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죠반니노 과레스끼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clint 2018. 5. 16. 16:21

 

1장
공산당 지도자인 읍장 삐뽀네와 그의 부하들에 의해 기습을 당한 신부 까밀로는 예수님께 하소연하고 있다. 읍장은 신부를 찾아와 그를 때렸다는 회개의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의 발길질을 곱게 받아들인다. 읍장은 아들의 세례를 신부에게 요구하고 아이의 이름때문에 약간의 말썽이 있었지만 세례는 무사히 이루어진다. 리베로 까밀로 레닌이라는 이름으로.
2장
암닭이 세례를 받고 십자가가 그려진 달걀을 낳았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그 기사의 진위를 놓고 마을 사람들 간에 논쟁이 심하다. 읍장이 신부의 조작이라고 비난하자 신부는 문제의 달걀을 가지고 나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설명하고는 깨뜨려 버린다.신부는 축구경기를 하자는 제의를 받아들인다.
3장
읍장은 가명으로 복권을 사 당첨되지만 사람들은 곧 읍장이 횡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읍장은 신부에게 돈을 대신 찾아줄 것을부탁하고 신부는 읍장의 사상성을 비난하지만 결국 부탁을 들어준다.

 

 


4장
심판의 불공정한 판장으로 축구경기에서 진 신부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성난 읍민들이 심판에게 몰려 들자 그들을 꾸짖고 돌려 보낸다. 신부는 조용히 심판을 불러 그가 읍장으로부터 이천 오백리라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욕을 퍼붓는다. 예수님은 신부가 이천 리라를 심판에게 준 것을 이미 알고 그의 행동을 꾸짖는다. 불량한 조카 폴로다가 신부를 찾아와 신부는 골머리를 앓는다. 폴로라는 말을 꾸며 읍장을 협박한다.

5장
변장을 하고 링에 올라가 읍장을 때려 눕힌 신부는 자축하려고 암닭을 잡으려고 하지만 암닭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법정에 선 신부와 읍장, 폴로다. 폴로다의 증언으로 읍장의 범행이 확실해지는 순간 신부가 그 시간에 읍장이 자신과 함께 있었다고 거짓증언을 한다. 기도하면서.
6장
읍장의 소련제 칼라 텔레비젼 때문에 신부의 보잘 것 없는 영사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다. 폭풍우로 전기가 끊기자 신부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지만 그 순간 벼락이 종탑을 부순다. 그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떠드는 읍장. 그러나 곧 인민의 집도 불타고 만다. 하나님께 다시 감사드리는 신부에게 폭탄을 장치한 것이 하나님 섭리냐고 예수님이 따진다.

 

 


7장
읍장은 미국의 구호식량인 통조림을 받지 말 것을 읍민에게 호소한다. 신부와 언쟁을 벌이던 읍장과 그의 부하들은 통조림을 받지 않고 돌아간다. 읍장은 부하들로부터 배신하여 통조림을 받아간 당원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받고 그를 처벌하러 간다.
8장
읍장은 통조림을 받아간 당원의 아들을 보고 그를 용서한다. 다이나마이트를 들고 성당에 온 읍장은 신부에게 아들의 병을 낫게 기도해 달라고 간청한다. 크리스마스, 거리에 눈이 내리고 기쁨에 들뜬 읍장은 아들의 병이 나았다며 신부를 찾아온다. 종소리와 함께 하늘에 영광과 땅에 축복을 위해 노래하는 소리가 들린다.

 

 

 

giovannino guareschi

 

이탈리아 중북구 시골 마을인 바싸에 돈 까밀로 신부와 예수 그리고 우직한 공산당 읍장 뻬뽀네가 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들 셋을 중심으로 바싸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이야기다. 하지만 이 유별난 작품 속에는 우리가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할 아픔과 눈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연극은 시종 거짓말도, 싸움도 잘하고 보통사람과 같이 욕심도 부리는 돈까밀로 신부와 읍장답지 않게 난폭하며, 어리석고, 성질급한 배뽀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하여 좌익과 우익의 대립, 실직과 파업의 문제, 정치와 종교의 대립, 자본가와 노동자의 투쟁등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사회전반에 걸쳐 나타난 문제점을 다루었으며 보반니노 과레스키 원작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각색한 작품이다.
  파시스트가 망한 직후를 배경으로 좌우의 대립이 생기면서 두 주인공 역시 당시 지도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게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잔인하거나 파괴적이지 않다.
  그 이유는 두 주인공은 많은 사회적 대립상황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에 차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수라는 특별한 존재가 이 연극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는 돈까밀로의 친절한 스승으로 돈까밀로에게 적절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교훈조가 아닌 따뜻한 미소와 깊은 사랑의 눈으로 충고한다. 이 눈길은 또한 빼뽀네와 그의 부하에까지 향하고 있다. 이 예수의 존재를 원작에서는 자기 양심속에 살아있는 예수라고 이야기한다.
  한편 연극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원작을 충분히 소화해 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원작에서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맛이나 치밀함이 각색하는 과정에서 많이 퇴색한 느낌이 든다. 이는 20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을 원작이 단편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함부로 짜깁기를 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좌우익의 흑백논리에 묻혀사는 우리들에게 여유있고 융통성있는 웃음과 생각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