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희곡

나미키센류우외 공동작 '가나데혼주신구라'

clint 2018. 5. 16. 09:06

 

 

이 작품은 일본의 고전연극인 가부끼의 대표적인 명작의 하나로, 18C초에 있었던 아코우의사(赤穗義士)들의 복수담에서 제재를 따왔으며, 초연은 1748년 8월에 오오사카에 있는 타케모토좌(竹本座)에서 있었다. 전 작품은 11단락에 이르는 대하드라마로 꾸며져 있으나, 이번 서울국제연극제에서는 제1단락과 3,4단락의 일부만 공연되므로 이번 역도 그에 준했다. 따라서 스토리의 전개상, 원본과 상이한 부분이 존재하게 된다. 이점, 제현들의 양해를 바란다, 이 번역은 일본 국제교류기금의 후원을 얻어 이루어 졌음을 밝힌다.

 

가나데혼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는 사무라이(侍)의 죽음과 복수의 이야기, 한편 서민의 사랑을 다루기도 한 것이 특징으로서, 우리가『춘향전』을 매년 새로운 영화나 TV 드라마, 마당놀이, 연극, 소설 등으로 즐기며 웃고 눈물을 흘리듯 일본 국민들은『츄신구라』를 보고 일본의 혼(魂)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또한,『춘향전』에도 여러 판본(版本)이 있듯이「츄신구라(忠臣藏)」도 80여 이본(異本) 이 있고 오늘도 여러 작가들에게 의해 재창작돼 무대나 극장에 올려지고 소설로 출간되고 있다. '츄신구라 작품군'의 원류는 『(假名手本忠臣藏) 』이다.

 

 

 

 

17세기에 겅립된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연극으로 오늘날에도 다른 전통극보다 가장 많은 애호가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가부키 특유의 무대, 배우의 독특한 화장술, 여자배우가 없고 남자배우만으로 연기되는 점 등으로 주목을 받아 왔다. 원래 가부키(歌舞伎)란 용어는, 보통과 다른 이상하고 화려한 언동으로 차림 혹은 호색적인 동작을 하는 것을 뜻하는 가부쿠(傾く)라는 동사에서 온 것이다. 1600년을 전후하여 이즈모노 오쿠니(出雲阿國)라는 여자예능인이 기발한 복장으로 무대에 나와 노래와 춤 그 사이에 촌극을 섞은 선정적인 화려한 쇼를 개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것을 「오쿠니가부키」(阿國かぶき)라 하는데, 이 인기에 편승하여 각지에서 여성중심의 극단이 생겨나고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이는 매춘과 풍기문란을 야기하고 「유녀가부키」(遊女かぶき)라는 말까지 생겨나자, 유교에 의한 신질서를 세우려는 막부는 여 그러나 막부의 금령은 오늘날 볼 수 있는 가부키의 특색을 형성·보존·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가부키는 이후 대사와 동작을 주로 하는 본격적인 연극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여자배우의 출연이 금지되자 남자배우가 여자역을 전문으로 하는 온나가타(女形, 女方 : 오야마라고도 함)라 부르는 배우가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막부의 승인 이후에 가부키 전용극장이 생겨나고, 겐로쿠(元祿)시대의 대작가인 지카마쯔 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이 나타나 의리와 인정 사이의 비극이라는 근세적 전형을 확립하였다.

 

 

 

 

이 시기에 교토·오사카에는 사카타 도쥬로(坂田藤十郞) 에도에는 초대 이치가와 단쥬로(市川 十郞)등의 뛰어난 배우가 등장하여, 와고코(和事), 아라고토(荒事) 온나가타 등의 가부키의 기본적인 연기의 틀을 완성하였다. 그 후 닌교죠루리의 전성에 압도되어 잠시 쇠퇴하지만, 닌교죠루리의 샤미센 음악 등 여러 가지 기법을 받아들여 18세기 후반 이후 다시 융성기를 맞이한다. 나미키 쇼조(竝木正三)가 회전무대 등의 기발한 무대장치를 고안해 낸 것도 이 시기였다. 19세기 초기에는 쓰루야 난보쿠(鶴屋南北)라는 걸출한 작가가 등장하여 에도가부키를 난숙시켰다. 잔혹한 장면과 에로틱한 장면을 농도 짙게 표현하거나, 한 명의 배우가 재빨리 변신하여 여러 역을 하는 등의 전례에 없는 연출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근세말에서 메이지기에 걸쳐서는 가와타케 모쿠아미(河竹默阿彌)가 악당이나 도둑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근대에 들어서서도 메이지천황이 관람하는 등 가부키 애호가의 층과 폭이 더욱 확대되어 갔다. 1966년에는 가부키를 상연하는 국립극장이 개장되었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 전통연극으로 계승되어 가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와 주목을 받고 있다. 가부키의 분류 가부키의 작품세계는 크게 무사나 역사적 사건을 그린 지다이모노(時代物)와 남녀의 연애사건이나 서민사회의 세태·사건을 그린 세와모노(世話物)로 대별된다. 닌교죠루리(후술)에서 가부키화되어 가부키의 3대 걸작으로 알려진 『스가와라덴쥬테나라이카가미』(菅原 授手習鑑), 『요시쯔네센본자쿠라』(義經千本櫻), 『가나데혼츄신구라』(假名手本忠臣藏) 등은 지다이모노(時代物)이며, 남녀의 동반자살을 그린 『소네자키신쥬』(曾根崎心中), 『신쥬텐노아미지마』(心中天網島) 등의 신쥬모노(心中物)는 세와모노(世話物)에 속한다.

