랑이기에, 그 괴로움과 가슴 아픔이 쉬이 사그라들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어쩜 젊은 날 생동하는 열정에 대한 집착은 아닐까 하는…
낡고 투박하지만 푸근함이 베인, 순박하고 따뜻한 마을 사람들의 나날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그리고 나른한 피로가 묻은 어스름 저녁. 그네들의 떠들썩함과 웃음을 배경으로 서 있는 베르테르. 이러한 주변 상황으로 베르테르의 열정과 순수함, 애틋한 아픔의 그리움은 낭만이나 비련 대신 아릿한 슬픔과 촉촉한 이슬로 다가온다.
멋드러지게 만들어진 무대, 은은하고도 친근하게 젖셔오는 음악이나 깔끔한 무대에 고전적 분위기의 조명, 배우들의 진지하고도 즐거운 연기에 믿음과 즐거움이 배가된다. 현란함과 볼거리로 치장하기에 바쁜 대형뮤지컬에 비할 수 없는 순순한 아름다운과 세련미, 감동이 어우러진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괴테가 베츨라에서 친구의 약혼녀 샤를 롯데(Charlotte)를 사랑한 그 고뇌를 유부녀를 사랑하다 권총 자살한 친구 예루살렘의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쓴 일기체 소설이며 질풍 노도적 요소(Sturm und Drang), 자연을 향한 뜨거운 열정, 문학의 형식과 법칙에서 벗어난 자유 분방한 태도를 잘 반영한 작품이다. 소설 발표 당시 구 사회의 인습에서 벗어나려는 젊은이들에게 베르테르의 복장을 유행하게 만들었고 사회 내에서 삶의 출구를 찾지 못하던 젊은이들에게 모방 자살을 성행하게 하는 등 독일 사회에 충격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자살은 단순한 현실 도피나 약자의 행동이 아닌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순응이 아닌 자기 감정의 중요성을 자살을 통해 충격적으로 폭로한 기존 윤리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여지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하고 교양 있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난 괴테(1749∼1832)는 자신이 직접 겪지 않고는 한 줄도 쓸 수 없다고 말한다. 온갖 조건에서 축복 받은 천재라 불리는 괴테는 주위를 둘러싼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여자들과의 스캔들을 작품화하였는데, 25세 때 자신이 실제 열애했던 여자 샬롯데를 우리 인류의 가슴에 영원한 연인으로 올려놓고 있다.
절제나 현실적 타협을 거부하는 젊은이! 심지어 죄악도 탓할 수 없을 정도로 순정적이며 고상한 품성을 지닌 베르테르! 그의 정열은 무엇보다도 뜨거우며 그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상냥하고 슬기로운 한 여자, 롯데에게 바치는 고백은 이러하다.
"'그녀를 나에게서 멀리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나는 기도할 수 없네. 그녀가 나의 애인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네. 또 '그녀를 나에게 보내주시옵소서.'라고도 기도할 수 없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여자이기에……"
베르테르가 편지를 쓴다. 아름답고 슬프고 격정적인 주인공 베르테르는 고향을 떠나있는 동안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과정에서부터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자초지종을 친구인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인공 베르테르는 독일 고전주의 시대의 교양뿐만 아니라 문예 부흥기 시대의 자유분방함과 로맨틱한 분위기를 고루 갖추었다. 그는 인간 수업을 하기 위해 여행길에 올라 어느 마을에 안주해 있는 동안, 우연히 무도회에 참석하러 가는 젊은 처녀 롯데와 동행하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변함없이 마음씨 착한 여자이며, 그녀가 눈을 들어 바라보는 곳은 온갖 고통이 잠잠해지고 모든 불행이 자취를 감춘다네.'라고 고백하고 있다.
무도회에서 베르테르와 롯데의 화려하고 달콤한 춤이 이어지는데, 이미 롯데에겐 약혼자 알베르트가 있다.
롯데를 둘러싼 두 남자, 베르테르와 알베르트! 베르테르가 부유한 예술가적 기질인데 비해 알베르트는 성실한 생활인일 뿐더러 예의 바르고 우의가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베르테르의 고백은,  "롯데의 마음에 있는 남자들 중에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남자는 하나도 없네. 하지만 그녀가 약혼자에 대해 그처럼 다정하고 뜨거운 사랑을 나타내면서 이야기할 때…… 나는 모든 명예와 존엄을 박탈당하고 칼마저 빼앗긴 느낌은 어쩔 수 없어." 라고 슬픔을 토로하고 있고 알베르트야말로 베르테르에겐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 미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뛰어넘을 수도 없는 연적인 것이다. 베르테르는 틈틈이 들에 나가 풍경을 스케치하든지, 그늘에 앉아 호머의 작품을 읽는 것 외에는 한결같이 롯데의 집을 방문하던가 혹은 그녀와 동행하여 그녀의 아버지 집에 나들이하는 것을 되풀이된다.