 

 

 

 

다시 가부키로 돌아오면, 가부키는 독특한 무대장치로도 유명하다. 근세를 통해 개발된 회전무대, 하나미치(花道), 숫폰(スッポン) 등은 서양연극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무대예술로서 가부키는 무용극이며 음악극의 성격도 중요시되고 있다. 여기에는 일본의 대표적 전통악기로 알려진 샤미센(三味線)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중세 말 류큐에서 전래된 악기인 샤미센은 닌교죠루리의 반주악기로 받아들여져서 일본전역에 퍼진다. 이를 가부키에도 받아들여 가부키 배우는 샤미센의 반주음악에 맞추어 대사나 동작을 연기하게 되었다. 한편 가부키배우의 과장되고 형식화된 움직임은 무대전체와 어우러져 하나의 양식미를 낳는다.연기가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 연기자가 얼굴표정과 동작을 잠시 정지하여 무대를 한폭의 그림과 같은 장면으로 만들어 낸다. 이를 미에(見得)라 하여 가부키의 회화미와 양식미를 잘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가부키배우는 이미 근세에 대중의 스타로서 인기를 얻어 우키요에(浮世繪)로도 그려지고 오늘날에는 그들의 예명(芸名)습명이 크게 보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가부키 배우 중 한 명인 이치카와 단쥬로(市川團十郞)는 현재 14대째 활약하고 있으며, 일본어에서 가장 뛰어난 장기를 뜻하는 쥬하치반(十八番)이란 단어도 사실은 이치카와 단쥬로 집안에서 대대로 행해온 아라고토(荒事)의 대표작 18종목을 말하는 것으로 가부키쥬하치반(歌舞伎十八番)이라고도 한다.

 

 

 

 

『주신구라』는 1702년 12월 14일 주군(主君) 을 위해 복수한 실제 사건을 작품화한 것. 1701년 정월 쇼군(將軍)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 는 천황에게 축하의 사절을 보냈고 천황은 이에 대한 답례로 칙사를 보내왔다. 그 칙사를 대접하는 역을 맡은 아사노 나가노리가 그를 능욕했다는 이유로 같은 칙사인 기라 요시나카를 칼을 빼 해치려 했다. 쇼군이 거주하는 곳에서 칼을 빼서는 안되는 법에 의해 쇼군은 아사노에게는 당일 할복할 것을 명한 대신 기라는 무죄 방면했다. 졸지에 주군을 잃고 집안과 영지(領地) 를 몰수당한 아사노의 사무라이들은 낭인이 돼 주군의 복수만을 위해 절치부심하다 이듬해 12월 14일 기라의 저택을 급습, 그의 목을 베는데 성공한다. 당시 여론은 주군에 대한 충성과 그 의협심을 높이 샀으나 쇼군은 거기에 가담한 사무라이 46명 전원의 할복을 명했다. 무사로서 명예롭게 죽은 그들은 주군의 묘 옆에 나란히 묻혔다.

법을 어긴 폭도였으나 이들은 충(忠) 과 의(義) 의 사표로 일본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주군의 할복으로 시작되어 주군의 복수를 위한 사무라이들의 와신상담(臥薪嘗膽) , 치밀하고 과감한 복수의 결행, 마지막의 여한없는 집단 할복 등 사건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거기에 일본의 집단적 정신과 정서를 가장 잘 반영해 이 사건 직후부터 작품화되기 시작하다 1748년 다케다 이즈모 등 당대 최고작가 3인의 공동창작으로 『가나데혼 주신구라』가 완성된다. 이 작품에는 오로지 주군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의 원형이 충(忠) 으로 감싸여 있다. 그리고 한번 목표가 서면 전원이 한결같이 한다는 일본의 집단주의적 성향이 의(義) 로 승화돼 있다. 거기에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무사 46명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중 한 사람은 꼭 자기 자신일 듯하게, 그리고 상인 한명도 그 무사집단에 끼어넣어 의리 있는 상도(商道) 를 발휘하게 하는등 일본의 전계층을 사로잡을 수 있게 꾸몄다.