 

 


그런 가운데 베르테르의 사랑의 열병과 운명적 비극은 더 심해진다. 어느 과부집 머슴이 여주인을 사모한 나머지 그 집을 쫓겨나게 되고, 그 뒤를 이어 들어간 새 머슴을 살해한 죄로 구속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베르테르는 그 머슴의 행태를 '밀려오는 정욕과 열렬한 동경이 참으로 순진하고 고매한 형태로 나타'났다며 공개적으로 찬미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냉대를 받게 된다. 더욱이 이성을 지니고 진실 되고 순박한 정신을 지닌 롯데가 약혼녀 시절이나 기혼녀가 된 이후에도 한결같이 베르테르를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 사랑의 밀도를 최고조로 올려놓고 있다.
베르테르는 끝내 죽음으로써 스스로의 불행을 해결하고자 한다. 자신의 친구이자 롯데의 남편인 알베르트가 집을 비운 사이, 롯데를 찾아가서 최초이며 최후로 그녀를 포옹하고 전율적인 입맞춤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튿날 베르테르는 심부름하는 아이에게 알베르트를 찾아가 권총을 빌려오라고 시킨다. 알베르트는 침착하게 아내 롯데에게 '이 아이에게 권총을 주시오.'라고 말하고, 롯데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꺼내 망연히 먼지를 턴 후 건네준다.그리하여 베르테르의 슬픔은 절정에 이른다.
"이것은 당신의 손을 거쳐왔습니다. 당신이 먼지를 털어 주셨습니다. 나는 권총에 수없이 입맞춤했습니다. 당신이 만지셨기에 말입니다. 하늘의 성신이신 당신이 나의 결심을 도와주십니다." 이런 고백과 함께 한 밤중에 총성이 울리고 베르테르의 슬픔은 우리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안식을 하게 된다. 결혼 유무를 떠나, 한 남자와 한 여자와의 사랑에 이토록 보석처럼 빛나는 영롱한 구절이 줄을 이룰 수 있을까. 전인적 인간, 전인적 교양을 추구했던 괴테의 예술관이, 평생토록 사랑의 순례자로 보냈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투명하게 드러나며 영원한 사랑의 멜로디로 울리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
1막
조용한 자연에 묻혀서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베르테르라는 청년 시인이 어느 아름다운 산간 마을에 찾아든다. 베르테르는 마을 무도회에서 멋진 춤솜씨를 가진 쾌활한 여인 롯데를 소개받게 되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운명적인 사랑을 예감하게 된다. 춤을 계기로 롯데와 친해진 베르테르는 그녀에게 약혼자 알베르트의 이야기를 듣고는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면서도 베르테르는 롯테를 만나고 싶은 일념 하나로 윤리적인 판단과 이성은 잠시 접어둔 채 그녀를 계속해서 방문하게 되고 그들은 어느새 감성이 통하는 다정한 사이로 발전한다.
한편 일 때문에 도시로 나가 있던 알베르트가 돌아오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만 깊은 실의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는 감정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롯데를 위해서 알베르트와 친분관계를 맺는다. 어느날 그 둘은 자살에 대한 찬반양론을 놓고 심한 논쟁을 벌이게 되고, 결과와 형식만을 중시하는 알베르트가 롯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안타까움만을 베르테르에게 안겨준다. 이쯤에 생일을 맞이한 베르테르에게 롯데가 선물로 책과 자신의 리본을 선물하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것을 사랑의 징표로 생각하고는 열정에 사로잡힌다.
알베르트와 롯데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베르테르는 여행을 떠날 결심을
하고는 롯데와 알베르트에게 작별을 고한다.
2막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에게 알베르트와 롯데가 결혼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리고 다시 만난 롯데는 왠지 그에게 차갑기만 하다. 그러나 서먹했던 관계도 잠시 뿐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다정한 사이가 되어 시와 음악으로 서로의 감성을 교류한다. 점차 감정의 자제력을 잃어가는 베르테르에게 한때 롯데를 사랑하다 미쳐버린 청년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베르테르는 그를 마음깊이 동정하는 동시에 자신의 처지에 새삼 한탄한다.
한편 베르테르에게 사랑의 고통을 호소하던 한 사나이가 사랑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베르테르는 그를 위해 변론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변론은 무의미하게 끝나버리고 결국 그 사나이는 사형선고를 받고만다. 낙심하여 더이상 살아갈 희망을 찾지못하는 그에게 남편의 충고를 들은 롯데가 만남을 자제할 것을 요청하게 되어 그를 절망에 빠트린다. 마지막으로 롯데를 찾아간 베르테르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감정을 억제하는 롯데는 작별인사만을 건넨다. 실의에 빠진 베르테르는 여행을 빙자하여 알베르트에게 호신용 권총을 빌리게 되고 그는 그 권총을 가지고 목숨을 끊고만다. 이승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세상에서 이루길 희망한다는 유언을 롯데에게 남긴 채.

 

 

 

 

 

괴테의 폭풍노도시대(暴風怒濤時代)의 대표작(代表作)일 뿐 아니라, 괴테의 명성을 일약 전세계에 떨치게 한 본작품은 그의 나이 25세 때인 1774년에 불과 일주일만에 완성한 것이었다. 괴테가 법학(法學) 공부를 마치고 1772년 봄 베슬러라는 도시의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법무실습(法務實習)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곳의 법관(法官) 부프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집 샬로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당시 불과 16세밖에 안되었고, 이미 외교관 케스트너의 약혼자(約婚者)였다. 괴테는 그 날씬하고 명랑(明朗)한 소녀 샬롯테에 비상한 애정을 느끼며 또 감정이 상통하여 그녀에 대한 정열(情熱)을 걷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때의 체험(體驗)은 제1권에서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루는 약혼자 케스트너의 부재중(不在中) 실지로 그 소녀에게 달려들어 강제 키스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괴테를 타이르고 자기로부터는 우정(友情)이상의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브레멘 공사관(公使館)의 서기관(書記官)이었던 케스트너도 점잖은 신사(紳士)였기 때문에 갈등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젊은 괴테의 내심(內心)의 타격은 컸으며 작품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상심한 편지(便紙)를 두 사람에게 남기고, 도망치다시피 고향으로 돌아와 버렸다. 이것이 말하자면 괴테의 제3의 도주(逃走)였다. 그런데 그후 반년쯤 지나서 역시 베슬러에서 브라운시바이크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있던 예루살렘이, 친구의 부인에게 연정(戀情)을 품고 자살(自殺)하였다는 소식(消息)을 들었다. 이것은 괴테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라이프찌히 대학(大學) 시절부터 괴테와는 잘 아는 사이였고, 상관과의 원만치 못한 성격(性格), 유부인(有夫人)에 대한 괴로운 관계등이 특히 괴테에게 영감을 준 것이다. 더우기 자살한 권총이 케스트너로부터 예루살렘한테 빌려준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이 괴테 자신의 체험(體驗)과 연결되어 여기 이 작품으로 결정(結晶)을 이룬 것이다. 이와같이 본 작품은 괴테가 매우 젊은 나이에 넘쳐흐르는 정열(情熱)과 생생한 체험, 그리고 어딘가 마신(魔神)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서 너무나 조급히 집필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비등했던 종교(宗敎) 내지 도덕적인 비난은 도외시한다 하더라도, 문학작품(文學作品)으로서의 미숙하고 표현상의 생경이나 조잡또한 병적(病的)인 증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한편 그런 측면이 아니고서는 과연 그와 같은 생명감(生命感)과 순수한 정열(情熱)이 또는 지나친 그 자존심과 고귀한 인간성(人間性)등이 이렇게까지 단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었을까 - 너무나 그 속에서 아름다운 자연(自然)의 묘사는 주인공의 심적(心的) 상태와 교묘하게 융합되어서 한 인간의 생명력(生命力)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로 직결되고 있음을 실감있게 보여준다. 이 점은 괴테의 일생의 문학(文學)을 통해서 특징을 이루고 있는 요소(要素)의 하나라고도 하겠지만 여기서는 특히 그 힘이 소박하게 분출되어 인감사회(人間社會)의 부질없는 법칙(法則)이나 제약과 충돌을 일으키고, 마침내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극(悲劇)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에게는 그것이 비극이 아니고 오히려 기쁨이요, 무한한 생명과의 합류(合流)를 의미했다. 인간의 고매한 정신(精神)을 억제하는 모든 것(사회적 체면이든지 남의 약혼자라는 제약)은 그에게 감옥이었고 심지어 자기 자신의 육신이 방해물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자살(自殺)로써만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論理)였던 것이다. - 이것은 그 당시의 괴테의 솔직한 심정이었겠지만, 괴테 자신은 이 작품으로써 자기의 그와 같은 정신적 압박을 정산(精算)하고(동시에 하나의 이정표(里程標)로서 남기고) 다시 새로운 단계(段階)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